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교회, 성당, 절에서 학부모들 기도
이날 오전 8시, 서울시 서초구에 위치한 '사랑의 교회'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수험생을 위한 학부모 기도회에 참석한 사람들 100여 명이 이미 예배당에 앉아 있었다. 수험생만큼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전국 대형 교회, 성당, 절 대부분이 수능 시간표에 맞춰 학부모 기도회, 법회를 연다. 수능 1교시가 시작되는 9시 30분부터 시작해서 모든 일정이 수능 시간표와 똑같이 진행된다. 아이들이 문제를 풀 때는 기도하고 쉴 때는 학부모들도 쉰다. 마지막 교시인 5교시(제2외국어·한문)가 끝나는 오후 5시에 맞춰 학부모들의 기도도 끝난다.
서초동에 거주하는 김 모(여·55) 씨는 아들을 고사장인 휘문고까지 데려다 주고 교회를 찾았다. 그는 "휘문고는 학부모를 고사실까지 들어가게 해줘서, 아이가 자리에 앉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눈물이 저절로 나더라"며 "수시 최저등급제에 맞추려면 1등급 두 개에 2등급 한 개가 나와야 하는데 워낙 1등급 따기가 어려워서 많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한 학부모는 아이를 고사장까지 데려다 준 남편과 전화 통화하며 연신 "지영이 계속 떨었어?"라고 물었다. 그는 "밤 9시에 자겠다고 누운 아이가 긴장했는지 새벽까지 잠을 못 자고 뒤척여서 나도 한잠도 못 잤다. 아이가 얼마나 떨고 있을지 생각하면 너무 안쓰럽다"며 눈물을 보였다.
기도회가 정식으로 시작하자 학부모들은 300여 명으로 늘었다. 교회 관계자는 "이제 곧 본당이 꽉 찰 것이다. 매년 그랬다"고 말했다. 이 교회 본당 수용 인원은 2000여 명이다.
▲ 2014학년도 대입 수학능력시험일인 7일 오전 서울 대치동 휘문고 시험장 앞에서 한 학부모가 교문 앞에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있다. (위 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연합뉴스 |
청소년 7명 대입 거부 선언…"대입은 현재를 저당잡을 뿐"
수험생들이 한창 수리 영역을 치르고 있을 시간, 수능을 거부한 청소년들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오전 11시, '대학 입시 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 가방끈들의 모임(이하 투명가방끈 모임)'소속 청소년 7명은 서울시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대학 입시 거부 기자회견을 열었다.
투명가방끈 모임은 지난 2011년에 청소년 18명과 청년 30명이 최초로 대학 입시 거부를 선언하며 출범했다.
박건진(남·19) 군은 "대학에 가지 않는 것이 치욕이 되는 시스템을 거부한다"며 "모두 대학입시가 미래를 보장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대입은 현재를 저당잡고 있을 뿐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대학은 결코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다. 수능 대박과 대입은 그저 하나의 관문을 통과한 것에 불과하다"며 "경쟁은 끝이 없다. 이미 대학은 학문을 배우기 위한 공간이 아닌, 취업을 위한 공간이 됐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일단 대학부터 가고 나중에 높은 사람이 되어서 대입 제도를 바꾸라고들 하지만 결국 그 자체가 사회를 이렇게 만드는 위선의 주문"이라고 꼬집었다.
교복을 입고 참가한 위영서(여·19) 양은 "매일 새벽에 일어나 종일 공부하다 다시 새벽에 잠드는 삶은 너무 처참했다. 그렇게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며 입시가 끝나면 모든 경쟁도, 지겨운 생활도 끝나고 행복해질 것이라 믿었다"고 전했다.
그는 "그러나 주변 대학생을 바라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며 "입시 경쟁에 이겨서 취업이라는 또 다른 경쟁으로 들어서는 삶은 허무해 보이기만 했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8대 요구안으로 △줄 세우기 무한 경쟁 교육 반대 △권위적인 주입식 교육 반대 △학생 인권 보장 △교육의 목표가 입시와 취업이 되어서는 안 될 것 △교육 예산 확보 △모든 사람이 대학에 가야 한다는 편견에 반대 △학벌차별, 학벌사회에 반대 △누구나 생계 걱정 없이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사회 보장 제도 등을 주장했다.
한국 사회에서 대입 포기는 이른바 '정상 궤도'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이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기자회견장에서는 대입 제도와 그 제도를 만든 사회를 비판하는 목소리와 동시에 "친구들이 수시에 붙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불안하다", "엄마에게 미안하다"는 목소리도 들렸다.
나름의 불안감을 안고 인생의 결단을 내린 청소년들을 보고 돌아오는 길, 한국의 수능 풍경을 취재하러 온 프랑스 기자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았다. 대입으로 온 나라가 부산한 풍경이 그저 신기하다는 표정이었다. 문득, 언제쯤 한국에서 수능을 치르지 않는 것이 별 기삿거리가 되지 않는 날이 올지 궁금해졌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