방송인 오영실 씨의 40대도 미혹(迷惑)의 시간이었다. 방송을 꾸준히 해왔지만 언제까지 이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최대한 젊을 때 자산을 불려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다. 마침 연예계엔 "좋은 게 있다"며 유혹의 손길을 보내는 이들이 많았다. 다들 당장에라도 일확천금의 주인공이 될 것 같은 사탕발림 같은 말들을 속삭였다. 부족한 형편에 융자를 받아 주식 투자를 하고, 땅을 샀다. 그러나 빚으로 시작한 재테크의 최후는 결국 빚이었다.
오 씨는 "많은 걸 잃고 나서야 재테크란 게 얼마나 물거품 같은 것인지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쉽지 않은 고백임에도 그는 돈을 욕망했던 경험들을 꾸밈없이 풀어놓았다. 간간이 자신을 책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과거에 대한 반성은 결국 더 나은 지금을 만드는 법이다. 욕심을 버리니 마음이 평온하다는 그의 말엔 현재 생활에 대한 만족감이 섞여 있었다. 그는 "제 이야기가 재테크로 인한 또 다른 피해를 막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지난 7일 서울 시내 모처의 한 촬영장에서 이뤄졌다. <편집자>
▲ 방송인 오영실 씨. ⓒ프레시안(최형락) |
빚으로 얻은 한 번의 '대박'과 세 번의 '쪽박'
"언제까지 방송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오 씨가 방송 일을 하며 수도 없이 들은 말이다.
"이런 질문 받을 때마다 미래가 불안한 거죠. 특히 방송 일이라는 게 더욱 그렇고요. 빨리 준비를 해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항상 쫓기면서 사는 기분이었어요."
재테크의 시작은 집이었다. 서울에 거주하는 많은 사람이 그렇듯 대출을 받아 첫 집을 장만했다. 집값 9000만 원 중 절반이 대출금이었다. 남편은 '모은 다음에 장만하자'고 했지만, '돈을 마련한 다음에 집을 사면 이미 늦는다'는 친정어머니의 충고를 받아들였다. 집값이 언제 뛸지 모르니 재빨리 사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집값만 오르기를 기다리는 신혼 시절의 생활은 가혹했다. 매달 대출금을 갚느라 고기 한 번 먹지 않고 허리띠를 졸라맸다.
"집들이할 때 제가 친구들한테 소고기를 사오라고 했는데 친구들은 제 얘기가 장난인 줄 알고 케이크를 사 온 거에요. 너무 속상해서 친구들 몰래 혼자 부엌에 가서 울었어요."
기다리던 '대박'은 그다음 집에서 터졌다. 아이들이 크면서 애들 키우기 편한 곳을 찾다가 눈에 들어온 곳이 서울 강남 반포 아파트였다. 그 당시엔 집 주변에 예정된 재개발의 효과를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어느새 시세가 급격히 뛰었다. 예전 집을 팔고 다시 무리하다 싶을 만큼 융자를 받아서 얻은 집이 순식간에 복덩이가 됐다. 한국 '부동산 재테크 신화'를 제대로 경험한 셈이다.
일단 한 번 재테크의 맛을 보고 나니 욕심이 커졌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투자'를 시작했다. 10년 넘게 아는 분이 괜찮은 반찬 가게를 할 예정이라며 창업 투자 제의를 해왔다. 제대로 된 계약서도 없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사이인 만큼 믿고 맡겼다. 집을 담보로 1억 넘게 은행에서 융자를 받아 고스란히 동업자에게 건넸다. "잘 될 거라고 하니 믿었어요. 주변 사람들 열 명이면 열 명 모두 말렸어요. 다들 계약서 꼭 작성하라고 하는데도 저는 '왜 사람을 못 믿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느냐'고 했어요." 결국 그 동업자가 도망가는 바람에 오 씨는 투자금의 반의반도 건지지 못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빚쟁이처럼 그 사람들을 쫓아다녔어요. 결국 어느 정도 손실을 보고 나머지 돈은 되돌려 받았지만, 5년을 불안감 속에서 살아야만 했어요."
이게 끝이 아니었다. 다음은 '주식'이었다. 방송에서 만난 주식 전문가 도움을 받아 처음엔 개인적으로 주식 투자를 했다. 그러나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다가 '대박의 손'이라 불리는 사람을 만났다. 모 증권회사 이사라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원금은 보장해준다'는 말을 듣고 역시나 빚을 냈다. "석 달만 꼬박꼬박 돈을 받으면 사돈의 팔촌까지 끌어오게 되거든요. 원금 대비 10분의 1만 줘도 넘어가게 돼 있어요." 그래서 초반엔 5000만 원만 투자하다가 빚을 내 5000만 원을 더 보탰다. 이사라던 그 사람은 현직이 아닌 전임이사로, 일반 사이버 투자자였다. 결국 투자금 1억 원 중 2000~3000만 원만 겨우 회수했다.
"그때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눈과 귀가 먹었어요. 주변에서 경고했지만 들리지 않았어요. 그저 어떻게든 돈을 더 모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그러니 그들의 속임수를 눈치챌 기회가 몇 번이나 있었는데도 당시엔 알 수 없었던 거죠."
세 번의 투자 실패로 어마어마한 돈을 날리고, 오 씨는 극심한 심적 고통을 겪었다. 모두 빚을 내면서까지 무리하게 했던 투자였다. 그렇지만 연이은 투자 실패와 사기의 교훈에도 재테크의 유혹은 강렬했다. 오 씨는 얼마 전 하마터면 또 '좋은 제안'에 넘어갈 뻔했다.
"아는 분이 펀드를 하는데, 1억 원을 넣으면 350만 원이 매달 들어온다는 거예요. 은행에 맡기면 이자가 100만 원도 안 나오거든요. 그럼 혹하게 되죠. 그렇게 당했는데도 솔깃한 거 보면 재테크의 유혹이란 게 무시무시한 것 같아요."
돌이켜 생각하면 어처구니없지만, 투자 제안하는 이들의 교묘한 수법을 피하기란 어렵다. 그는 피해자가 5만 명에 육박한 동양 사태를 들었다.
"동양 사태도 마찬가지에요. 개인이건 금융기관이건 투자 상품을 홍보하는 사람들은 자기들한테 불리한 부분은 철저히 숨기고 이자율이 높다는 얘기부터 꺼내요. 돈을 불리고 싶어하는 사람의 심리를 잘 이용하는 거죠."
ⓒ프레시안(최형락) |
"욕심 버리고 적게 쓰는 '불혹 소비'가 진짜 재테크"
사람은 누구나 풍족한 삶을 꿈 꾼다. 때문에 한 번 가열된 인간의 투기 성향을 잠재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저도 몸져눕고 나중엔 집안에 불화가 생겨서 집안이 망하는 그 근처까지 가보고서야 배웠다"고 우스갯소리를 던졌다.
오 씨에게는 욕심을 부리던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한 순간이 있었다. 투자를 하면서 풍족한 '미래'에 대한 꿈을 키웠지만, 오씨의 '현재'는 언제나 궁핍하다는 걸 깨달은 때였다.
"한참 사기당하고 울고 있는데 아들이 저한테 집에 먹을 게 없다고 떼를 쓰기에 용돈으로 사먹으라고 했더니, 주머니에 800원밖에 없다더라고요. 재테크라는 게 아들을 굶기면서까지 해야 할 일인가 싶더라고요."
ⓒ프레시안(최형락) |
"지금은 다시 적금으로 돌아갔어요, 사실 재테크로 쉽게 번 돈은 쉽게 나가더라고요. 지금 적금으로 들어가는 돈은 제가 새벽 네 시까지 드라마 촬영하고 받은 출연료에요. 그 돈은 예전 제가 갖고 있던 돈이랑은 너무 다른 거죠. 쉽게 쓰지를 못하겠더라고요. 옷도 덜 사게 되고, 먹는 사람들한테 베풀 일 있을 때만 좋은 데서 만나고. 그렇지 않으면 허름한 데서 그냥 싸게 먹어요. 새는 돈을 막고 규모에 맞게 소비를 하는 거죠."
욕심을 버리고 규모에 맞는 소비, 그는 이를 '불혹 소비'라고 표현했다. 욕심을 버리겠다고 해서 '짠순이'가 되겠다는 건 아니었다.
"'너무 과하게 아껴도 빈궁한 날이 계속된다'는 성경 구절이 있어요, 가치 있는 데에는 써야 하죠. 아침 방송을 하면 그 전에 미용을 해야 하니까, 새벽에 스타일리스트가 와요. 정해진 돈만 주면 되지만 그건 제 마음이 용납을 못 해요. 택시비랑 먹을 거도 챙겨줘요. 그리고 부쩍 제 건강을 챙기고 있어요. 힘든 일에 대한 비용은 매 순간 계산이 안 되지만 따지고 보면 큰 에너지 소모거든요. 결국, 투자나 재테크라는 게 이런 소소한 것들인 것 같아요."
예전보다 마음의 평정심은 찾았지만 여전히 미래는 불안하다. 오 씨는 그렇게 불안함을 느낄 때마다 들여다보는 통장이 있다. 예전 반찬 가게 동업했을 당시 썼던 통장이다.
"그럴 형편도 아니면서 매달 1000만 원이 나갔어요. 대출금에 매달 가게 운영비까지 감당하면서 '다시는 사업 안 해야지' 생각했어요. 지금도 주변에서 '아울렛 매장 운영해보지 않을래', '언제까지 연예인 생활 하겠니' 하고 유혹을 할 때마다 그 통장을 봐요."
지금 오 씨에게는 아직도 상환해야 할 대출금이 5년이나 남아있다.
"신혼집 장만한 이후로 단 한 번도 빚 없는 생활을 해본 적이 없어요. 제발 좀 빚이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여기저기 투자한다고 일만 안 벌였어도 좀 나았을 것을…. 이런 저의 '실패 경험담'이 다른 분들이 실패를 겪지 않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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