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현리 ⓒ정기석 |
새롭게 다가온 마을, 마을어르신들 아침부터 웬 비가 이리 오는지……. 오늘은 '봉현리 문화·역사 마을 만들기' 사업설명회를 겸한 마을회의 날. 새벽같이 뽕짝 몇 곡 쫙 돌리고 마을회의 소집을 알리던 우리 이장님, 역시나 제일 먼저 와 계시다. "아직 아무도 안 오셨네요. 오늘은 많이 오셔야 하는데…… 비 때문에 못 오시나봐요?" "왜유 비가 오니까 일들 못 나가셔서 오실 꺼예유." 하긴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요즘 같은 바쁜 때 마을회의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조금 있으니 현이 종조할아버지께서 구부정하게 들어오신다. 봉현 달궁소리 예능보유자이시자 봉현 대보름 쑥불동화제의 명맥을 지켜 오신 분. 그 어른이야말로 이번 사업의 중심역할을 해 주셔야 할 분이시다. 이어서 대동연반계 회장님이신 해빈이 할아버지, 평소 말 잘하시기로 소문난 묘재 할아버지, 풍장의 고수 태영이 아버지, 작달막한 호성이 아버지, 전 이장님, 일처리 빈틈없으신 우리 동네 총무님, 눈밑에 큰 점이 있는 점박이 아저씨, 막걸리집 아저씨……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어서신다.
▲ 조성희 사무국장.(왼쪽) ⓒ정기석 |
온 마을이 학교다
"마을에 살다보니 학교를 자꾸 복지적 관점에서 바라보게 돼요. 오늘날 도·농 간 교육격차는 가정, 학교, 학생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있어요. 그중에서도 학업성취도를 결정하는 건 가정이에요. 가정의 여러 가지 요인 중에서도 부모의 직업, 학력 등 사회경제적 요인이 가장 중요해요. 안타까운 일이죠."
조 국장은 주장한다. "학력 향상, 기본 생활, 신체적·정신적 건강, 사회적·문화적 소양 등 농촌학생의 다면적 역량강화 교육프로그램을 어서 개발하고 시행해야 한다"고, "시급하다"고.
지역적 관점에서 바라봐도 농촌의 작은 학교는 안쓰럽다. 존재감이 날로 축소되고 있다. 농업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드는 속도와 같다. 하지만 삶과, 생활의 공간으로서 농촌의 비중과 중요성은 오히려 날로 커지고 있다. 농촌을 살만한 곳으로 만들려는 선지자들의 노력은 농촌지역의 교육적 인프라부터 보완하고 보강하려는 움직임에 집중되고 있다.
농촌이 살만한 곳이 되려면 "학교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학생교육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게 그녀의 지론이다. "학교가 지역주민을 위한, 지역주민이 주체로 참여하는 교육과 학습의 장으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교과부 조차 이에 부응하고 있다. 2009년 '농어촌 전원학교 운영 모형'을 전격 도입했다. 지역주민의 교육·문화공간으로서 학교의 기능과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주민참여 프로그램 운영, 지역사회 내부 동력 활성화, 지역개발사업 연계 등을 정책방향으로 분명히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사회의 교육·문화센터로서 농촌학교의 새로운 위상과 모델을 구현해보려는 목적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지역사회의 교육적 기능이 재생할 수 있다고 믿기 시작 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농업·농촌에 대한 우리 초·중등학생의 인식은 매우 부정적인 편이다. 자조적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안전하고 건강한 착한 먹거리, 자연생태적이고 인간적인 어메니티(농촌다움) 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점차 형성되면서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어 다행이다.
"농업·농촌의 가치는 수자원 보존, 환경 정화, 생태계 보전, 자연재해 방지, 자연학습장 제공 등 생태적 가치가 무한해요. 거기에 전통문화 보전, 인간정서의 순화, 진로직업교육 제공 등 사회적 가치, 농산물 공급, 국토의 균형발전, 타 산업 연관효과 등 경제적 가치까지 부가적으로 창출해요."
ⓒ정기석 |
작은 학교가 살리는 큰 마을
이러한 농업·농촌의 가치, 특성과 장점을 농촌의 학교교육에 적극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게 조 국장이 정립하고 전파하는 '마을교육론'의 요체다.
"농촌마을의 작은 학교는 도시에 비해 장점과 강점을 많아요. 일단 교사 1인당 감당하는 학생 수가 적어요. 교사와 학생의 관계 형성도 수월하고 원활해요. 학교를 넘어 지역의 교육공동체 형성의 출발점이 돼요. 이처럼 농촌학교로서 고유하고 차별화된 정체성을 찾아내고 개발하는 게 중요해요."
특히 조 국장은 농촌 가정과 지역의 문화적 자본 결여가 학력의 격차로 나타난다는 사실에 유난히 주목하고 있다. 농촌 학교가 학생들에게 지식정보의 전달 뿐 아니라 문화·예술적 안목까지 넓혀 주어야한다고 기대하는 것이다. 또 농촌 지역의 전근대적이고 저부가가치의 산업 구조, 이에 따른 농업·농촌에 대한 전망과 비전 상실이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농촌에서 태어나 농촌에서 배우고 자라는 지역 학생들이 제 고향인 농업·농촌에 대해 자긍심을 갖기 어렵다는 것이다. 농촌 학생들에게 진로에 대한 진취적이고 창조적인 전망을 가질 수 있도록 마을교육자로서 지도하고 지원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자면 학교 울타리 안의 교육이라는 제한된 시각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와 학교가 싱호 긴밀한 협력·지원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모름지기 학교는 주민들에게 열려있고 농촌 지역의 생활 과제를 폭넓게 인식하는 공간이 되어야 하며 지역주민, 지역사회는 학교의 강력한 지지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학교와 지역의 협동이 강조되는 이른바 '지역사회학교'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그래야 지역사회학교에서 지역사회의 문제를 주민 공동의 힘으로 발견하고 해결할 수 있게 된다. 학교와 마을이 따로 놀아서는 안된다.
"학교는 농어촌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기 위한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공간이죠. 교양·취미교육, 정보화교육, 문해(文解)교육, 생활체육 등 지역 주민들의 평생교육 수요를 반영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어요. 다목적 강당, 정보실, 도서관 등 학교 시설을 기반으로 이른바 '지역사회교육센터(community education center)'로 변신하면 학생과 주민들 사이에 교육과 교류 공간으로 개방하고 활용할 수 있는 '평생학습의 장'이 형성되는 거죠."
그렇게 되면 학생들의 방과후학교, 주민들의 학습동아리도 주민자치로 육성하고 활용할 수 있다. 이른바 '마을만들기'로 불리는 마을단위, 권역단위, 지역단위의 각종 농촌지역개발사업과 연계한 '교육공동체'와 '마을공동체' 사이의 시너지효과도 거둘 수 있다. 나아가 지역리더, 마을기업, 사회적 기업 등 사회경제적 재생사업으로까지 발전할 수도 있다.
지난날 조 국장은 서울에서 교육전문잡지 '우리교육' 기자로 오래 일했다. 1998년 서울생활을 접고 지금 살고 있는 봉현리 폐교로 하방했다. 그 자리에 남편인 이진철 교사를 비롯해 지역의 교사, 교수들이 뜻을 모아 충남교육연구소를 세웠다. 이후 조 국장 부부는 폐교 안에 아예 상주하며 마을학교 소사 노릇을 하며 농촌교육, 지역교육의 선례를 줄기차게 생산하고 있다. 교사 연수·연구, 지역교육네트워크, 농촌생활문화공동체, 농촌 청소년문화학교 느티나무, 사회적 배려 대상 교육복지 확대 등에 가히 충남도 교육분야 1호 인증 사회적기업에 걸맞는 당찬 활약을 펼쳐왔다.
"지금 농촌마을에는 학교가 사라지고 있어요. 학교가 사라지면 사람이 사라지게되죠. 사람이 사라지면 마을이 사라지고, 결국 마을이 사라지면 도시도, 국가도 곧 사라지게될 거예요."
'마을교육자' 조 국장이 '삶의 교육, 상생의 교육' 깃발을 단단히 붙들고 있는 이유다. 농촌마을의 작은 폐교가 마을학교로, 마을로 다시 살아난 분명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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