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 분들은 <서울학교> 문을 두드리십시오. 서울은 넓고도 깊으며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곳입니다.
서울학교가 4월 문을 엽니다. 교장선생님은 가장 재미있고 깊이있는 <서울 해설가>로 장안에 이름난 최연 선생님입니다.
그는 서울의 인문지리기행 전문가이며, 불교사회연구원 원장이기도 합니다. 특히 <서울학>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는, 공동체로서의 '마을'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공부하다 보니 서울이 공동체로서 '가장 넓고 깊은 마을' 임에도 불구하고 그 공동체적인 요소가 발현되지 않는 '마을'이어서입니다.
남한의 인구 반쯤이 모여 살고 있는 서울(엄밀히 말하면 수도권)이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호남향우회, 영남향우회, 충청향우회 등 '지역공동체 출신으로 서울에 사는 사람'만 있지 '진정한 서울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다는 엄연한 현실이 서울의 현주소입니다.
이러한 문제인식에서 서울에 대한 인문지리적 접근을 통해 그곳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마을 공동체로서 서울에 대한 향토사가 새롭게 씌어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역사, 풍수, 신화, 전설, 지리, 세시 풍속, 유람기 등 가능한 모든 자료를 참고하여 이야기가 있는 향토사, 즉 <서울학>을 집대성하였습니다.
물론 서울에 대한 통사라기보다는 우리가 걷고자 하는 코스에 스며들어 있는 많은 사연들을 이야기로 풀었습니다. 그 내용은 정사도 있겠지만 야사, 더 나아가서 전설과 풍수 도참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저서로는 <최연의 산 이야기>가 있으며, 곧 후속편이 나올 예정입니다. 또 서울 역사인문기행의 강의 내용이 될 <서울 이야기>도 기획하고 있습니다.
▲ 옛부터 풍광을 자랑했던 탕춘대성 자하문 밖. 북한산 연봉이 병풍을 이룬다.ⓒ서울학교 |
최연 교장선생님이 <서울학교>를 여는 취지는 이렇습니다.
서울은 무척 넓고 깊습니다.
서울이 역사적으로 크게 부각된 것은 삼국시대 백제, 고구려, 신라가 이 땅을 차지하려고 끼리끼리 합종연횡 치열한 싸움을 벌였을 때입니다. 한반도의 패권을 잡기 위해서는 서울은 꼭 차지해야 할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서울은 고려시대에는 남쪽의 수도라는 뜻의 남경(南京)이 있었던 곳이며, 조선 개국 후에는 개성에서 천도, 새로운 수도 한양(漢陽)이 세워졌던 곳입니다.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망국(亡國)의 한을 고스란히 감당한 대한제국(大韓帝國)이 일본에 합병되는 그 마지막 순간을 맞이한 곳도 서울입니다.
이렇듯 서울은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으로서 역사 유적의 보고입니다. 또한 개항 이후 서구문화가 유입되면서 펼쳐 놓은 근대문화유산 또한 곳곳에 산재해 있어 서울이 이룩해 놓은 역사 문화유산은 그 넓이와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 깊이와 넓이만큼 온전하게 제 모습을 다 보여주지 못하는 곳도 서울입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많은 문화유산이 소실되었고, 일제강점기 때 일제는 의도적으로 우리 문화를 파괴, 왜곡시켰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나마도 동족상잔으로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박정희 이후 이명박 정권에 이르기까지 개발독재세력은 산업화와 개발의 논리로 귀중한 문화유산을 무참히 짓밟아 버렸습니다. 피맛골 등 종로 일대의 '무분별한 개발'이 그 비참한 예입니다.
이런 연유로 지금 접하고 있는 서울의 문화유산은 점(點)으로밖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만시지탄이지만, 이러한 점들을 하나하나 모아 선(線)으로 연결하고, 그 선들을 쌓아서 면(面)을 만들고, 그 면들을 세워 입체의 온전한 서울의 문화유산을 재구성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작업은 역사서, 지리지, 세시풍속기 등 많은 기록들이 전해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는 가능합니다만, 그 기록들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도 찾을 수 없는 것들은 '역사적 상상력'으로 보완해야 합니다.
최근의 관심 콘텐츠는 <걷기>와 <스토리텔링>입니다. 이 두 콘텐츠를 결합하여 '이야기가 있는 걷기'로서 서울의 문화유산을 둘러보는 <서울학교>를 개교하고자 합니다. 서울에 대한 인문지리기행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서울학교는 매달 한번, 1년간의 일정으로 12코스를 기행하려 합니다. 각각의 코스는 각 점들의 '특별한 서울 이야기'를 이어주는 선입니다. 12코스의 선들을 둘러보는 기행이 모두 진행되면 '대강의 서울의 밑그림'인 면이 형성될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기행을 통해 터득한 여러분들의 상상력이 더해질 때 입체적인 '서울 이야기'는 완성되고 비로소 여러분의 것이 될 것입니다.
기행의 원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오전 9시 30분에 모여 3시간 정도 걷기 답사를 하고, 가까운 곳에 있는 맛집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에 1시간 30분가량 가까이에 있는 골목길과 재래시장을 둘러본 후 오후 3시쯤 마칠 예정입니다.
<서울학교> 개교일은 4월 29일(일)입니다.
제1강의 주제는 <인왕산과 옥류동천>입니다. 살구꽃이 아름답게 피어 도성안 경치 좋은 다섯 골짜기의 하나로 꼽혔던 인왕산의 옥류동천(玉流洞天)을 둘러볼 예정입니다.
이날 아침 9시 30분, 서울 종로구 홍지동 상명대 입구 중국음식점 <팔선생> 앞에서 걷기 가벼운 차림으로 모입니다.
제1강 코스는 이렇습니다.
홍지문→오간수문→탕춘대성→석파정 별채→자하문 밖→기차바위→인왕산→-옥류동천→치마바위→삿갓바위→곡성(조망)→윤동주 언덕→김상헌 집터→정철 생가터→선희궁 터→금천시장(가고파식당)→사직단→황학정→송덕기 택견 수련터→감투바위→필운대 터→송석원 터→이회영기념관→통인시장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답사지 설명을 들어봅니다.
인왕산은 한양의 내사산(來四山), 즉 북악, 낙산, 목멱산, 인왕산 중 우백호에 해당되며 인왕산이 부려놓은 계곡을 옥류동천(玉流洞天)이라고 하고 이곳에서는 중인(中人)들이 모여 시회(詩會)를 열었던 송석원(松石園)과 백사 이항복의 집터인 필운대(弼雲臺)가 있었고 세종과 송강 정철이 이곳에서 태어났습니다.
인왕산을 달리 필운산(弼雲山)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인왕산이 임금이 계신 궁궐의 오른쪽에 있어 '군주는 오른쪽에서 모신다(右弼雲龍)'는 의미로 필운산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로부터 필운대라는 지명이 나왔습니다.
인왕산에 오르는 길은 여럿 있습니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독립문 쪽과 사직단 쪽 그리고 창의문에서 오르는 길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이번 기행은 일반인의 발길이 뜸한 서쪽능선으로 올라 사직단 쪽으로 내려갈 예정입니다.
북한산 향로봉(香爐峰)에서 인왕산으로 뻗어 있는 능선 상에는 허물어진 듯한 산성(山城)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이것을 탕춘대성(蕩春臺城)이라고 부릅니다. 탕춘대성은 숙종 대(肅宗代)에 한양도성(漢陽都城)과 북한산성(北漢山城)을 연결하기 위해 쌓다가 중단한 미완성의 성(城)입니다.
탕춘대성을 쌓고자 한 이유는 북한산성과 한양도성 사이가 허술하여 서해로 침입한 적들이 한강의 난지도(蘭芝島) 어름에서 홍제천(弘濟川)을 따라 쳐들어오면 바로 닿는 곳이 한양도성의 북서쪽 문인 창의문(彰義門) 밖이 됨으로 이러한 지리적 특성에 따라 도성 방위를 위해 북한산성과 한양도성을 잇는 보조성(補助城)을 쌓기로 한 것입니다.
애초의 계획은 북한산성의 문수봉(文殊峰)에서 서남쪽으로 뻗어 나온 줄기인 향로봉에서 한양도성의 인왕산에 이르는 부분과 북한산성의 보현봉(普賢峰)에서 남동쪽으로 뻗은 줄기인 형제봉에서 보토현(補土峴)을 지나 한양도성의 북악에 이르는 부분에 성을 쌓기로 하였으나 인왕산에 이르는 부분만 공사를 시작하였고 그것도 미완성의 상태로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의 세검정초등학교 자리에는 황산벌에서 장렬히 전사(戰死)한 장춘랑(長春郞)과 파랑(波郞), 두 화랑(花郞)을 기리기 위해 신라시대에 세워진 장의사(壯義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연산군 대(燕山君代)에 이 절을 작파하고 놀이터로 만들고 그 이름도 '봄에 질펀하게 논다' 는 뜻으로 탕춘대라 하였습니다. 장의사의 유적은 세검정초등학교 운동장 한 귀퉁이에 당간지주(幢竿支柱)만 남아 전해지고 있습니다.
탕춘대성은 짓다만 성이지만 세 곳에 유적지가 남아 있습니다. 하나는 구기터널 위에 위치한 암문(暗門)이고 나머지 둘은 상명대학교 앞에 있는 홍지문(弘智門)과 오간수문(五間水門)입니다. 성(城)을 쌓게 되면 사람이 왕래(往來)할 문(門)을 내야 하고 물이 흐를 수 있도록 물길도 내야 합니다.
홍지문은 탕춘대성에서 사람이 다니는 공식적인 정문(正門)이고 암문은 비공식적인 비밀통로인데 정문은 누각(樓閣)이 있고 암문은 누각이 없습니다. 그리고 오간수문은 물이 지나갈 길을 다섯 구멍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오간수문이라 합니다.
▲ 홍지문과 탕춘대성 ⓒ서울학교 |
홍지문에서 차도를 건너면 지금은 음식점으로 변한 석파정(石坡亭) 별채가 있습니다. 석파정의 원래 이름은 삼계정(三溪亭)으로, 북한산의 문수봉(文殊峰)과 보현봉(普賢峰) 그리고 북악(北岳) 사이로 흘러내리는 세 물줄기가 이곳에서 하나로 모여 홍제천(弘濟川)이 되어 난지도(현재의 하늘공원)에서 불광천(佛光川)과 만나 한강(漢江)으로 합류하는데 세 물줄기 사이에 지은 별장이라 하여 삼계정이라고 하였습니다.
삼계정은 철종 대(哲宗代)에 영의정을 지낸 안동 김씨 세도정치의 중심인물인 김흥근의 별장이었는데 고종이 즉위하자 대원군이 잠시 머물기로 하고는 그냥 눌러 앉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대원군의 호인 석파정으로 개명하였습니다.
석파정의 본채는 부암동 터널 입구 본래의 자리에 그대로 있고 서예가 손재형이 이곳에 자신의 한옥을 지을 때 별채를 사들여 이곳으로 옮겨왔는데 '대원군 별장'으로 명명되어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별도 지정되었습니다. '대원군 별장'은 한국식과 중국식이 혼합된 새로운 건축양식을 보이고 있어 건축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대원군 별장'을 나와 홍제동쪽으로 인도를 따라 조금만 가면 왼쪽으로 인왕산에 오르는 나무계단이 나타나고 조금은 가파른 산자락을 올라가면 탕춘대성의 일부가 연결되어 있고 산성은 도중에 끊어져 있습니다.
능선에 오르면 멀리 북한산이 서남쪽으로 보현봉, 문수봉, 승가봉, 사모바위, 비봉, 향로봉, 수리봉으로 뻗쳐 있고 동남쪽으로는 보현봉에서 형제봉을 지나 구준봉을 거쳐 북악에 이르는 능선이 뻗어 있습니다.
▲ 한국식과 중국식 양식이 섞인 석파정 별채 ⓒ서울시 |
이 두 능선 사이를 아름다운 바위와 맑은 물로 유명한 한양 5경의 하나인 '세검정 계곡'이라고 하고, 달리 경치 좋은 곳으로 통칭되는 '자하문 밖'이라고도 합니다. 자하문은 창의문의 다른 이름으로 '자하문 밖'이라 함은 지금의 세검정, 평창동, 구기동, 부암동 일대를 말합니다.
이곳에 평창(平倉)과 탕춘대와 조지서(造紙署) 그리고 세검정(洗劍亭)이 있었습니다. 평창은 오위영의 하나인 총융청의 군수물자를 보관하던 창고이고 조지서는 이 계곡의 물이 너무 맑아 한번 사용한 한지의 먹물을 씻어내고 다시 종이로 만들었던 곳입니다.
그리고 세검정이라는 명칭은 인조반정 때 반정의 주역들이 칼을 씻었다고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는데 이보다는 총융청(摠戎廳)이 이곳에 있었기에 훈련을 마친 병사들이 쉬면서 칼을 씻었다는 설이 더 설득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세검이란 단순한 칼을 씻는 행위가 아니라 칼을 씻어 칼집에 넣어 둠으로 해서 더 이상 칼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평화를 상징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인왕산의 서쪽능선은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곳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창의문(彰義門)에서 바로 인왕산에 오르기 때문입니다. 이곳, 호젓한 소나무 길을 걸어가면 도시에서 켜켜이 쌓인 홍진(紅塵)이 말끔히 씻어지는 듯 상쾌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소나무 길을 잠시 벗어나면 좌우로 낭떠러지인 커다란 바위가 나타나는데 유명한 기차바위입니다. 이곳에서 잠시 다리쉼하며 내려다보면 북악에서 인왕산으로 이어지는 한양도성이 띠처럼 둘러쳐 있고 북악과 인왕산 사이의 안부(鞍部)에 창의문이 서 있습니다.
인왕산 정상에 오르면 조선의 법궁(法宮)인 경복궁과 내사산(內四山)인 북악, 낙산, 목멱산, 인왕산을 둘러친 한양도성이 내려다보입니다. 한양도성은 내사산을 잇는 도성을 둘러치고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네 개의 큰문과 네 개의 작은 문을 내고 도성 중심에 종루를 설치하였습니다.
그리고 도성 안의 유일한 물줄기인 청계천이 도성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흥인지문 옆에 오간수문을 설치하고 그 위로 사람들이 통행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정상에서 동남쪽으로 난 능선을 따라 내려서면 우리의 전통 무술인 택견을 수련하고 시합까지 하였던 곳이 남아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까지 택견 시합이 열렸다는데, 웃대와 아랫대 두 지역으로 편을 갈라 시합을 하였답니다.
웃대라 함은 청계천 상류지역인 도성안의 서북쪽으로 주로 하급 관리들이 살았고, 아랫대는 청계천의 하류지역인 도성안의 동남쪽으로 주로 하급 장교들이 살았습니다. 도성안의 서북쪽은 경복궁에 가까워 하급관리(吏胥)인 중인들이 많이 살았고 동남쪽은 훈련원이 있어서 하급장교(軍摠)인 중인들이 많이 모여 살았습니다.
인왕산의 서쪽 끝자락에는 토지의 신(社)과 오곡의 신(稷)에게 제사지내던 사직단(社稷壇)이 있습니다.
고대국가에서는 임금은 하늘이 내려준 것이라고 해서 대대로 세습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임금의 씨가 마르지 않게 대를 잘 잇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백성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어야 함으로 비옥한 토지와 튼실한 씨앗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궁궐을 중심으로 임금의 조상의 위패를 모시는 곳[宗廟]을 왼쪽에 두고 토지와 곡식의 신에 제사지내는 곳[社稷壇]을 오른쪽에 두어[左廟右社] 임금이 친히 납시어 제사를 지냈습니다.
12시쯤, 점심식사는 배화여대 앞에 있는 금천시장의 맛집 <가고파식당>에서 막걸리를 곁들여 순대국밥으로 합니다(다른 식사가 필요한 분은 주문해드립니다). 금천시장이라는 지명은 경복궁을 흘러나오는 물길을 금천(禁川)이라고 하는데 이 물길이 금천시장 입구에서 합류하여 청계천으로 흘러들기 때문에 붙여진 것입니다.
이곳이 세종대왕께서 태어난 곳이라고 최근에는 '세종음식문화거리'로 불리기도 합니다. 식사 후에는 금천시장, 통인시장을 견학하고 도성의 서북지역 골목과 필운대 터, 송석원 터, 정철 탄생지 등을 둘러본 후 윤동주 언덕에서, 대략 3시쯤 제1강을 마칠 예정입니다.
이날 아침 9시 30분에 모이는 장소는 세검정 삼거리 앞 상명대 올라가기 직전의 왼쪽 중국음식점 <팔선생> 앞입니다. 구체적으로,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출구로 나와, 세검정행 버스를 타고 10여분 가서 세검정 삼거리 못 미쳐 상명대입구 버스정류장에서 내린 후 상명대 입구쪽으로 길을 건너면 됩니다.
준비물은 다음과 같습니다.걷기 편한 차림, 스틱, 무릎보호대, 식수, 윈드재킷, 우비, 따뜻한 여벌옷, 간식, 자외선 차단제, 헤드랜턴, 필기도구 등(기본상비약은 준비됨).
서울학교 제1강 참가비는 5만원입니다.(1회 식사와 뒤풀이, 강의비, 운영비 등 포함). 참가신청과 문의는 사이트 www.huschool.com 전화 050-5609-5609 이메일 master@huschool.com 으로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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