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을 상원(上元)이라 하는데 호서(湖西)지역의 서해안 어촌들은 이때를 맞이하여 풍어제를 벌이고 내륙의 농촌 마을들은 저마다 풍농을 기약하는 잔치마당을 차려놓는다. 우순풍조(雨順風調), 시화연풍(時和年豊)을 바라면서 달님에게 풍요와 다산을 축원하는 마을 축제다. 새해맞이 설날이 남성가부장 중심의 태양 축제의 성격을 갖는 것과 대조된다. 달집태우기, 쥐불놀이, 지신밟기, 횃불싸움, 석전(石戰)놀이, 더위팔기, 오곡밥 먹기, 귀밝이술 마시기 등 다양한 잔치와 함께 마을마다 특색 있는 동제(洞祭)와 당제(堂祭)를 거행한다.
충남 청양군 정산면 송악리 하송(下松)마을과 남천리 새울(鳥谷)마을은 정월 열나흘(14일) 저녁에 달이 뜨기를 기다려 <동화제(洞火祭)>라 부르는 마을축제를 벌인다. 주민들이 모두 울력에 나서서 나무꾼 노릇으로 모아놓은 나뭇단을 묶고 엮어 '동화대'를 쌓아 올리는데 높이가 3m를 넘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연신 농악 풍물을 울리고 곱새춤에 등신춤까지 온갖 농무를 추면서 이윽고 동화대에 불을 지르면 마을 주민들과 손님들 모두 발복(發福) 소망 축원의 소지(燒紙)를 올린다. 동화제의 제례 자체는 축문을 읽고 헌작을 하는 유교식 제의이지만 남녀노소 구분 없이 음주 가무음곡을 한껏 즐기고 누리는 풍성한 두레 잔치다.
올해의 정월 대보름날은 양력으로는 2월 28일 일요일이 되는데 청양 동화제 축제는 토요일인 27일 저녁에 열리게 된다. 국토학교 제11강을 청양 달마중 잔치마당에서 갖고 아울러 소지 발복 행사도 누리고자 한다. 특히 하송마을 동화제는 향토문화 진흥을 위한 충남도청의 특별 지원을 받고 있는데 이러한 아랫마을(하송) 축제와 함께 윗마을인 상송마을에서는 정월 대보름날 이른 새벽에 <장승제>의 축제를 벌인다. 천하대장군/지하여장군의 한 쌍 장승목을 미리 마련하여 조각해놓았다가 하루 전날 정오 무렵에 마을 입구에 세워놓는다. '족보 없는 장승'이 넘쳐나는 때에 <당산제>를 제대로 받아 잡수는 장승의 민예(民藝)는 소중하다.
하송마을의 열나흘 저녁 달마중 불놀이축제와 상송마을의 대보름 새벽 장승제는 매년 2백여 명의 인파가 몰려들 정도로 성황을 이루는 우리 국토의 대표적인 '봄의 제전(The Rite of Spring)'이 되어 있다. 마을 주민들은 거의 모두 날밤으로 철야하며 아랫마을과 윗마을 축제를 함께 즐긴다. 국토학교에서 방문을 한다면 음주 가무음곡의 잔치마당은 얼마든지 풍성하게 누려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전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봄맞이 풍년 발복 축제와 가을 추수감사 축제를 즐기지 않는 곳은 없다. 전 세계의 축제는 두 가지 유형으로 이루어진다. 카니발 계열과 페스티벌 계열이다. 봄철에 열리는 카니발은 '사육제'라고 번역되기도 하지만 '육체에 대해 감사하는' 축제는 아니다. 기독교의 부활축제와 로마제국의 농신제를 합류시키는 종교 신앙적인 축제로부터 출발한다. 페스티벌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를 기리는 가을철의 연극 경연대회를 계승하여 축제로 발전시킨 것이었다.
우리의 경우에도 고대에는 목욕재계의 봄맞이 계욕(禊浴) 축제와 10월 상달의 제천(祭天) 국풍대회가 있었다. 고려시대에는 봄철의 화전놀이를 곁들인 연등회와 가을철의 산대놀이 즐기기의 팔관회 축제가 이어져 왔다. 조선시대에도 광화문보다 더 높게 세우는 산대희(山臺戱)의 궁중축제는 성황을 이루다가 16세기 성리학자들의 배척을 받아 중단된다. 그러나 산대놀이는 탈춤 마당놀이와 결합되어 전문 연희패 광대(廣大)를 통해 전국의 지역축제로 확산되었다. 하지만 우리 민속의 전통축제와 기층문화는 바깥에서 들어온 근대와 충돌하면서 위기를 맞게 된다.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자주 자립 협동의 두레문화를 파괴하기 위해 '미신'이라는 단칼의 폭력으로 마을축제를 말살시키려 했고 해방 후의 백색독재와 군사독재 또한 지방자치 지역문화축제에 대한 억압책을 지속시켜 왔다. 그러하지만 1970년대로부터 마당극 부흥운동이 일어나고 전국의 동제와 당제의 축제도 되살아나기 시작하는데 정작 '산대문화'의 르네상스는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유신 반대 저항담론에만 관심을 쏟았던 나머지, 민중의 신명 세상 소망과 삼신산 유토피아 부활 염원의 산대놀이를 리모델링하려는 것에 대해 관심을 두지 못했다. '산대문화'를 재흥시킬 아주 소중한 기회를 놓쳐버린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너무 늦은 것만은 아니다.
지난 1990년대 이후로 한국사회는 새마을운동 아니라 옛마을운동의 중요함과 필요성을 일깨우게 되는데 안타까운 것은 농어촌의 해체가 극심하게 진행되어 민속 전통의 재흥이 여의치 않다는 점이다. 정치 경제의 대도시 집중 '쏠림현상'에 대해 생태 환경과 민속과 민족학의 '역쏠림 문예운동'이 절실히 필요하게 되었다.
독일 등지에서 벌어지는 봄맞이 맥주 카니발이라든가 브라질 등지에서 벌어지는 여름과 가을의 페스티벌에 감탄하면서 '왜 우리에게는 이러한 카니발도 페스티벌도 없는가' 반문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민속축제의 민족지(民族誌)…, 아스팔트정글 지대를 탈출하여 가장 한국다운 세시풍속의 신명 놀이마당을 찾아가면 가무음곡을 즐기는 하늘님 자손 천손족의 풀뿌리 민주주의가 되살아나고 있음을 확인해보게 될 것이다.
▲ 국토학교 11강 답사지도 |
교장선생님이 준비하신 11강 답사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2월 27일(토요일)
07:30 서울에서 출발 (7시 20분까지 서울 강남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 유진여행사 경기76아 9111호에 탑승바랍니다. 김밥과 식수가 준비돼있습니다. 일정은 현지 사정에 따라 일부 조정될 수 있습니다.)
09:30-10:30 아산 외암마을-강당골 순방 (충남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
아산 외암마을은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 순천 낙안읍성, 제주 성읍마을, 강원도 고성 왕곡마을과 함께 문화재청이 '전통민속자료'로 지정한 전국의 6개 전통 민속촌 중의 하나이다. 굳이 분류해본다면 외암마을은 민촌(民村)이라기보다는 삿갓촌, 곧 예안 이씨의 반촌(班村)에 해당되지만 한옥과 함께 초가들이 한국 산수화의 풍광을 고스란히 간직하여 보여준다. 외암마을의 취락형태와 전통가옥의 구조 및 마을길의 배치에 대해 하회마을⋅양동마을과 흥미롭게 비교해볼 수도 있겠다.
16세기 조선선비문화는 주리론과 주기론의 이기논쟁을 전개했지만, 18세기에는 호락논쟁(湖洛論爭.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이 같은가, 다른가에 대한 논쟁)을 펼쳐 보이는데, 인성과 물성이 같다는 <인물성(人物性)동론(同論)> 즉 서울 주변의 낙론(洛論)은 외암(巍巖) 이간(李柬, 1677~1727)이 주창하고 <부동론(不同論)> 즉 호서지역의 호론(湖論)은 한원진(韓元震, 1682~1751)이 내세웠다. 이간은 바로 외암마을을 중흥시킨 인물이었고 마을 남쪽의 광덕산 골짜기 위쪽으로 강당(講堂)을 지어 후학들을 가르쳤다. 이 강학소의 '관선재(觀善齋)'라는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로서 아직껏 보존되고 있는데, 외암마을은 김정희 처가마을이 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강당골의 관선재까지 자동차 도로로 닿을 수 있다.
외암마을은 '유교산수'를 고스란히 간직하여 특히 영화감독, 동양화가, 건축가라든가 한국문화에 관심이 있는 외국인들의 필수 순방코스가 되고 있다. 대보름 민속축제 마을행사도 갖고 있는데 많은 외래객들이 운집한다.
아산 외암마을 바로보기 : http://www.oeammaul.co.kr/
11:00-11:40 마곡사 탐방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유구천이라 부르는 시냇물을 돌아들어가는 마곡사의 솔바람 길은 어느 계절이나 비경을 보여주지만 한 겨울 썰매장의 풍광을 지금에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반갑다. 마곡사 일대는 풍수지리의 남사고(南師古, 1509~1571)가 10승지의 하나로 꼽았던 길지 중의 길지이다. 감여가(堪輿家=지관)의 전언이야 어찌 되었든 산줄기는 2∼300m 내외의 표고로 높지는 않지만 부드러움과 함께 의연한 결기도 내보인다. 산중중(山重重) 수곡곡(水曲曲)이라 한다. 산은 겹겹으로 둘러싸고 물은 돌고 또 돌아 나가는데 천년사찰의 풍격은 높기만 하고 백범 김구의 사연을 간직한 소나무는 의연하게 푸르기만 하다. '춘마곡(春麻谷)'이라 하여 봄철의 마곡사를 높게 꼽는데, 맹춘(孟春)의 진경산수를 그윽이 살펴야 한다.
마곡사 바로보기 : http://www.magoksa.or.kr/main.html
12:00-12:40 점심식사 (공주시 [연문대가]의 연문오채비빔밥)
13:00-13:40 공산성 순례 (충남 공주시)
백제 시대에는 '고마성(城)'이라 했고 구태여 한자 표기를 할 적에는 '웅진성'이라 하였다. 물론 이 왕성은 백제 멸망 후 황폐해지고 군사기지의 산성으로 바뀌어 신라-고려-조선 시대를 거쳐 왔다. 그러나 백제 왕성을 '공산성(公山城)'이라는 산성으로만 치부하는 것이 민망하다. 제대로 된 이름을 찾아줄 것을 건의해보곤 하지만 반응이 없다.
타원형의 방자형(方字型)으로 축성돼 있는 이 왕성의 성곽 길이는 2,660m인데, 능선과 골짜기의 형세를 그대로 포괄하여 쌓은 포곡식(包谷式)이다. 그런데 임진왜란-병자호란 무렵 여러 번 개축하여 1,925m의 성곽을 석성으로 다시 쌓으면서 동문 쪽의 735m 길이의 토성은 그대로 남겨두었다. 바로 '백제 토성'이 보존되게 한 것인데 오히려 다행스런 일이 되었다. 한국인보다 외국인들이 더욱 이 토성 앞에서 감동을 받는다 한다. 1,500년의 '압력'을 거든하게 버티어내는 토축술(土築術)의 '비교 역사학'이 보다 정밀하게 요청된다.
공주시 문화관광 바로보기 : http://tour.gongju.go.kr:8090/jsp/ko/
14:00-14:30 새울(鳥谷)마을 동화대 쌓기 (충남 청양군 정산면 남천리)
청양 정산면 남천리의 새울마을과 송학리의 하송마을은 이웃마을을 이루고 있는데 동화대 쌓기와 불놓기의 마을 축제를 각기 따로 갖고 있지만 그 동제의 형태와 진행이 유사한 점이 있다. 마을 주민들이 모두 나서서 나무 짐을 해온 것을 한데 모으고 이어서 동화대를 올려 세우는 것으로부터 축제는 본격화된다. 예전에는 마을축제를 벌일 적에 '금(禁)줄'을 쳐서 바깥사람들이 동네 안쪽으로 들어오는 것을 엄히 금지시켰던 것이지만 세월이 거꾸로 흘러 이제는 외래객들을 반기기만 하는 풍속으로 바뀌었는데 산골마을 외로움이 심한 탓이다.
청양군 문화관광 바로보기 http://tour.cheongyang.go.kr/
15:00-15:30 상송마을 장승 세우기 참관 (충남 청양군 정산면 송학리)
청양 정산면 송학리는 상송마을(윗솔티), 하송마을(아랫솔티), 군장동, 비봉골 등의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을 '솔티'라 부른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적에 소서행장(小西行長, ?~1600)의 군대가 솔티고개를 넘어 상송마을 동구 밖에 다다랐는데 [동남방 청적제(靑赤帝) 축귀대장군](여장승), [서북방 백흥제(白黑帝) 축귀대장군](남장승)이라 새겨놓은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의 두 장승이 험악해 보이기만 하였다. 왜군들이 겁을 내어 마을 안으로 들어오지 아니하고 그냥 지나쳤다 하고 그로부터 이 마을은 장승제를 더욱 극진하게 올리게 되었다 한다. 솔티고개가 이처럼 하삼도(下三道)로 통하는 길목이었기에 마을 지킴이 역할과 함께 이정표 구실도 하는 '장승제'의 축제가 이 마을에 필요하게 된다.
상송마을은 현재 20여 호가 채 되지 않지만 모두 지극정성으로 장승제를 지내고 소지를 올린다. 마을사람들은 미리 마련한 한 쌍 장승목을 조각해 놓았다가 정월 대보름 하루 전날 정오 쯤 마을 입구에 세워놓는다. 다음날인 대보름 새벽 5시 무렵이면 횃불을 밝혀 동구 밖에 새로 세운 장승 터에 모인다. 이어서 음복과 함께 마을 잔치는 여러 집의 사랑방들로 옮겨가며 계속된다.
16:40-19:00 하송마을 동화제(洞火祭) 참례
<동화제>라는 명칭은 '마을 불꽃 축제'의 뜻이 되겠으나 원래는 '봉화제(烽火祭)'라 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에 마을 주민들이 모두 횃불(봉화)을 들고 나서서 전쟁의 피해를 막을 수 있었던 데에서 이러한 '불놀이'의 두레잔치 풍속이 전해온다고 한다. 전통시대에는 마을 대항전으로 횃불싸움놀이를 즐겼다고도 하는데 식민시대에 들어서면서 아예 모두 금지되었던 것을 1988년에 극적으로 부활시키게 했다(물론 횃불싸움 부활은 엄두도 못내지만).
어른들이 동화대를 올려 세울 적에 아이들은 쥐불놀이를 하면서 <나무 노래>를 불렀다는데 1989년에 채집한 가사를 여기에 옮겨놓는다.
산에 올라 산나무 등에 올라 등나무
낮에 나도 밤나무 사시사철 사시나무
어이야라 쌓이요. (이하 후렴 생략)
들에 나도 배나무 불에 붙어 행나무 불 밝혀라 등나무
용춤 추어 용나무 십리 절반 오리나무 열의 갑절 스무나무
중기중기 느릅나무 한치라도 백자나무 갈기갈기 가락나무
조선에만 호도(효도)나무 버선끝에 상모나무 빠르기가 화살나무
방구 뀌며 뽕나무 하느님께 비자나무 우물가에 물푸레나무
월궁에 계수나무 거짓 없이 참나무 새로 지은 옷나무
그렇다고 치자나무 깔고 앉아 구기자나무 달고 달아 꿀나무
외지게에 벗나무 부끄러워 무안나무 굿놀이에 사당나무
어이야라 쌓이요.
19:00 저녁식사, 숙박 (충남 청양군 정산면 남천리 바둑골 산촌생태마을 팜스테이)
남천리 산촌생태마을 바로보기 : http://www.cync.kr/
2월 28일(일요일)
06:00-07:00 남천리 산촌생태마을 바둑골 산책
07:30-08:10 아침식사 (남천리 산촌생태마을의 된장국백반)
08:40-09:40 칠갑산 천장호(天庄湖) 트레킹 (충남 청양군)
칠갑산(561m)은 높지는 않지만 산세가 험하고 교통이 불편하여 자연생태수림의 보존상태가 좋은 편인데, 일곱 군데의 명당을 간직하고 있다 하여 '칠갑산'이란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천장호는 칠갑산의 동쪽 계곡의 하천을 막아 7년간의 공사를 거쳐 1979년 관개용 저수지로 축조되어 새로운 명소가 되었다. 이른 봄이면 빙어를 낚는 낚시꾼들로 붐비며, 산등성이에 정자가 있어 호수의 경관을 내려다볼 수 있다.
천장호 출렁다리는 207m의 길이에 1.5m의 폭으로 건설된 다리인데, 고추 모양으로 세운 16m 높이의 주탑을 통과하여 천장호수를 가로지르고 있어 산상호반의 이색경관을 만끽해볼 수 있다.
10:00-10:40 장곡사(長谷寺) 탐방 (충남 청양군 대치면 장곡리)
특이하게도 상대웅전-하대웅전으로 두 개의 대웅전을 갖고 있는 사찰인데 두 건축물 모두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장곡사의 미륵불괘불 탱화는 국보 300호이고, 하대웅전에 있는 금동약사여래좌상은 보물 337호로 지정되어 있다. 김시습 부도가 있는 무량사와 함께 칠갑산을 찾는 이들이 들러야 할 고찰이 장곡사이다.
11:20-12:00 점심식사 (충남 부여군 부여읍 [구드래돌쌈밥]의 돌쌈밥)
12:20-14:30 부여 정림사지, 부소산성, 낙화암, 궁남지 (충남 부여군)
백제의 마지막 왕도인 부여는 원래 소부리(所夫里)라 하였는데 이는 '숲벌', 곧 숲으로 둘러싸인 벌판이라는 뜻이었고 백마강의 다른 이름인 사비강 또한 '숲강'이라는 뜻이었다. 실은 백마강이라는 명칭보다는 사비강이라는 본 이름을 제대로 찾아주어야만 한다. 정림사지의 5층석탑(국보 9호)을 어이없게도 '평제탑(平齊塔)'이라고 가르친 국사교과서마저 과거에 있었는데, 이 석탑에 소정방이 엉뚱한 문자를 새겨 넣은 것을 간과했던 때문이었다. '삼천궁녀의 낙화암'이라는 어이없는 허위 가공의 전설을 버젓이 뇌까리게 하는 오늘의 한국인들의 역사 무지몽매, 패배주의 사관, 허무주의 사관의 횡포를 어찌 바로잡아야 하는 것일까. 부여 능산리 출토의 '백제 금동 대향로' '백제 석조 사리감'을 소재로 하는 역사추리문학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정림사지박물관 바로보기 : http://www.jeongnimsaji.or.kr/main.asp
부여군 문화관광(부소산성, 낙화함, 궁남지) 바로보기 : http://buyeotour.net/
14:40 서울로 출발
국토학교 2월 참가비는 15만원입니다(교통비와 숙박비, 4회 식사와 뒤풀이, 입장료, 여행보험료 등 포함). 버스 좌석은 참가 접수순으로 지정해드립니다. 참가신청과 문의는 사이트 www.huschool.com 전화 010-2471-7410 또는 050-5609-5609 이메일master@huschool.com으로 해주세요.
국토학교는 지난해 4월에 개교하여 국토답사를 매월 빠짐없이 해왔는데 국토강좌는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습니다.
제1강 (4월): 남한강 뱃길 따라 영남대로 옛길 따라
제2강 (5월): 영남 전통마을 순례 (답사 키워드 - 산은 책이다)
제3강 (6월): 호남의 누정문화 원림문화 (풍경의 발견과 재발견)
제4강 (7월): 북강원의 요산요수 (동해안 풍류길 되살린다)
제5강 (8월): 내포지방에 부는 바람 (백제의 미소와 제2의 지중해)
제6강 (9월): 금강문화권의 초대장 (옛이야기 재잘대는 실개천 휘돌아)
제7강 (10월): 낙동강 따라 가야 달빛기행 (우리 땅의 고고학 상상력)
제8강 (11월): 만추의 호남 단풍길, 침엽수길 (대자연 소자연 합자연)
제9강 (12월): 동해에서 묵은해 보내기(동해용왕과 수로부인과 해신당)
제10강 (1월): 임진강의 봄, 한탄강의 봄(분단유목문화 가로지르기)
<학습자료 : 아산 외암마을 전통경관 / 청양 대보름 축제>
아산 외암마을의 전통경관에 대한 관심과 탐구는 외국인들이 더욱 진지하다고 합니다. 아스팔트 바다에 둘러싸인 절해고도의 형세가 되어버리기는 했지만 자연경제시대의 조선 산수화와 산림경제와 임원경제의 농촌문화를 외암마을은 간직합니다.
청양 대보름축제는 호남 김제만경평야라든가 나주평야의 풍년기원 축제들과 함께 아직껏 한바탕 신명의 마을잔치를 벌이고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전국 전토의 전통축제들이 거의 사라져버리게 되었기 때문에 청양의 동화제와 장승제가 더욱 그립습니다. 1988년에 썼던 나의 기행글 한 대목을 옮겨봅니다.
두레문화에 접근하는 관점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민속학은 '전통문화'라는 잣대를 통해 오늘의 산업문명과는 일단 상관없이 세시풍속 통과의례의 '민족형식'을 살핀다. 종교학은 원시종교 · 하등종교 · 고등종교를 분류하여 '종교현상'을 관찰한다. 종교 대신 「과학」을 내세우는 논리는 우리의 민속축제를 오늘의 현실에서 주로 의식적 · 무속적 또는 집단 무의식 심리의 심층 구조로서 파악해 보려고 한다. 사회학은 「튜니스」가 말하는 바 게마인샤프트-게겔샤프트의 논리가 우리의 공동체 사회의 전통과 그 해체 과정에 어떻게 적용될까 하는 관점에서 사회심리학(또는 문화심리학)의 현단계를 파악해 보려고 한다. 예술은 두레놀이에 나타나는 연행예술(演行藝術)의 성격으로부터 그 문학성 · 음악성 · 희화성을 살피려 하고 또는 살리어내려고 하는 노력을 보인다
.
그런데 이러한 탐구들이 「나의 것」을 내가 어떻게 체득해내고 있으며, 또는 나의 체득을 내가 어떻게 해명하느냐 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못되는 듯하다. 내 마음 속의 오리엔탈리즘이 있고 내 마음 속에 이미 식민주의와 신식민주의 표층문화가 우세하여 기층문화를 밀어내기 때문일 것일까.
아산 외암마을 전통경관, 청양 대보름 축제와 관련되는 학습자료를 <국토학교 카페>에 올려놓고자 하니 많은 이들의 방문을 바랍니다.
국토학교 카페 : http://cafe.naver.com/dadsa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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