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5일 삼성전. 손민한은 5와 1/3이닝 무실점으로 시즌 2승을 올렸다. 통산 105승. 손민한은 방송사와의 그라운드 인터뷰에서 "삼성을 이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무조건 이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강렬했다. 손민한이 말하는 '던지고 싶다'는 '던지고 싶다'가 아니라 '살고 싶다'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손민한은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지 못했다.
▲ 지난 5일 창원 마산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NC-SK전에서 1379일 만에 1군 마운드 선발에 오른 손민한. ⓒ연합뉴스 |
2008년까지 4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쌓던 손민한은 2009년 8월 어깨부상으로 1군에서 사라졌다. 그해 10월 미국에서의 어깨 관절경 수술과 끝이 안 보이는 재활. 그리고 2011년 프로야구선수협회 비리사건. 2012년 1월 선수협은 손민한을 횡령 및 배임혐의로 고소했고 롯데는 손민한을 방출했다. 부상, 고소, 방출, 비난 여론. 최악의 시련이었다. 손민한의 선수생명은 끝나는 듯 했다.
2012년 8월 1심 공판에서 손민한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많은 선수들과 야구팬은 도의적 책임을 원했다. 몇 차례의 사과와 진정성 논란을 겪은 뒤 박재홍은 자신의 은퇴식에 손민한을 초대해 사죄의 자리를 마련했다. 선수협은 손민한의 프로야구 복귀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화답했다. 이후 신고선수로 NC에 입단한 손민한은 38살, 프로17년차 투수로 시즌 2승을 올렸다.
여전히 손민한에게서 고개를 돌리는 팬들이 많다. 비리사건 발생 이후의 거짓 해명에 실망했기 때문이고, 진실한 사과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법적 판단은 죄의 유무와 징벌이 명확하다. 그러나 사죄의 진정성은 보는 이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친분이 있을수록, 손민한을 더 잘 알수록, 손민한을 더 응원했을수록 마음의 상처가 더 클 수 있다. 그래서 용서가 어려울 수도 있다.
손민한은 한 때 이민까지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웠다고 한다. 가족들도 야구를 다시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적지 않은 나이에 당한 부상. 야구인들의 따가운 시선. 가족들은 다시 야구를 한들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느냐고 만류했고 야구인들은 손민한이 끝났다고 말했다. 그러나 손민한은 고집스레 야구에 매달렸다. 지금 포기하면 유니폼을 벗더라도 남은 인생을 살아갈 용기가 없을 것 같아서, 남은 인생을 위해 마지막 일구를 던지겠다는 것이 손민한의 간절한 심정이었다.
수많은 스타선수들이 부상과 수술의 후유증으로 유니폼을 벗는다. 38살의 나이는 부상이 아니더라도 체력의 한계를 실감하며 선수 스스로 은퇴하는 나이이다. 종목을 불문하고 스포츠계에선 30대 선수들의 수술 후 재활 가능성을 30%이하로 단정한다. 어깨 수술과 4년의 공백, 38살의 나이. 그러나 손민한은 복귀전에서 직구 최고 구속 146km를 찍었다. 투심 패스트볼, 슬라이더, 체인지업, 포크볼 등 다양한 구종을 구사했다. 손민한이 던지는 공 하나 하나엔 간절함과 치열함이 담겨져 있을 수밖에 없다.
막말과 음주운전 등으로 물의를 빚은 연예인, 유명인들도 방송에 복귀한다. 늘 그렇듯이 웃는 낯과 화려한 언변이다. 사과도 세련된 방식이다. 그러나 카메라 앞의 손민한은 어색하다. 자신감도 없고 움츠려드는 모습이다. 방송인과 스포츠인의 차이일까? 승리투수로 카메라 앞에 섰어도 어색하게 시선을 떨어뜨린 손민한의 어눌한 말투는 아직도 자신이 부끄러운, 그래서 나서기가 어색한 양심과 자책의 반증이 아닐까? 물의를 빚은 유명인들의 복귀 방송을 보노라면 때론 진실이 보기 좋은 화려함보다 어색한 투박함에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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