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전인 1987년 민주화의 분위기 속에서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를 비롯한 교육민주화단체들은 박정희 정권이 개악시킨 사립학교법 개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국회는 사립학교 소유주 등이 장악하고 있던 교육위원회가 주동이 되어 오히려 개악된 사립학교법안을 통과시켰다. 즉 이사장이 총장을 겸직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등 사학 비리를 조장하는 법안을 노태우 정부와 유신잔당인 김종필 세력만이 아니라 소위 '민주 세력'인 김영삼, 김대중 세력이 모두 합의해 통과시킨 것이다.
20년이 지난 현재, 국회가 다시 한 번 교육위의 후신인 교육과학기술위원회가 주동이 되어 비정규직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는, 흔히 우리가 시간강사라고 부르는 '비정규직 교수'들의 처우 개선 요구를 개악시켜 사실상의 '시간강사 학살법'을 만들어 냈다.
시간강사들은 대학 졸업 이후에도 남들이 취업을 해 돈을 벌고 있는 시간에 다시 5-6년을 돈을 벌기는커녕 비싼 등록금을 내가며 공부를 해 박사 학위를 따고서도 저임금과 근무 조건 등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활해오고 있다. 특히 이들은 대학 강의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면서도 박정희 정권이 개악시킨 교원법에 의해 교원의 대우조차 받지 못하고 있어 이에 대한 시정을 꾸준히 요구해왔다. 뿐만 아니라 여러 시간강사들이 열악한 환경을 이기지 못하고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목숨을 끊기도 했다.
이처럼 시간강사 문제가 사회적 문제가 되자 국회는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이들을 교원에 포함시켜 교원의 대우를 받도록 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제정해 내년부터 시행이 되게 됐다. 그러나 이 법은 20년 전의 사립학교법과 마찬가지로 시민사회의 교육개혁 요구를 오히려 개악시켜 사실상 시간강사들을 대량으로 학살하는 시간강사학살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법은 시간강사의 명칭을 '강사'로 바꾸어 교원의 범주에 포함시켰고 4대 보험의 혜택을 받도록 했다. 임용 시간도 1년 이상으로 못 박았고 특별한 시유가 없는 한 계속 고용을 하도록 했다. 그러나 교육공무원법, 사립학교법, 사립학교교직원연금법의 적용대상에서는 제외시켜 그 혜택을 대폭 제한했다. 나아가 한 학기에 9시간 이상 강의하는 강사들의 경우 이들을 대학의 교수 확보율에 포함시키기로 결정했다.
이 같은 정책이 의미하는 것은 대학들이 극소수의 시간강사들을 일반교수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임금의 강의 전담 비정규직 교수들로 흡수하는 대신 절대 다수의 시간강사들은 그나마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강의를 빼앗고 실업자가 되도록 만드는 시강강사 대량학살이다. 그 결과 비정규직 교수노조를 비롯한 시간강사 대부분이 이 법의 도입을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교육 전문가들이라는 국회 교육과학기술위 의원이라는 사람들이 이것도 법이라고 만들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한 학기에 9시간 이상 강의하는 강사들을 대학의 교수확보율에 포함시켜주기로 결정했으니 많은 대학들은 얼씨구나 하고 비싼 월급을 줘야 하는 정규 교수를 채용하는 대신 9시간 강의전담 강사들을 고용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박사들의 정규직 교수 취업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 뻔하다. 뿐만 아니라 현재 대부분의 대학들이 강의 개설 수에 비해 강사수가 너무 많아 강사들의 전공을 고려해 그들이 잘 가르칠 수 있는 과목을 한 학기 한 과목씩 강의를 주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한 강사에게 9시간을 몰아 줄 경우 최소한 3명에 2명의 시간강사, 일 년을 기준으로 하면 6명 중 5명의 시간강사가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뿐만 아니라 한 강사에게 한 학기 3과목을 가르치게 할 경우 그만큼 전문성이 떨어지는 과목을 가르치게 되어 학생들이 받게 되는 교육의 질이 저하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게다가 공정성을 기하느라고 강사의 채용에 외부 심사를 포함한 복잡한 심사를 거치게 함으로써 강사 채용이 교수 채용보다 더 어렵게 만들어 놓는 탁상 위 행정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새누리당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민주통합당 등 소위 정치권의 민주 세력 등은 이 같은 시간강사학살법 제정을 막지 않고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한심하기만 하다. 그리고 시행이 코앞에 와서야 부랴부랴 이의 시행을 3년 유예하자는 법안을 내놓는 뒷북이나 치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노동계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파견근로를 대폭 확대하면서 대신 비정규직의 경우 2년 이상 고용하면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한나라당과 손잡고 제정한 바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노동계가 우려한 대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아니라 거꾸로 2년마다 비정규직을 새로 고용하는 것이다.
그 법과 마찬가지로 애초 시간강사 처우 개선을 위해 제정하기 시작한 이번 법도 그 입법의도와 달리 시간강사들의 대량 학살로 끝나고 말 것이 자명하다. 따라서 국회는 빨리 비정규직노조와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등 이 법에 반대의견서를 낸 교육단체들의 의견을 경청해 제대로 된 법을 새롭게 제정해야 할 것이다. 언제까지 국회 교육위원회는 사회의 개혁 요구도 그 속으로 들어가고 나면 개악이 되어 나오는 '개혁의 블랙홀'이 되어야 하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는 1000여 명의 교수 회원들로 구성된 교수단체다. <민교협의 정치시평>은 민교협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연재하며, 매주 1회 금요일에 게재한다. 이 칼럼은 민교협의 홈페이지에도 함께 올라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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