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에 사진과 만났다.
그 때, 내 삶에 있어 유일한 위안은 부모도, 형제도, 친구도 아닌 사진이었다.
내 방 한 구석에 엉성하게 만든 암실.
그 공간 안에서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도 하고, 시와 소설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고, 그 시간들은 기꺼이 나의 힘들고 아팠던 마음을 다독여 주었고, 위로해 주었다.
눈만 뜨면 사진을 찍고, 필름을 현상하고, 암실에 박혀서 인화하는 시간...
시간은 느리게 갔다.
그 느린 시간의 흐름 안에서 난 나를 정확히 바라 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야 되는 것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하다.
그 때. 그 시간.
충만했고, 그 충만함으로 행복했다.
아무도 나의 마음을 몰라준다고 생각했던 시기.
카메라는 나와 내 자신을, 나와 타인을, 나와 세상을 소통할 수 있게 해준 유일한 도구였다.
스스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글쓰기를 통해, 어떤 사람들은 음악을 통해, 또 어떤 사람은 그림을 통해, 운동을 통해, 신앙을 통해 여러 가지의 방법으로 자신의 아픔을 스스로 극복해 간다.
나는 사진을 통해 스스로 위로받았고 삶에 용기를 얻었다.
치료, 치유, 힐링, 테라피, 상담, ...
굳이 이런 어려운 전문용어를 쓰지 않더라도 우리는 넘어지고 상처가 나면 빨간약을 찾는다. 마음에 상처가 나도 빨간약을 찾는다.
모든 상처는 자신이 가장 잘 안다.
어느 부위가 아픈지, 어떻게 다쳤는지, 어떤 상황에 상처가 났는지...
그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세세하게 말 할 수 있는 것도 자신이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마음의 상처에 대해 솔직하지 못하고 말하기조차 꺼려한다.
마음의 문이 스르륵 닫힌다.
웅크려든다.
주름이 진다.
멍이 든다.
그늘진 마음 안에 햇볕이 필요하다.
▲ 바람의 소리 ⓒ원혜란 |
오랫동안 광합성을 하지 못한 화초들이 소들소들 말라가듯,
우리의 마음도 광합성을 하지 못하면 말라가는 화초와 다를 바 없다.
어쩌면 화초보다 못할지 모른다.
화초는 소들소들 말라 떨어진 잎이 다시 거름이 되어 새 생명으로 탄생하는데 보탬이라도 되지만, 사람 마음이 시들어 버리면 회복하기가 힘들다.
나뭇잎에는 보석처럼 엽록소가 박혀 있어서 스스로 햇빛과 물을 합쳐서 새 생명을 만들어 낸다.
사람에게도 보석처럼 박혀 있는 엽록소가 있다.
나는 그것을 예술이라 말한다.
예술은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영혼에게 빨간약 역할을 한다.
친구들에게 사진은 자신의 몸에 박혀 있던 숨은 보석들을 찾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 보석을 발견했을 때 자신이 무얼 할 수 있는 사람이고, 과거의 나와 화해할 수 있게
해주는 긍정적인 호르몬이 발생한다.
굳이 심리학을 전공하지 않더라도 헤아려지고 알아지는 것들은 내가 아파봤었고, 내가 바닥에 깔려 허둥거려 봤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알아지게 된 것 뿐이다.
인생은 책을 펴서 공부를 해야만 터득되고 알아지는 것이 아니잖는가.
이 친구들 사진을 보면서 미묘하게 뒤섞인 따뜻함이 축복처럼 가슴속으로 퍼져간다.
그런 따뜻함이 내 삶에 살포시 다가와 조용한 격려를 보낸다.
내 마음의 빨간약은 어쩌면 이 친구들의 사진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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