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주말(4일) 김대중도서관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 자택을 방문해 2시간 동안 오찬과 대화를 나눈 데 대해 갖가지 정치적 해석이 쏟아지자 청와대가 "전현직 대통령의 자연스러운 만남마저도 정치적으로 매도되는 각박한 정치환경이 개탄스럽다"고 손사래를 쳤다.
야당과 보수 언론은 물론 거의 모든 언론은 노 대통령의 동교동 방문에 대해 '정계개편을 염두에 둔 정치적 포석'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은 7일 "(동교동) 식사 자리의 성격상 그런 말을 할 자리가 아니었다"며 "(김 전 대통령이) 북핵문제에 대해 평소 갖고 있던 생각을 다시 쭉 말씀하셨고 대통령께서는 주로 들으셨다"고 전했다.
홍보수석실 "미국은 괜찮은데 왜 우리는 안 되나"
"오늘 기사가 많이 나왔던데 너무 확대해석한 것 같다"고 말한 이 실장은 "사실 차만 마시고 환담하기로 돼 있었는데 그 쪽(동교동)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식사라도 하자는 제의를 받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홍보수석실은 '전현직 대통령의 만남마저 정치공세의 대상인가'라는 글을 청와대브리핑에 실어 언론을 맹비난했다.
먼저 홍보수석실은 "미국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의 기념도서관 개관식에 부시 대통령이 참석했을 때 현직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을 치켜세웠고, 전직 대통령이 국민대통합을 이야기하자 언론은 '전현직 대통령이 당파를 초월해 나라의 단결을 공고히 했다'고 평가했었다"고 미국 사례를 제시했다.
홍보수석실은 이어 "노 대통령이 김 전 대통령을 방문하자 우리 언론과 야당은 '상왕정치' '백기투항' 등의 자극적 조를 동원해 비틀었다"며 "하지만 당과 정치문제에 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홍보수석실은 "김 전 대통령 사저 방문은 이미 2003년 6월 검토된 적이 있지만 김 전 대통령 측에서 격식에 맞지 않는다며 고사하고 청와대를 방문했었다"며 "우리 언론도 이제는 정치공학적 시각에서 무리하게 기사를 만들어 내려는 유혹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고 질타했다.
하지만 홍보수석실도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인 만큼 추측보도가 걱정되기는 했다"고 말했듯이 청와대의 손사래에도 불구하고 범여권 안팎에서는 4일 두 사람의 만남을 '순수하게' 해석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형편이다.
만남 자체의 정치적 효과 예상 못했을까?
게다가 아무리 '만남의 순수성'을 주장해도 그 만남 자체가 정치적 효과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당사자들 스스로가 예측하지 못했을 리는 만무해 보인다.
최근 활발히 움직이고 있는 김 전 대통령이 대북문제에 대한 언급을 넘어 "민주당 분당은 잘못된 일"이라고 현실정치에 개입을 하자 김근태, 정동영 등 우리당 창당주역들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며 맞장구를 치기도 했다.
따라서 우리당 다수는 급격하게 DJ에 '투항'하고 개혁세력을 자임하는 친노진영도 북핵정국에서 DJ를 비판하기도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노 대통령은 자칫하면 DJ의 세력권에 완전히 포위, 고사될 상황에 처했었다.
따라서 노 대통령의 이번 동교동 방문에 대해 '백기투항' 식으로 평가하기는 무리가 있다손 치더라도 청와대가 범여권을 향해 'DJ의 영향력 인정'과 '독자적인 영역 과시'의 중층적인 의사를 전하려 했던 것이라고 지적될 수는 있다. 특히 이 만남이 박지원 전 김대중 대통령 비서실장의 형집행정지 석방 직후에 이뤄진 점이 이같은 해석에 힘을 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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