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실험 발표 이후 노무현 대통령이 야당의 외교안보라인 전면 교체 요구에 "전장에서 말을 갈아 탈 순 없지 않냐"며 "적절한 시점에 교체할 테니 이해해 달라"고 말했던 '적절한 시점'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반기문 외교부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됐고 윤광웅 국방부 장관의 마지막 주요 업무로 꼽혀 왔던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도 다음 주면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현재 청와대 안팎에서는 "길어도 다음 달 중순을 넘기지 않고 외교안보라인 개편이 단행될 것"이라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시기'가 아니라 '인물'이다.
당초 11월 경 현 외교안보라인의 '자리 맞바꿈'을 핵심으로 하는 개편이 점쳐졌지만 북핵실험으로 인해 그 구상은 완전히 흔들렸다. 하지만 최근 하루 이틀 사이 상황이 다시 미묘하게 바뀌고 있다.
다시 살아나는 '송민순 카드'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후반 외교안보 라인업은 송민순 외교부장관-윤광웅 국정원장을 축으로 한 그림이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북핵 실험으로 대북 문제를 컨트롤 해 온 송민순 청와대 외교안보실장이나 북핵 문제에 대한 초기 대응 책임자인 윤광웅 국방부 장관,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오히려 문책 경질 대상으로 꼽혀 "송민순-윤광웅 구상은 완전히 무너졌다"는 관측이 우세했다. 청와대는 이에 대해 극도로 말을 아꼈고 여당에서도 "천하의 노 대통령도 이번엔 자기 뜻을 관철시키기 힘들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한중일 연쇄 정상회담, 유엔 안보리 결의안 채택이 마무리 된 주말 이후부터는 "그래도 송민순"이라는 말이 청와대 안팎에서 솔솔 흘러나오는 한편 여당의 기류도 바뀌고 있다. 오히려 청와대가 신중한 반면 여당에서 "송 실장이야말로 차기 외교부 장관 적임자"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 것.
여당 "송민순 만한 외교부 장관 적임자가 어디 있냐"
청와대는 "결과야 어쨌든 지난해 9.19 성명부터 지금까지 대북 문제를 틀어쥐고 온 사람은 송 실장이고 이 문제에 대해 그 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는 현실론을 바탕으로 송민순 카드를 놓지 못하고 있지만 여론의 향배에 잔뜩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모양새다.
하지만 북핵 파동을 오히려 정치적 반등의 기회로 삼고 있는 여당은 한결 적극적이다. 이는 어차피 지지도가 바닥인 마당에 북핵파동으로 대북강경책을 주장하는 한나라당과 차별점을 분명히 함으로서 전통적인 지지층을 결집해 낼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15일 <프레시안>이 확인한 결과 '송민순 적임자론'에는 여당 내 재야파와 실용파의 의견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일부 의원은 '윤광웅 국정원장 적임자론'까지 주장했다.
김근태 당의장의 측근으로 당 전략기획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목희 의원은 "송 실장과 개인적 친분도 없다"고 전제한 뒤 "송 실장은 "북핵문제, 미사일문제를 해결해 동북아 평화안정을 되찾는 것이 과제인데 외교부에 훌륭한 사람이 많겠지만 송 실장만한 적임자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어차피 지금 한나라당은 아예 외교안보라인 밖에 있던 사람이 아니면 몰라도 그 누구라도 시비를 걸 것"이라며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정치공세로 흠집내기를 할 것은 분명한 것 아니냐"고 말해 '정면돌파'를 선호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실용파도 "한계가 경험이다"며 적극 옹호
실용파로 분류되는 초선의원 모임 '국민의 길' 간사인 전병헌 의원의 의견도 비슷했다. 전 의원은 "(송 실장과 윤 장관이) 국방과 안보 외교에 가장 정통한 사람들이고 지금은 외교 안보 문제를 실험적으로 관리할 여유가 있지도 않는 만큼 가장 적절한 인사"라며 "그들이 기존에 있었던 자리에서 보였던 한계가 있지만 그것은 새로운 위기 국면을 극복해 나가는 데 있어서 업그레이드 된 경험으로 작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인사에 대한 사황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며 말을 아낀 의원들도 대부분 "햇볕 포용정책이 북핵 문제의 책임이기 때문에 문책인사를 해야 한다는 야당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몰론 온도차를 나타낸 의원도 있었다. 노웅래 공보부대표는 "송 실장이 업무파악이 제일 잘 된 사람"이라면서도 "결국 북한이 핵실험을 한 것에 대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인데 송 실장이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하는지는 판단을 유보하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 의원은 "지금 국방부나 외교부 장관에 대북포용정책을 거부하는 인사를 임명할 수는 없는 일이고 정치공세 차원의 인책은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도 "내가 듣기론 외교부 쪽에서 오히려 송 실장에 대한 반대가 많다더라"고 말했다.
정보위 소속의 이 의원은 "국정원장은 앉힐 사람도 마땅찮고 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없는 것 같더라"며 "외교부 장관은 어쩔 수없이 바꾸더라도 국정원장은 당분간 그대로 두는 것도 한 방안"이라고 말했다.
한나라 "야당과 국민 대상으로 '붙어보자'는 거냐"
반면 한나라당의 분위기는 '일전 불사'다. 한나라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설마 그럴 리가 있겠냐?"고 되묻기까지 했다.
이 당직자는 "송민순 외교부장관 설, 윤광웅 국정원장 설은 폐기된 카드가 아니냐"면서 "우리 당에서는 물 건너간 이야기로 생각해 별로 논의한 바도 없다"고 소개했다.
이 당직자는 "따라서 당론도 아직 없지만 만약 노 대통령이 그 카드를 다시 꺼내든다면 '북핵 실험에 대해 정부가 책임 질 일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며 "북한이 아니라 야당과 국민을 대상으로 '한번 붙어보자'고 나서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치킨게임' 벌어질 경우 여권이 훨씬 더 위험
여당이 "어차피 야당은 발목잡기에 나설 것이고 송 실장 만한 적임자가 없다"는 입장인 반면 야당은 "결사반대"를 외침에 따라 경우에 따라 여야 전면전이 벌어질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여당이 엄중한 안보 위기상황에서 여야 전면전으로 만에 하나 외교안보라인 공백사태가 발생할 경우 청와대는 물론 여당이 안게 될 리스크가 훨씬 커 보인다. "너희 때문에 국가 위기 상황이 심화되고 있다"며 양보 없는 치킨 게임을 벌일 경우 어쨌든 책임은 여권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것.
이런 와중에 한국이 대북제재안에 동참할 경우 북한과의 물리적 충돌, 북핵 2차 실험과 같은 돌발 상황들이 나타날 경우 여권은 지지층의 재결집은 고사하고 괴멸적 타격을 안게 될 우려도 있다. 사학법 정국 등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말이다.
게다가 정치적 이해득실은 차치하고라도 일단 현 상황을 타개해 나갈 책임이 있는 청와대로서는 한층 더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고민을 더 깊게 하고 있다.
주초부터 본격화될 외교안보라인 하마평에 따른 여론향배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이같은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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