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그룹 계열사들의 회사채와 기업어음(CP)에 투자해 피해를 본 개인투자자들이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2차 집회를 열었다. 지난 9일에 이어 이날 모인 피해자들은 지난 17, 18일 열린 금융위 및 금감원 국정감사에서 보인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의 무책임한 태도에 대해 분통을 터뜨렸다.
현 회장은 지난 17일 국감 증인으로 출석해 "그룹 부실로 피해를 본 투자자에겐 엎드려 사죄한다"면서도 "투기 등급의 기업어음을 일반 투자자에게 판 과정은 알지 못한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대전에서 온 30대 남성 양모 씨는 "그렇다면 전부 직원들이 꾸민 짓이냐. 그게 말이 되느냐. 사태 터지고 나서 그래도 바로 국감이 있어서 기대했는데,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이렇게 책임감 없는 오너가 또 있을까 싶다"고 말했다. 서울에 사는 50대 여성 김모 씨도 "한마디로 '도둑놈'이다. 국감을 보려고 어제 그제 보도채널만 봤는데, 힘이 다 빠지더라"고 밝혔다.
피해자들은 동양그룹의 다른 계열사를 정리하고, 현 회장의 개인 재산을 털어서라도 피해자들을 구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30대 여성 홍모 씨는 이날 시위 공개 발언을 통해 "현 회장에게 마지막 기회가 남았다. 모든 피해자가 증권을 고소하기 전에, 회장답게 대책을 마련하면 된다"며 "한 변호사가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동양 계열 알짜 회사를 다 팔면 2조 원 넘게 갚고도 남는다고 한다. 계열사를 다 정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 회장은 18일 국감에서 "법정관리에 들어갔기 때문에 법원에서 판단할 일이지만, 제가 지금까지 해 왔고 여생 동안 할 일은 계열사를 파는 일"이라며 계열사 매각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사재 환원은 미지수다. 현 회장은 17일 국감에서 피해자 보상을 위해 사재를 털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겠다"면서 "다만 저는 전 재산을 회사에 넣고 경영했기 때문에 추가로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 회장은 그러나 18일에는 "저희 집이 가압류됐다고 신문으로 봤는데 사실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전날 발언을 사실상 번복했다.
김모 씨는 "회장이라는 자가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남아 있다면, 사재를 다 내놔야 한다. 그런데 국감을 보니 현 회장 일가가 이미 사재는 다 빼돌린 것 같다. 피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 9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동양채권자 비상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정부의 피해 보상 대책 발표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이들은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이혜경 부회장 등 관련자 전원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이들은 19일에 제2차 집회를 열고 현 회장 일가를 질타했다. ⓒ연합뉴스 |
"제2의 동양 사태 일어날 것"… 동양 피해 특별법 제정 촉구
피해자들은 금융당국과 청와대의 공모 정황이 드러난 데 대해서도 격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18일 국감에 출석한 최수현 금감원장이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 홍기택 산은금융지주 회장과 '비밀 회동'을 실토한 데 대한 비판이다. 최 금감원장은 국감에서 청와대 관계자들과 만난 적이 없느냐는 의원들의 추궁에 "8월 중하순쯤 조 수석, 홍 회장 등 2명과 만난 기억이 있으며 동양에 대해 논의했지만 만기 연장 등 '봐주기' 내용은 없었다"고 밝혔다.
집회 참가자들은 대부분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었다. 40대 이모 씨 부부는 "뻔한 것 아니냐. 이렇게 큰 사태를 청와대가 몰랐을 리 없다. 그동안은 심증은 있는데 물증만 없을 뿐이었다. 청와대가 아무 말이 없는 건, 자신들이 이미 이 사태에 개입했기 때문이 아니었겠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집회 참가자는 "국감에서 밝혀진 대로 청와대도 이번 사태에 이미 개입한 마당에 지금처럼 계속 모른 척한다면, 대통령은 눈도 귀도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특별법을 제정해 불완전 판매 등 투자 사기 사건의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2의 동양 사태'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것. 최 금감원장도 국감에서 "동양그룹처럼 대기업 계열사에 부실 징후가 보이는 곳이 4곳 더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피해자들은 이날 집회에서 '동양 피해 특별법' 제정을 더욱 강도 높게 촉구했다. 동양피해자대책협의회 관계자는 "동양그룹 현재현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이 부실한 재무 구조를 숨기고 채권 발행을 강행한 것은 명백한 위법이자 대국민 사기"라며 "특별법을 제정해 계열사 매각, 오너 일가의 사재 출연 등으로 피해액 배상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동양 채권(자)의 99% 이상이 일반 개인"이라며 "피해자 구제에 세금을 쏟으라는 것이 아니라 특별법 제정을 통해 동양그룹과 금감원, 금융위 등 관련자 진상 조사를 하고 피해 최소화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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