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경'은 나라의 경계가 되는 변두리 땅이다. 북으로는 비무장지대부터 서쪽으로는 백령도와 연평도, 남으로는 해군기지가 들어설 제주 강정마을까지 이 땅의 변경을 찾아 기록한 사진가 이상엽은 그런데 왜 작업노트 첫머리를 이렇게 써야 했을까?
2009년 발생한 용산참사는 자본의 탐욕과 개발 논리가 만들어낸 불행한 사건이었다.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죽었다. 서울의 심장부에서 터진 이 사건을 통해 사진가는 우리의 인식에서 철저하게 변경화된 사회의 그늘을 봤다. 이뿐일까? 이미 뿌리깊게 자리잡은 비정규 노동의 문제에서, 알게 모르게 퍼져 있는 신자유주의의 폐해에서 사진가는 그것들을 발견했다.
이상엽 사진전 '변경'은 지리적 변경의 삼엄하고 암담한 풍경들이 어김없이 분단이라는 불행한 현대사에서 비롯된 것임을 생각한 사진가가 변경의 근원이 인간과 역사에 있음을 깨닫는데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만들고 있는 변경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낸 작업이다. 그는 끊임없이 중앙의 질서로 편입하려 애쓰는 인간들이 타자화시키고 변경화시킨 계층 혹은 사건들을 기록함으로써 시대를 읽어내려고 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그 결과물이다.
▲ 포이동 재건마을 ⓒ이상엽 |
ⓒ이상엽 |
전시는 지리적, 심상적, 신자유주의적 변경이라는 세 가지 테마로 구성돼 있다. 2010년 <이상한 숲, DMZ>로 발표한 비무장지대 작업과 NLL 문제로 갈등이 고조된 서해 5도, 그리고 해군기지 건설 갈등이 불거진 제주 강정마을의 기록이 지리적 변경에서 소개되고,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변경화된 재개발 문제나 사대강 사업 문제 등이 심상적 변경에서 다뤄진다. 그리고 비정규직 문제나 정리해고 등의 문제를 신자유주의적 변경에서 소개하고 있다.
사진은 대부분 현장 사진이다. 오랫동안 그가 카메라를 들고 찾아간 현장들은 하나같이 어둡고 주변적인 곳이었다. 사진가는 그것을 하나로 묶었다. 매 순간 직관으로 기록한 사진에서 공통의 주제를 짚어내고 정리한 것이 이 작업의 시작이다. 이런 점에서 이 작업은 사진가가 그동안 무엇에 주목했는지를 솔직히 드러낸다.
현장 사진이지만 이미지는 설명적이지 않다. 빛은 모호하고 음산하다. 앵글은 거리감을 두고 엿보는 듯하다. 프레임에는 많은 것을 담지 않았다. 이는 사건의 표면 이외의 것들을 천천히 생각하게 하기도 하고 사진가가 현장에서 느꼈을 고유의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하기도 한다.
작업노트 맨 마지막에는 "변경은 무질서의 세상이 아니라 세상을 만들어내는 자궁이다"라는 말이 선언처럼 적혀 있다. 무겁고 암울한 현실을 기록한 사진들 맨 뒤에 나오는 말로는 의외다. 사진가는 변경의 황폐함을 보면서도 변화의 씨앗을 바로 거기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타자화와 배제의 논리가 익숙하고 물질에 대한 맹목적 욕망이 부끄럽지 않은 시대에 이 전시는 어쩌면 우리가 만들고 있을지 모를 또 하나의 '변경'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던지고 있다. 서울 통의동 류가헌 갤러리에서 13일까지.
▲ 서해 5도 ⓒ이상엽 |
▲ 홍등가 ⓒ이싱엽 |
▲ 재개발 ⓒ이상엽 |
ⓒ이상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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