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문화학교는 이날 초가을의 기운이 가득한 장성 축령산의 편백나무 숲길을 걷고, 장성댐 아래에서 메기매운탕으로 점심을 든 후 필암서원, 백양사 등을 돌아봅니다. 아침에 서울에서 떠나는 스쿨버스를 마련하였습니다.
제24강의 요점은 이렇게 정리됩니다. (일정은 현지 사정에 따라 일부 조정될 수 있습니다)
* 장성행 버스 안에서 교장선생님의 음식문화 강의
* 축령산 편백나무 숲길 피톤치드 듬뿍 마시며 걷기
* 장성댐 아래 호반가든에서 메기매운탕으로 점심
* 호남 정신사의 태두 김인후(金麟厚) 선생 배향 필암서원 관람
* 백양사 관람 및 유나(維那) 지선 스님과의 차담
▲ 전남 장성 축령산의 편백나무 숲길 Ⓒ장성군 |
9월 15일 아침 6시 30분 서울에서 출발합니다. 6시 20분까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에서 <음식문화학교> 버스에 탑승바랍니다. 김밥과 식수가 준비돼 있습니다.
[축령산(鷲靈山)] 전라남도 장성군 서삼면과 북일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울창한 편백나무 숲으로 유명하다. 노령산맥의 지맥으로, 높이 620.5m이다. 옛 이름은 취령산(鷲靈山)이며, 문수산이라고도 부른다. 축령산의 편백나무 숲은 삼림욕의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한국의 조림왕이라고 불리는 춘원 임종국(林種國, 1915~87) 선생이 1956년부터 1987년까지 사재를 털어 가꾼 숲이다. 축령산 남서쪽 산록에 숲이 조성되어 있으며, 조성면적은 약 2.9㎢에 이른다. 이 숲은 산림청과 유한킴벌리(주), 생명의숲국민운동이 주최한 제1회 아름다운 숲전국대회(2000년)의 '22세기를 위해 보전해야 할 숲' 부문에서 우수상을 수상하였다. 숲을 가로지르며 조성된 약 6km의 길은 국토해양부에 의해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되었다.
10시 30분. 버스는 장성군 북일면 문암리 금곡마을 주차장에 도착합니다. 여기에서 출발하여 완만한 경사의 축령산을 200여 미터 오른 후, 편백나무 숲길을 느릿느릿 걷습니다. 울창한 편백나무 군락을 따라 6km의 숲길이 2시간여 이어집니다.
[피톤치드(phytoncide)] 1937년 러시아의 생화학자 토킨에 의하여 명명되었다. 식물이 병원균·해충·곰팡이에 저항하려고 내뿜거나 분비하는 물질로, 삼림욕을 통해 피톤치드를 마시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장과 심폐기능이 강화되며 살균작용도 이루어진다. 20세기 초까지 폐결핵을 치료하려면 숲속에서 좋은 공기를 마시며 요양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였다. 삼림욕을 하면 식물에서 나오는 각종 항균성 물질을 이르는 피톤치드가 몸속으로 들어가 나쁜 병원균과 해충, 곰팡이 등을 없애는 구실을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이것은 일반적인 생각이며, 피톤치드의 구성 물질이 테르펜을 비롯한 페놀 화합물, 알칼로이드 성분, 글리코시드 등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삼림욕을 통해 피톤치드를 마시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장과 심폐기능이 강화되며 살균작용도 이루어진다. 이에 여러 상품들에 피톤치드의 효능을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방향제에 피톤치드 성분을 추출해 넣거나 음식물에 식물의 꽃이나 잎을 이용하기도 한다. 또한 식물의 고유한 피톤치드 향기는 식품을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도록 해준다. 피톤치드는 소나무, 향나무류에서 많이 분비되는데, 그중 편백나무에서 제일 많이 나온다.
12시 30분. 편백나무에서 뿜어 나오는 피톤치드를 듬뿍 마시고, 아쉽지만 서삼면 모암리 축제장으로 내려옵니다. 미리 와 대기하고 있는 스쿨버스를 타고 점심을 먹으러 갑니다. 유난히도 무더웠던 여름으로 잃어버린 체력을 메기매운탕으로 보충합니다. 된장을 넣어 그렇게 맵지 않으면서도 구수하고 달달한 국물 맛에 공기밥 한 그릇은 어느새 사라집니다.
오후 2시 30분, 호남 정신사의 태두 김인후 선생을 배향한 필암서원으로 향합니다. 장성군의 문화해설사를 모시고 김인후 선생으로 비롯되는 호남 유학의 맥과, 민족의 위기 때마다 온몸을 던지신 호남 선비들의 창의정신을 배웁니다.
[필암서원(筆巖書院)]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필암리에 있는 서원. 1590년(선조 23) 호남 유림들이 장성 출신 김인후(金麟厚) 선생의 도학을 추모하기 위해 장성읍 기산리에 사우(祠宇)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597년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자 1624년에 복원하였으며, 1662년(현종 3) 지방 유림들의 청액소(請額疏)에 의해 '필암'이라고 사액되어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1672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고 1786년에는 양자징(梁子澂)을 추가 배향하였다. 대원군의 서원철폐시 훼철되지 않은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다.
▲ 필암서원 입구의 문루(門樓)인 확연루. 편액은 우암 송시열의 글씨다. Ⓒ장성군 |
[김인후(金麟厚)] 본관은 울산. 자는 후지(厚之), 호는 하서(河西)·담재(湛齋). 1519년 김안국(金安國)에게서 <소학>을 배웠다. 1531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성균관에 입학하였으며, 이때 이황(李滉)과 교우관계를 맺고 함께 학문을 닦았다. 그의 성리학 이론은 유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는 당시 이항(李恒)과 기대승(奇大升) 사이에 논란이 되었던 태극음양설(太極陰陽說)에 대하여, 이기(理氣)는 혼합되어 있으므로 태극이 음양을 떠나서 존재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도(道)와 기(器)의 구분은 분명하므로 태극과 음양은 일물(一物)이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이항의 태극음양 일물설(一物說)을 반대한 기대승에 동조하였다. 또한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은 모두 그 동처(動處)를 두고 이른 말임을 주장함으로써, 후일 기대승의 주정설(主情說) 형성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수양론에 있어서는 성경(誠敬)을 주된 목표로 삼았다. 노수신(盧守愼)과 함께 숙흥야매잠해(夙興夜寐箴解)를 논한 내용을 보면, 마음이 일신을 주재한다는 노수신의 설을 비판하고, 마음이 일신을 주재하지만 기가 섞여서 마음을 밖으로 잃게 되면 주재자를 잃게 되므로, 경(敬)으로써 이를 바르게 해야 다시금 마음이 일신을 주재할 수 있게 된다는 주경설(主敬說)을 주장하였다. 그는 천문·지리·의약·산수·율력에도 정통하였다. 제자로는 정철(鄭澈)·변성온(卞成溫)·기효간(奇孝諫)·조희문(趙希文)·오건(吳健) 등이 있다. 10여 권의 시문집과 <하서집> <주역관상편(周易觀象篇)> <서명사천도(西銘事天圖)> <백련초해(百聯抄解)> 등이 있다.
오후 3시 30분. 다시 버스를 돌려 백양사로 향합니다. 백양사(고불총림)는 전남 순천 송광사(조계총림), 경남 양산 통도사(영축총림), 경남 합천 해인사(해인총림), 충남 홍성 수덕사(덕숭총림)와 더불어 조계종 5대 총림의 위상을 갖고 있는 고찰입니다. 현재 백양사의 유나로서 실질적으로 총림 방장의 역할을 하고 계시는 지선 스님과 차담을 나눌 계획입니다.
▲ 백양사는 장성8경 중 제1경이다. Ⓒ장성군 |
[백양사(白羊寺)]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北下面) 약수리(藥水里) 백암산(白巖山)에 있는 절로 처음에는 백암사라고 하였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이며 40여 개의 사찰을 관할한다. 631년(무왕 32) 승려 여환(如幻)이 창건하고, 고려시대인 1034년(덕종 3) 중연(中延)이 중창한 후 정토사(淨土寺)라 개칭하였다. 1574년(선조 7) 환양(喚羊)이 백양사라 이름하였다. 당시 환양선사가 절에 머물면서 염불을 하자 흰 양들이 몰려오는 일이 자주 일어나자 이를 보고 사찰이름을 백양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중건을 거쳤다. 주요 건물로는 환양이 세웠다는 극락전(지방유형문화재 32)이 가장 오래되었고, 대웅전(지방유형문화재 43)은 1917년 만암(曼庵) 스님이 주지로 있으면서 백양사 중건 때 지은 것으로, 석가모니불 ·보살입상 ·16나한상(羅漢像)이 봉안되었다. 또한 같은 해에 건립한 사천왕문(四天王門, 지방유형문화재 44)과 1896년경에 세운 명부전(冥府殿)이 있다. 이밖에 백양사 재건에 힘쓴 소요(逍遙)의 유업을 기리기 위해 세운 소요대사 부도(浮屠)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안치되어 있는 9층탑이 있다.
오후 5시, 바쁜 일정을 마친 음식문화학교는 서둘러 서울로 향합니다. 길이 막히지 않으면 8시 30분 전후면 도착할 수 있습니다.
음식문화학교 9월 참가비는 10만원입니다 (교통비와 식사대, 입장료, 여행자보험료, 강의비, 운영비 등 포함). 버스 좌석은 참가 접수순으로 지정해드립니다. 참가 신청과 문의는 사이트 www.huschool.com 전화 050-5609-5609 이메일master@huschool.com 으로 해주세요.
김학민 교장선생님은 유명한 음식칼럼니스트로, 음식 칼럼집 <맛에 끌리고, 사람에 취하다>와 술 칼럼집 <태초에 술이 있었네>를 펴냈으며, 네이버 블로그 '김학민이 꿈꾸는 세상'에 음식, 술, 건강, 문화, 시사 관련 글을 활발하게 올리고 있습니다.
김학민 교장선생님은 <음식문화학교를 열며> 이렇게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인간은 요리하는 동물>
최초의 인간은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자연 상태 그대로 먹었습니다. 그러다가 불의 발견을 계기로,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슬기를 발휘하여 서서히, 또한 독특하게 식생활 체계를 세웠으니, 이것이 음식문화입니다. 이로써 인간은 '요리하는 동물'로 진화되어, 각기 살고 있는 곳의 기후와 풍토에 따라 제각각의 음식문화권을 형성하게 됩니다.
이러한 음식문화의 자연스런 분화와 발전이 있었으므로, 인류의 보편적 정서와 규범을 흐트러트리지 않는 한, 한 인간이 무엇을 어떻게 먹든 그것은 그의 자유입니다. 또 특정한 먹을거리를 특별하게 먹게 된 것도 그 공동체 고유의 살아온 환경과 문화, 역사의 소산이므로 자기만의 잣대를 들이밀어 왈가왈부할 일도 아닙니다.
흔히 "모두가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원초적 과제들을 의·식·주로 나누어 그럴 듯하게 분화하였지만, 그건 어느 정도 문명화된 시기의 이야기이고, 사실은 식(食)의 문제, 곧 먹을거리 문제가 인간 실존의 근원입니다.
먹을거리 문제는 질서와 규범 속에서 평화롭게 조절돼 가는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매일 매일의 사회면 기사의 행간을 뜯어보면 그 이면에는 모두 먹는 문제가 개재되어 있고, 국가 사이의 전쟁, 민족 사이의 분쟁도 땅과 자원의 문제가 대부분을 차지하니, 그 끝을 파보면 결국 먹는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아는 만큼 맛있다>
우리 사회는 이제 먹을거리 문제의 극단에서는 벗어나 있습니다. 그러나 먹을거리의 질과 독점을 둘러싸고는 계속 갈등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또 거대 식품산업이나 외식사업 등에서 양산되는 각종 인스턴트 식품들이 우리 식탁에 도전해 오고 있고, 세계 각국의 먹을거리들도 그 나라의 문화요소들과 함께 물밀듯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먹을거리의 홍수 속에서 음식문화학교는 우리 전통 먹을거리를 낳게 한 사회문화적 배경, 그리고 특정 먹을거리와 그를 갈무리하는 맛깔스런 음식점, 그리고 그 주인과 공동체에 얽힌 이야기를 탐구하고자 합니다.
곧 '먹을거리 이야기'를 넘어 '이야기가 있는 먹을거리'를 찾는 여정이 음식문화학교가 가고자 하는 방향입니다. 문화유산 답사의 개척자 유홍준 교수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습니다. 유 교수의 어법을 빌려 말한다면, 음식도 아는 만큼 맛있습니다.
<음식문화학교는...>
음식문화학교는 요리법을 가르치는 곳이 아닙니다. 음식문화학교는 문화 속의 음식, 음식 속의 문화를 탐구하고자 합니다. 따라서 음식문화학교는 음식의 현장을 찾아가 문화를 즐기거나, 문화의 현장을 찾아가 음식을 즐기는 기행의 형식으로 진행합니다. 곧 '금강산과 식후경의 조화'가 저희 음식문화학교의 교훈입니다.
앞으로 김치, 젓갈, 된장, 두부, 등심, 갈비, 불고기, 육회, 토종닭, 홍어, 비빔밥, 산나물, 막걸리 등 숱한 우리 전통 먹을거리의 명품, 명소를 찾는 기행이 쭉 이어집니다. 전문가 또는 교장의 음식문화 강의 후 맛있는 음식을 즐기게 되며, 재래시장 장보기, 산나물 뜯기, 쭈꾸미 잡기, 콩 털기 등의 체험행사도 함께 하며 유명 음식축제 여행으로 변화를 꾀하기도 하겠습니다.
음식문화학교는 월 1회, 매월 셋째 토요일에 여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사정(명절, 연휴, 장날, 음식축제 등)에 따라 날짜를 옮길 수도 있습니다. 수도권은 웬만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당분간은 당일 코스로 한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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