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이들이 풍천노숙을 해야할까. 재능교육 노동자들을 위해 많은 이들이 그들을 지지하고 나섰다. <프레시안은> B급 좌파가, 작가가, 노동운동가가, 청년이, 혹은 당 대표가 그들에게 전하는 목소리를 릴레이로 싣는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재능out 국민운동본부에서 공동으로 기획했다. 그들이, 혹은 세상이 재능노동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편집자>
재능교육, 1500일의 기도
재능교육특수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길바닥 농성 1500일째라고
무슨 글 하나를 보태라는데
무슨 말이 부족해 1500일일까 생각하니
머릿속이 답을 알 수 없는
주관식 문제지 공란마냥 하얗다
천일야화니
1000일의 거인들이니
스님들도 1000일 기도면 큰 스님이고
마늘쑥만 먹고 100일이면
곰호랑이도 사람이 된다는 건국신화의 나라에서
1000일이 웬말이냐는 말도
기륭전자 동희오토 지엠대우비정규직 투쟁에서
다 썼으니 어떤 비유도 떠오르지 않는다
국정감사 증인 채택도 나몰라라
꿈쩍없는 박성호 회장에게
공수표 같은 말 폭탄 몇 개 던지는 것도 심드렁
재능교육 TV광고 나오는
양희은 씨는 연락이 닿지 않고
독실한 크리스찬이라지만
소유권과 경영권에 관해서만은
기독교계도 하느님도 3자 개입 접근 불가
계열사인 재능대학엔 변변한 총학생회 하나 없고
명예시인에 매달 재능시낭송대회 연다하여
옳다구나 검색해보니
진리를 쫒는 시인들은 하나 없고
해마다 여는 전국동화구연대회는
대학 특채 상장 파는 경연장으로 난공불락이라
분만 오르고
1500일에 맞춰 1500인 선언도 해보고
100인 릴레리 기고도 해보고
희망뚜벅이 걷기도 벌써 몇 번째
삭발단식을 밥 먹듯 하고
전국 재능교육지사 앞에서 1인 시위도 해보고
재능교육 OUT 범국민운동본부를 꾸려보고
스무번도 넘게 짓밟힌 텐트를 다시 세워 봐도
답이 없는 세월
이런 꽉 막힌 회사라면
그 속에 다시 들어가는 것보다
아예 이 사회에서 퇴출시켜버리는 게
더 쉬울 것 같다는 생각도 하다가
이렇게 교육을 상품으로
교사를 생산수단으로
아이들을 이윤의 재료로 여기는
못된 기업은 이 사회의 종양덩이라고
아예 덜어내야 한다고
입에 거품을 물다가
노동자가 자꾸 노동자만 되려하니
자꾸 짓밟히는 거라고
노동자가 이젠 해방자가 되어야 한다고
특수고용 간접고용 직접고용
기간제 파견 용역 도급 단시간
아르바이트 노동 모두 폐지하고
빼앗기지 않는 노동과 놀이를 되찾아야 한다고
실낱같은 희망을 떠올려본다
노동자민중의 유일한 출구
잊었던 그 이름
혁명을 생각해 본다
재능교육투쟁 1500일은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
소중한 교육의 시간이었다고,
눈물겨운 배움의 시간이었다고
한 자 한 자
꼭꼭 눌러 써본다
ⓒ노동과세계(이명익) |
[덧말]
2월 9일 갑작스런 보석으로 부산구치소에서 출감했다. 언제쯤 내게도 출감이라는 시간이 주어지겠지 했지만, 무척이나 이른 것이었기에 '뻘쭘'하기까지 했다. 이번엔 좀 오래 살기를 바라는 벗들의 기대(?)를 다시 깨는 것이라 미안하기도 했다. 누구라고 빨리 나오고 싶지 않을까마는 더 갇혀서 이 막되먹은 정권의 폭력성을 증거하고, 내부를 좀먹는 바이러스가 되었어야 했는데 아쉽기도 했다. 무엇보다 나보다 먼저 갇혀 고생하고 계신 여러 양심수 분들이 눈에 밟히고 죄송했다.
실제 나오기 전날까지도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다. 돌아오는 주말에는 방 도배를 하겠다고 딱풀과 하얀 편지지를 잔뜩 구매 신청해 두기도 했다. 그리곤 나오던 날 새벽까지 두 통의 편지를 썼다. 한 통은 용산 참사 관련한 편지였고, 또 한 통에는 거리농성 1500일을 맞는다는 재능교육특수고용노동자 투쟁을 되돌아보는 시를 적었다. 꼴이 대충 잡혀 일어나면 최종 퇴고를 해서 내보내야지 하던 참이었다.
그렇게 부치지 못했던 두 통의 편지 중 재능교육 1500일과 관련한 편지를 이제야 세상에 내놓는다. 얼마 전에는 시청 광장에 희망광장을 열고 노숙을 하다 연행되어 멀리 성북경찰서 유치장에 갇혀 있는 유명자 지부장을 면회하기도 했다. 얼마 전 부산구치소까지 찾아와 나를 응원해주던 이를 이젠 내가 밖에 서서 응원해야 하는 현실이 서글펐다. 며칠 전에는 핵안보 정상회의를 한다고 다시 그 조그만 농성텐트를 뜯기기도 했다.
아직 어릴적 구로공단에서 처음 노동운동을 배울 때는 투쟁이 몇 십일만 가도 대단한 것이었다. 누군가 삭발만 해도, 단식 며칠만 한다 해도 지역 전체가 숙연해지고, 눈물바람이 일고, 난리가 났다. 그런데 이젠 투쟁 1000일, 1500일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무슨 높은 임금도 아니고, 다시 비정규직으로라도 재취업하는 것 하나, 법률상 노동자로 인정받는 것 하나에 목숨을 걸고 온 젊음을 다 쏟아 부어야 하는 지옥 같은 사회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그간 20여년 시를 써오며 단 한번 밖에, 그것도 우회적으로밖에 써보지 않았던 말, '혁명'이라는 단어를 시에 써보았다. '혁명'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걸 거라고, 그 말은 쉽게 쓰는 말이 아닐 거라고 항상 겸허한 마음으로 대했던 그 말이 아니고선, 재능교육특수고용노동자들의 1500일을 잘 표현할 수 없었다.
이렇게 잔인한 사회라면, 이렇게 꽉 막힌 사회라면, 이렇게 절망적인 사회라면 이제 그만 다른 꿈을 꾸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왠지 그래야 하는 때가 다가오는 것 같다고 쓰고 싶었다. 재능교육 박성호 회장에게 그것을 가르쳐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싶었다. 교육을 이윤의 도구로 삼는 당신 같은 이는 이 사회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멀게만 느껴지던 무상급식이니, 무상보육이니가 보편적인 사회적 책무로 이야기되기도 한다. 여기저기 선거 벽보에 립서비스일망정 비정규직 문제와 정리해고 문제를 해결하겠다고도 한다. 무상교육이 얘기되기도 한다. 시대에 역행하는, 오히려 시대와 아이들을 병들게 만드는 사교육 시장의 운명 역시 길 것 같지만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 잊지 못할 교훈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그런 세상을 앞당겨줘서 고맙다고 우리 모두 재능교육특수고용직 노동자들에게 감사하자. 그리고 이제 우리 모두가 다시 그들의 든든한 벗이 되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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