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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의 눈물 '두리반'을 기억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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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의 눈물 '두리반'을 기억하시나요?

[이주의 조합원] <1> 두리반 유채림 씨

기억은 이채롭다. 더듬더듬 두툼한 실타래를 풀어놓고 있노라면 까맣게 잊어버린 과거가 튀어나온다. '두리반'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하나둘씩 그간 취재 과정을 떠올려 보았다. '그런 일도 있었구나' 새록새록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그만큼 길다면 긴 인연이다.

'두리반'.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 작은 식당이다. 지금은 인근에 있는 서교호텔 뒤편으로 이전했다. 여전히 칼국수를 판다. 예전에는 홍대역 8번 출구에서 100m 거리에 있었다. 처음 두리반을 갔을 때도 그곳에 있었다. 하지만 식당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2010년 2월 즈음으로 기억한다. 건설사 용역 직원에 의해 식당 집기가 죄다 철거된 이후였다.

홍대의 눈물, 두리반

두리반 사장 안종녀 씨는 그곳에서 5년 동안 두리반을 운영했다. 상황은 한순간에 변했다. 일하던 식당 건물이 '지구 단위 계획 지역'으로 선정된 후, 새 건물주가 나가줄 것을 종용했다. 건물을 허물고 새 건물을 짓겠단다. 권리금만 1억3000만 원을 들고 들어온 식당이었다. 무일푼으로 쫓겨날 순 없었다. 그는 최소한의 보상금을 요구하며 철거 직전까지 장사를 했다. 결과는 강제 철거였다.

처음 두리반을 찾았을 때는 입구가 어디인지도 알 수 없었다. 용역 직원이 건물 주변을 철판으로 도배했다. 어렵게 출구를 찾아 들어간 실내. 탁자 하나, 야전침대, 이게 전부였다. 한낮인데도 한밤중처럼 깜깜했다.

그곳에서 인터뷰가 시작됐다. 남편인 유채림 씨는 철거 당시를 회상하다 눈시울을 붉혔다. 해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단다. 무능력한 자신이 한스럽고 답답했단다. 그런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졌다. 홀로 쓸쓸히 휑한 식당 자리를 지키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 2010년 2월, 처음 두리반을 찾았을 때 모습. ⓒ프레시안( 최형락)

그렇게 두리반 유채림 씨와 관계를 맺게 됐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두리반' 담당 기자가 됐다.

많은 일이 있었다. 단전 사태, <경향신문>의 두리반 응원 광고 누락, 마포구청 농성, 인디밴드 공연, 우석훈 박사 강연 등. 새삼 복기해보니 '그런 일도 있었구나' 하고 스스로 신기해할 정도다.

개인적으로 난감한 경우도 많았다. 친한 지인 결혼식과 두리반 인디밴드 공연 행사가 겹치기도 했다. 결국, 코에 피어싱을 한 사람, 삭발을 한 사람 등이 즐비한 곳에 정장을 입고 갈 수밖에 없었다.

두리반 사장인 안종녀 씨가 단전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마포구청에서 농성할 때도 그랬다. 급히 연락을 받고 간 곳이 마포구청이라 당황한 기억이 있다. 마포구청은 기자가 공익근무요원으로 일한 곳이다. 민원을 제기하는 주무부서 공무원을 잘 알고 있었다. 취재하러 갔다가 본의 아니게 함께 일했었던 공무원들에게 인사를 해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졌다. 게다가 농성자를 취재하니 눈총이 얼마나 따가웠겠나. 등줄기에서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두리반처럼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도와달라"

그렇게 해가 넘어갔다. 농성 531일 만이었다. 홍대 인근에 가게를 얻을 수 있는 보상금을 받게 됐다. 지난한 싸움에서 두리반이 이겼다. 지금의 서교호텔 뒤편에서 새롭게 식당을 열 수 있게 됐다. 안종녀 씨는 눈물을 흘렸다.

그간 취재를 하면서 두리반 칼국수 좀 먹게 해달라고 유채림 씨에게 여러 번 졸랐다. 그 소원을 들어주었다. 식당을 열기 전날, 그간 두리반과 함께 해준 이들을 초대했다. 기자도 포함됐다. 고마울 따름이었다. 유채림 씨는 앞으로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살겠다고 했다. 바지락을 넣은 칼국수가 쑥쑥 입에 들어갔던 기억이 났다.

그 말을 실제 실천하는 그였다. 이후 북아현동 철거민, 광화문 세입자들, 홍대 커피점 세입자 등 도움을 원하는 이들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 손길은 협동조합으로 전환한 프레시안에도 이어졌다.

협동조합 첫 이사회가 열리던 날이었다. 박인규 이사장의 제안으로 두리반에서 저녁 모임을 했다. 유채림 씨는 쑥스러운 얼굴로 협동조합원으로 가입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출자금도 상상 이상이었다. 자신이 쓴 책 <매력만점 철거 농성장>이 상을 타게 됐단다. 그 수익금의 절반을 출자금으로 낸다고 했다. 나머지는 북아현동 철거민을 위해 사용했다고 한다.

프레시안이 앞으로도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주기를 당부했다. 출자금은 그것을 위한 지원금이란다. 고마울 따름이었다. 물론 부담스럽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래도 기분 좋은 부담이었다. 프레시안 협동조합은 이렇게 하나둘씩 모여서 조금씩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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