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를 저지른 경영자를 법대로 처벌하면 해당 기업의 경영 실적이 나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재벌 회장의 경제 범죄가 드러날 때마다 단골손님처럼 등장하던 '처벌하면 경제가 위축된다'는 주장이 근거가 없음을 밝힌 연구다.
김두얼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이 7일 한국국제경제학회 동계학술대회에서 발표한 '경영 범죄와 기업 성과 : 경영자의 배임과 횡령 범죄가 기업 성과에 미치는 영향'이 바로 그것이다.
이에 따르면, 2004년 1심 재판이 끝난 '특정 경제 범죄 가중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사건 중 경영 범죄가 발생한 기업은 128개다. 경영 범죄는 회사의 최고 책임자가 저지른 범법 행위를 가리킨다. ▲횡령, 불법 대출, 계열사 부당 지원 등 회사 자산을 이사회 동의 없이 사용해 피해를 준 경우, ▲회계 조작을 통해 불법으로 차입하거나 보증 회사에 보증 채무를 부담하게 한 경우, ▲계열사를 지원하기 위해 회사 자산을 부당하게 담보로 제공한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경영 범죄가 발생한 기업을 자산 총액에 따라 분류하면 10억 원 미만 기업이 70여 개, 100억-1000억 원인 기업이 30여 개, 1000억-1조 원인 기업이 10여 개, 1조 원 이상인 기업이 10개 미만이었다. 자산 총액이 10억 원 미만인 기업이 절반을 넘는 것은 재벌 그룹뿐만 아니라 규모가 작은 기업에서도 경영 범죄가 많이 발생한다는 것을 뜻한다. 범죄 피해 금액 규모는 20억 원대가 가장 많았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범죄를 저지른 경영자를 처벌했을 때 해당 기업의 '이자 및 법인세 차감 전 순이익(EBIT)'이 개선됐다는 점이다. 수사 및 재판이 이뤄지기 이전 시기(A), 범죄 사실이 드러나고 재판이 진행된 시기(B), 수사와 재판이 끝난 후 시기(C)를 비교한 결과다. 범죄 사실이 드러난 B 시기에 수익률이 많이 낮아지지만, C 시기엔 범죄가 발생했던 기업의 평균 수익률이 일반 기업 수준으로 회복된 것으로 나타났다. B 시기에 수익률이 낮아진 것도 검찰 수사 때문이 아니라 경영 범죄 피해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범죄를 저지른 기업 경영자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이 이뤄져왔다는 점도 드러났다. 2004년 1심이 선고된 사건 중 경영 범죄 관련자는 평균 24개월의 징역형을 받았는데 이 중 66퍼센트는 집행 유예를 받았다. 김 연구위원은 "경영 범죄의 심각성과 피해 규모에 비해 실제 형량이 지나치게 낮다"고 지적했다.
이번 연구는 대검찰청의 의뢰로 작성된 용역 보고서다. '특정 경제 범죄 가중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사건 921건을 모두 조사하고 업무상 횡령 및 배임, 조세범 처벌법 및 증권 거래법을 어긴 사례 등은 표본 조사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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