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자. 지금의 안철수가 작년 혹은 재작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이 아닌 안철수 대통령과 살고 있을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정치가'라는 기준으로 봤을 때 2013년의 안철수가 2011년과 2012년의 안철수와 질적으로 다른 사람이 됐다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2011년과 2012년의 안철수는 자연인으로서는 치명적인 매력과 아우라를 뿜어냈지만, 정치가로서는 모자란 데가 많은 사람이었다.
공부 많이 하고 머리 좋기로 따지면 안철수의 윗길에 자리할 사람이 그리 많지 않겠지만, 안철수가 한국사회의 근본모순과 근본모순을 지탱하는 세력에 대한 공부와 이해가 충분했다고는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안철수는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요체라 할 '정당'에 대해 오해하거나 무지했던 것 같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주권자인 국민들에 의해 형성된 정치적 의사를 담는 그릇은 단연 '정당'이다.
더불어 안철수는 모순투성이의 사람들이 모여 다투고, 투쟁하고, 갈등하고, 적대하고, 불화하는 장소가 국가이고, 이를 대개는 폭력을 수반하지 않는 방식으로, 때로는 공권력이라는 이름의 합법적인 폭력을 동원해서, 차츰 사회구성원들의 기본권과 공익이 확장되는 방향으로 조직하는 것이 '정치'의 본령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처럼 보인다. '정치'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정치가'라니!
'정치'의 본질에 대한 이해도, '정당'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인식도, 한국사회의 근본모순과 이를 한사코 유지하려는 세력들에 대한 통찰도 모자랐던 안철수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 대통령은커녕 야권의 단일후보도 되지 못했다. 안철수는 자신에게 쏟아졌던 대중들의 기대와 관심과 열광을 정치적 자산으로 조직하고, 응집하며, 최적화하는데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
단기 필마였던 정치인 안철수에게 퍼부어진 시민들의 지지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수준으로 격렬하고 폭넓은 것이었다. 만약 안철수가 준비만 됐다면 안철수는 대세가 되어 모든 것을 휩쓸어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안철수는 준비가 미흡했고 그 결과 우리는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부르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안철수가 작년의 경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안철수는 여전히 비평가처럼 말하며, 현실정치를 위에서 굽어보는 것처럼 행동한다. 안철수는 누구에게도 원망을 듣지 않으려는 것처럼 운신한다. 직업정치인이 그것도 대권을 꿈꾸는 직업정치인이 그래서는 곤란하다. 안철수는 중대한 현안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안철수는 자신이 꿈꾸는 대한민국이 어떤 가치와 원리로 구성될 것인지, 그런 대한민국을 누구와 어떻게 만들 것인지를 시민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해야 한다.
안철수는 아수라장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현실정치에 뛰어들어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려야 한다. 그럴 때 안철수는 오롯이 '정치가'가 될 것이다. '정치가' 안철수의 파괴력은 가공할만할 것이다. 자연인 안철수가 '정치가'가 안철수로 전화(轉化)할 수 있느냐에 안철수의 운명이 걸려있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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