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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60명, 사람을 살리는 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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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 해 60명, 사람을 살리는 구청장

[도시, 욕망을 벗다①-1上] 국가 정책 참고서 만드는 노원구청장

자살률 세계 1위. 처음 듣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2009년 기준 자살률이 무려 31.0(인구 10만 명 당)명으로 OECD(11.2명)보다 3배가 많다. 그렇다면 지역별로 보면? 같은 시기 서울 서초구 자살률이 15명, 노원구는 29.3명. 거의 두 배 차이였다. 취임 초 노원경찰서 이용표 서장에게서 "노원에서 이틀에 한 명 꼴로 자살 사건이 발생해 연간 180명이 자살한다"는 걱정을 들은 김성환 노원구청장은 결심했다.

▲ 김성환 서울 노원구청장. ⓒ프레시안(최형락)

서초구 15.0 : 29.3 노원구

김 구청장은 자신의 임기 내 노원구의 자살률을 서초구 수준으로 낮추기로 목표를 세우고 자살 예방 모델을 만들었다. 구청에 '생명존중전담팀'을 신설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반대를 뚫고 '자살예방에 관한 조례'를 전국 최초로 제정했다. 노원구민 61만 명 중 자살 시도자, 자살자 유가족, 홀몸 노인, 실업자, 학생 등 자살 가능성이 있는 구민 15만 명을 분류해 이 중 6만 명에 대해 우울증 선별검사를 실시했다. 각 동의 통장들을 통해 노원구 거주 모든 홀몸 노인들을 대상으로 우울증 진단을 했고, 학생들은 교육청과 협의해, 실업자는 고용안정센터에 우울증 검사를 의뢰했다.

이 과정을 통해 우울증이 의심되는 이들은 주의군과 관심군으로 분류해 주의군은 노원정신보건센터에서 직접 책임과 상당치료를 하고, 관심군은 노원의 종교계 인사들로 구성된 생명지킴이 자원봉사자들이 주간 단위로 방문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리고서 1년 6개월이 흘렀다. 그의 노력은 빛을 내고 있을까? 공식적인 통계는 아니지만 2011년 노원구 자살자 숫자가 2009년(180명)에 비해 50명 이상 줄어들었다. 2012년에도 상반기에만 2011년 보다 15명 정도가 더 줄어든 것으로 보고가 됐다. 적어도 1년에 60명의 목숨을 살리고 있는 셈이다.

김성환 구청장을 직접 만나봤다.

▲ 김성환 구청장이 2년 간의 실험들을 담아 낸 책. <나비효과>(김성환 씀, 아침이슬 펴냄)
서초구와 자살률 차이가 나는 배경이 궁금했다.

"자살에 이르는 경로는 다양한데, 핵심은 빈곤과 고독 이라고 보여집니다. 노원구가 서초구보다 빈곤한 사람이 많고 사회적으로 단절된 사람들도 많습니다. 상대적으로 서초구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경제적 여유로 인해 사람들 사이의 네트워킹 더 발달 돼 있습니다. 당장 서초구처럼 부유한 구가 되기는 어렵지만, 빈곤과 절망에 놓여 있는 사람들을 구호하고 그 사람들에게 친척은 멀리 있지만 따뜻한 이웃이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확인케 하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런 노력으로 자살률이 2년 새, 29.3명에서 22명 대로 떨어지게 된 거라고 보여져요. 2014년까지는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자살률을 서초구 수준으로 맞춰 보려고 합니다. 매달 경찰서로부터 통계를 받습니다. 올해도 작년 상반기 대비 15명 정도 자살률이 낮아졌다고 보고를 받았습니다. 전체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은, 감기 걸리면 소아과나 내과 찾는 것처럼 자신의 정신적 불안이 생겼을 때 정신과 의사 만나 쉽게 상담할 수 있는, 아무런 부끄러움이나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사회복지 시스템을 잘 만들어야 합니다. '패자부활전'이 불가능해서 오는 생계비관형 자살을 막아야 합니다. 가난하다고 모두 죽는 것은 아니니까요. 가난을 극복할 수 있는 상담 치료가 중요한데, 정신병원은 '미친놈'만 가는 곳이라는 부담이 깔려 있습니다. 상담할 데도 없고, 우울이 쌓여 술 한 잔 하고 가는 거거든요."

노원구 인구가 61만 명 중 조사 대상자가 15만 명이고, 6만 명을 검사했다. 적지 않은 숫자다. 어떻게 다 검사를 했을까?

"자살 시도자 유가족, 독거 어르신. 실업자, 학생 등 자살 위험군이 15만 명입니다. 이 중 자살 고위험군 위주로 우울증 테스트를 실시했습니다. 저희가 혼자 사시는 노인 분들에 대한 행정력이 잘 미칩니다. 통장들 훈련시켜 통장들이 전수 우울증 테스트를 하고 정신보건센터가 분석했습니다. 실업자들은 서울 북부고용센터에 실업 급여 받으러 올 때 테스트를 했습니다. 학생들은 교육청과 연계해 테스트했고요. 테스트 결과 위험하다 하는 분들은 관심군과 주의군으로 분류해 급한 사람들은 치료하고 생명지킴이를 연결해줬습니다."

노원구의 자랑인 '통장 복지'가 진가를 발휘했다. 구청 소속 공무원들만으로는 복지 업무의 한계를 느껴, 노원구는 통장들에게 복지 교육을 시켜 촘촘한 복지 업무 그물망을 만들었다. 그래도 대상자들이 거부감을 가질만 할 법하다.

"자살 시도자 같은 경우 처음에 굉장히 거부했어요. 자살자 유가족들도 굉장히 민감해 했죠. 그런데 최근에는 자살 시도자들의 상담 사례도 두 배 이상 올라가고 있습니다. 일단 누군가가 자기한테 찾아와 관심 가져주는 걸로 아주 좋아합니다. 홀몸 노인의 경우에는 "내가 혼자 살아서 걱정하는 가본데, 안 죽어 안 와도 돼" 하는 어르신들도 많습니다. 우리 사회가 여전히 정신과적 치료를 터부시 하는데, 첫 해에 비해 그 다음 해 자살 상담건수가 40배 쯤 늘었어요. 조금씩 자기 속내를 털어 놓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겁니다."

"쌍용자동차형 자살이 가장 심각"

자살 얘기가 나온 김에 최근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청소년 자살에 대해 얘기를 꺼냈다.

"워낙 사회적 관심이 쏠려 있으니 그런데 청소년 자살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만큼 심각하지는 않습니다. 전체 자살자에서 학생들은 5% 정도입니다. 노인 자살률이 35% 정도죠. 가장 심각한 층은 생산가능 인구 중에 한 두 번의 실패를 겪은, 현재 무직자이거나 비정규직이거나 생계 곤란자, 이른바 '쌍용자동차형 자살'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적극적 노동 정책이나 재훈련 정책을 빨리 펼쳐야 합니다. 이들의 자살률이 계속 늘고 있습니다. 빈곤형 자살이 전체의 65% 정도 됩니다."

▲ 김성환 구청장. ⓒ프레시안(최형락)
가장 심각한 쌍용자동차형 자살 대책을 세우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한다. '통장 복지'를 최대한 활용한 홀몸 노인 자살 예방 사업은 통계로도 확인될 만큼 줄어들고 있지만 쌍용자동차형 자살이라고 할 수 있는 중장년층 자살은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OECD 국가 중 고용안정성 꼴찌, 최장 8개월에 최고 120만 원 정도 밖에 안 되는 실업급여, 열악한 직업 재훈련과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부재 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 하면, 중장년층의 자살률을 낮추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가 될 것입니다."

노원 날개짓, 나라를 움직이다

그래도 구청장이라는 제한된 권한 안에서 펼친 김 구청장의 자살예방사업은 인정해줄 만 하다. 그는 청와대 정책조정비서관 시절부터 자살 문제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청와대에 있을 때 보건복지부에 자살 관련 대책을 보고하라고 한 적이 있어요. 당시 한덕수 총리도 관심이 많았죠. 제가 힘이 없으니까 보고서가 나오면 대통령에게 밀어 붙이라고 건의 드릴 생각이었죠. 그런데 보건복지부가 제출한 종합 보고서는 광역 센터를 만드는 것이었어요. 한강에서 누가 투신 자살을 하면 긴급 출동하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식이었죠. 그래서 보고를 못 드렸어요. 보건복지부에서 생각할 수 있는 개념의 한계였죠. 예산의 문제도 있고. 그런데 지금은 노원구에 와서 실천을 하고 있고, 성과도 나오고 있습니다. 다른 기초단체에서 많이 배워가고 있어요. 다만 지자체 차원에서 항상 예산의 벽에 부딛힙니다. 보건복지부에서도 노원구 모델을 기초로 정책을 수립하고 있으니 예산 지원을 기대해봐야겠죠."

우리나라 자살예방 직접예산은 23억 원 정도다. 반면 일본은 225억 엔, 그러니까 3000억 원 수준이다. 경제규모를 대입해봐도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그나마 희망이 있다면, 노원구에서 희망적인 모델을 만들어 내고 있고, 전국으로 확산될 초석을 다졌다는 것이다.

김 구청장은 자살예방사업 외에도 지난 5월 '심폐소생술 상설교육장'을 만들었다. 미국은 심정지 환자의 생존율이 8.4%인데 우리나라는 2% 남짓에 불과하다는 점을 안타까워했다. 미국은 일반인의 심폐소생술이 33%에 달하는데 우리나라는 2%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교육장에서 매일 100명이 심폐소생술을 배우는 것이 목표다.

아이를 낳는 것을 "우주를 창조하는 일"이라고 한다. 내가 존재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이듯이 한 생명이 태어나 성장해 사람이 된다는 것은 내 세상이 하나의 우주이듯이 또 하나의 우주가 생기는 것이다. 김 구청장은 "한 생명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생명이 사라지면 우주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 한다. 생명을 지키는 것은 곧 우주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자살예방사업을 하고, 심폐소생술 상설교육장을 만들고. 이 정도면 조금 과장 되더라도 '사람 살리는 구청장', '우주를 지키는 구청장'이라 불러도 좋지 않을까?


[도시, 욕망을 벗다] 기획 이번 회차는 순서대로 하면 8회 차에 해당된다. 그런데 '1-1'편으로 회차를 정했다. 김성환 구청장은 [도시, 욕망을 벗다] 기획 1회차 인터뷰이였다. 김 구청장은 구청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에너지 전환 사업 등 구정 전반의 비전에 대한 얘기를 풀어놨었다. 당시만 해도 오세훈 시장과 씨름을 하던 때였다. 이번 인터뷰를 할 즈음에는 <나비효과>(김성환 씀, 아침이슬 펴냄)라는 책을 냈다. 2년의 구정이 비로소 조금씩 성과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이번 인터뷰는 [도시, 욕망을 벗다] 8편이 아니라 '1-1편'이다. 프레시안은 [도시, 욕망을 벗다]를 통해 대화를 나눴던 기초단체장들의 도전과 성과, 실패의 교훈들을 그들의 임기 내내 추적하고자 한다. 김 구청장의 실험들이 1-2편, 1-3편으로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김 구청장의 1-1편 인터뷰는 주제가 다양해 3회(상-중-하)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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