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처음 한 것은 협동조합에 대해 함께 공부한 것. 협동조합은 일반 회사와 달리 나름의 원칙과 정신이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학과가 끝나면 정기적으로 모여 세계협동조합연맹의 협동조합 7대 원칙 등을 공부했다. 이 과정에서 '은협'을 어떤 규칙과 가치를 가진 협동조합으로 만들지 의견을 좁혀갔다. 논의가 분분했으나 '사람도 자연도 즐거운 유쾌한 밥벌이를 하는 곳으로 만들자고 뜻을 모았다. 협동조합으로 사업을 하면서 '공정한 거래', '친환경', '일하는 즐거움', '스스로 일어나는 자립' 등의 가치를 배워보자는 뜻이었다.
막상 협동조합은 설립했는데 이 회사가 무슨 사업을 할지가 문제였다. 이 또한 많은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학생으로서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사업으로 몇 개를 추려 나갔다. 먼저 야심 차게 시작한 첫 사업은 양계장. 학교에서 닭을 키워 달걀을 교내 제과·제빵 동아리나 요리실습 수업, 이웃 주민들에게 팔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거의 모든 준비가 끝날 무렵 중국에서 조류 인플루엔자가 발생해 사업이 무기한 연기됐다.
▲ 지주환 군과 산청 간디학교 협동조합 은협의 친구들이 봄에 심은 감자를 캐며 즐거워하고 있다 ⓒ산청 간디학교 지주환 |
지 군과 친구들은 비록 현실의 쓴맛을 보긴 했지만 2학기에 솔잎 효소 등 새 사업을 계속 발굴해 나갈 계획이다. 지 군은 "3학년인 우리가 졸업하면 후배들이 이어가고 선배인 우리가 이끌어 학교 안에서 '사람도 자연도 유쾌한' 도전이 계속 이어지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지 군은 이런 내용을 수기에 담아 아이쿱 소비자활동연합회 등이 주최하는 '2013 윤리적 소비 공모전'에 보냈고 청소년 분야 수상작으로 뽑혔다는 연락을 받았다.
요즘 도시 아이들은 마치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같이 단조롭다. '스마트폰에 목숨 거는 아이', '학교와 학원을 왕복달리기 하는 아이', '학원가 치킨집이나 피자집에서 친구와 허기를 채우는 아이' 등 3개의 문장 안에 우리 아이들의 일상이 다 들어온다. 아이들은 곧 어른이 되고, 생산자로서, 소비자로서, 자기 인생의 문화적 연출자로서 살아가야 하지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는 생각할 틈도 배울 기회도 없다.
집에서 인터넷-스마트폰을 놓고 부모와 자식 사이에 매일 '전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학교에는 정규적인 미디어 교육이 없다. 중고교의 경제교육도 화석화된 시장논리를 답습하는 교과서가 있을 뿐이어서 선택하는 학생들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이러니 "정작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학교에서 하나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닭에게 모이를 주고, 감자밭을 일구는 등 자연을 일궈 직접 생산을 해보고, 이를 소용되는 곳에 판매할 궁리를 하는 고등학생들. 어떻게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이 자연에도 좋고 사람에게도 좋은지를 고민하는 간디학교의 협동조합 실험이 그래서 신선하다. 이 또한 대학가기 좋은 '스팩'이 아니냐는 반문도 있을지도 모르나, '사람도 즐겁고 자연도 즐거운 유쾌한 도전'을 해본 학생이라면 느끼는 것이 많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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