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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요?" 한 기자가 박근혜 정부가 전시작전권 환수 연기를 미국에 요청한 것에 대해 제 의견을 묻자, 제 첫 반응이 이랬습니다. 지난 17일 <연합뉴스>는 한미 양국 고위 국방당국자를 인용해 "김관진 국방장관이 최근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과 회담에서 오는 2015년 말로 예정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을 한국으로 전환하는 시기를 연기할 것을 제안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습니다. (☞ 관련 기사 바로 가기 : 한국, 미국에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재연기 제안)
노무현 정부 때 2012년 4월 17일 자로 한국군에 대한 미군의 전작권을 환수하기로 했던 것 기억하시죠?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 침몰 직후 '북한의 위협'을 이유로 전환 시기를 2015년 12월 1일로 늦춘 바 있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또다시 미국에 연기를 요청했다고 하는군요.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자세한 말씀은 나중에 드리는 걸로 하고 먼저 개성공단 소식부터 전해드리겠습니다.
남북한은 17일 개성공단에서 제4차 당국 간 실무회담을 열어 개성공단의 정상화 문제를 논의했는데요. 이번에도 접점을 찾지 못한 채 22일 5차 실무회담을 열기로 하곤 합의문 없이 종료하고 말았습니다. 재발방지 확약을 요구한 남측과 정상화부터 하자는 북측 입장이 계속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셈이죠. 이러다가 정말 개성공단이 문을 닫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립니다. 언제쯤 반가운 소식을 전해드릴 수 있을지 저도 답답한 심정이고요.
자, 그럼 전작권 환수 연기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헤쳐보겠습니다. 우선 박근혜 정부가 연기 요청을 한 이유부터 따져봐야 할 것 같은데요. 역시 핵심적인 이유는 북핵 등 북한의 위협이 증대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북한 위협이 커지고 있는 만큼 한국 안보의 중추라고 할 수 있는 한미연합방위체제는 계속 유지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전작권 전환을 미뤄야 한다는 거죠. 이러한 입장은 헤이글 국방장관뿐만 아니라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존 케리 국무장관에게도 전달되었다고 하는군요.
▲ 전직 국방장관 등 역대 군 수뇌부들이 2007년 2월 전작권 환수 합의에 항의하는 회의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전작권 환수 연기 요청 배경에는 박근혜식 '선군정치'도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 정부의 외교·안보 실세는 군 인사들이 차지하고 있는데요. 남재준 국정원장-김장수 안보실장-김관진 국방장관 등이 그들입니다. 이렇게 군 인사들이 안보정책을 쥐락펴락하게 되면 전략적 고려보다는 국방과 군 이기주의라는 좁은 시야로 전작권 문제를 바라보게 됩니다. 상명하복과 집단 사고에 익숙한 군대 문화의 특성상 토론도 어려워지겠죠. 더구나 성우회와 재향군인회는 줄곧 전작권 환수 연기를 주장해왔습니다.
그럼 미국의 입장은 뭘까요? <연합뉴스>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의 고위 관료는 한국이 전작권을 행사할 능력을 갖춰나가고 있다고 강조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미국이 한국의 안보를 훼손하거나 위험에 빠뜨리는 결정을 (일방적으로) 갑자기 내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도 했다는군요. 이와 관련해 마틴 뎀프시 미국 합참의장은 "예정대로 전환하는 것을 지지한다"면서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자금 부문에서 일부 차질이 있었다"고 말해 묘한 여운을 남겼습니다. 자금을 강조한 건 한국이 국방비를 더 올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 관련 기사 바로 가기 : 미국 "전작권 전환 예정대로 추진…일부 차질"(종합)
전작권 환수 재연기 방침의 문제는 한둘이 아닌데요. 근본적으로는 국가 주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군사 주권을 계속 미국에 맡기려고 하는 것이 과연 타당하냐는 문제가 있습니다. 전작권은 한국전쟁 직후에 이승만 대통령이 맥아더 유엔 사령관에게 넘겨준 이후 63년 동안 미국이 갖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고 이는 분명 비정상적인 상황입니다. 정부와 군이 이러한 비정상적인 상황을 하루빨리 정상화할 생각은 하지 않고 비정상적인 상황이 마치 정상인 것처럼 착각하는 인식 구조가 참으로 답답할 따름입니다.
우리가 힘이 약할 때에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현재 한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은 세계 10위권입니다. 군사비 지출만 보더라도 북한 군사비의 15배 정도, 북한 GDP의 2배를 쓰고 있어요. 정부와 군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등 비대칭 위협이 증가한 것을 전작권 환수 재연기의 이유로 내걸고 있는데요. 이런 식이라면 전작권은 영원히 찾아올 수 없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은 계속 강화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전작권이 전환되더라도 미국은 핵우산을 비롯한 확장 억제를 계속 제공하고 주한미군도 계속 주둔시킨다는 방침이고요.
'원칙'과 '약속'을 강조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과도 상충합니다. 2015년 전작권 환수는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고 출범 이후에도 이는 계속 약속했던 사안입니다. 그런데 국민들에게는 이렇게 말해놓고 미국에는 국민 몰래 재연기를 타진하는 이중 플레이를 하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도 할 말이 별로 없는지 아직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 관련 기사 바로 가기 : 청와대, 대선공약 '전작권 전환' 뒤집고도 이틀째 침묵)
당장 걱정되는 것은 이게 공짜가 아닐 것이라는 점입니다. 미국으로서는 조건만 맞는다면 전작권 이양을 좀 더 미룰 수 있을 텐데요. 이를 지렛대로 삼아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려고 할 것입니다. 올해 다시 시작된 방위비 분담 협상에서 한국에 "돈을 더 많이 내라"고 요구할 것이 뻔합니다. 한국의 차세대 전투기 사업에서도 미제 무기 도입을 강하게 요구할 것입니다.
더 중요한 문제도 있는데요. 바로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체제(MD)에 한국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달라는 것입니다. MD는 한-미-일 삼각동맹으로 가는 게 핵심인데요. 미국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우리가 전작권을 계속 행사하려면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안정적인 주둔 여건이 반드시 필요하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이 증대되는 만큼 아시아 주둔 미군을 보호하기 위해 한국이 더 적극적으로 MD에 참여해달라."
그런데 주목할 것이 있어요. 전작권 환수는 대한민국의 정상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미국도 가져가라는 입장입니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는 전작권 전환 재연기를 미국에 요청하고 있고, 이를 관철하려면 미국에 선물을 줘야 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끝으로 한 가지만 더 짚고 넘어갈 것이 있는데요. 미국이 전작권을 계속 갖더라도 한반도 유사시 미국의 개입 여부는 자동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헌법적 절차, 즉 미국 의회의 승인이 필요합니다. 한반도 전쟁 발발 원인과 미국의 이해관계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개입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겁니다.
박근혜 정부와 군 수뇌부는 이런 미국에 전작권을 계속 갖고 있어달라고 조르고 있는 셈입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인데요. 만약 전쟁이 터졌는데 전작권을 가진 미국이 발을 빼겠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 거죠? 비현실적인 가정이라고 반문할 수 있지만, 정부와 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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