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고리원전 1호기, 신월성 원전 1호기 등에서 사고가 잇달으면서 국민들의 불안도 높아지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가 일어난 지 1년 즈음에 일어나는 이들 사고는 재앙을 불러올 수 있는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안전 관리가 부실하고 불투명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대한변협 환경인권소위원회 등은 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국의 원자력 안전 문제, 이렇게 개혁하자"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는 원자력안전위원회 엄재식 안전정책과 과장이 참석해 "후쿠시마 사고 이후 세계 최초로 안전성 강화 대책을 실시하는 등 신속한 대응으로 국민 불안 확산을 방지했다"고 주장했으나 대부분의 참석자로부터 적지 않은 질타를 받았다.
"형식적으로 하는 대피 훈련, 주민들은 무슨 훈련인지도 모른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실제 원전에서 중대 사고가 났을 때 실질적인 대책이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영광발전소 주변에 사는 이태옥 원불교 환경연대 처장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도 사회적 약자인 원전 지역 주민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은 없다"면서 "방재계획에 의하면 사고시 소개해야 하는 지역이 8~10km라고 하는데, 그 기준이 뭔지 물어도 답해주지 않고 대피 훈련 역시 민방위 훈련하듯 할 뿐 대부분의 주민들이 그게 무슨 훈련인지도 모른다"고 비판했다.
이태옥 처장은 "가령 최근 방재 계획을 보면 '사고가 나면 아이를 데리러 학교로 가지 말라, 아이들은 학교에서 대피한다'고 하는데 아이들에게 한번도 방사능 위험에 대해 가르친 적이 없고 오히려 원전 찬양 교육만 하면서 어떻게 알아서 대피시킬 것인가"라며 "재산권 문제에서도, 사고가 나면 받을 수 있는 보상금이 많아야 500만원인데 그걸 가지고 어디로 이주하겠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는 "실제로 원전이 위험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에 따라 홍보와 대피 교육 등을 해야 신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지진 등의 재난 사고에 대비가 잘 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일본에서도 정작 후쿠시마 사고가 나자 예상했던 대책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스즈키 아키라 노동건강연대 활동가는 '후쿠시마 사고조사위원회 중간보고서'를 소개하면서 "원자력 재해가 발생했을 때에 대비해 현장에서 가까운 곳에 거점시설을 정하고 현지 대책본부를 설치하게끔 되어 있으나 정작 사고가 나자 그 시설에는 방사성 물질을 차단하는 공기 정화 필터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쓸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스즈키 아키라 활동가는 "긴급 사태에서 신속하게 방사능 영향을 예측하는 네트워크 시스템(SPEEDI)가 있으나 앞선 지진의 영향으로 데이터 회선이 끊기면서 전혀 사용되지 못했고, 국가의 피난 대책 역시 신속하게 전달되지 않아 지자체들은 충분한 정보 없이 결정을 해야 했다"고 전했다.
심각한 문제는 한국의 경우 원전에서 중대 사고가 나면 남한 대부분의 지역이 방사능에 오염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최예용 환경시민보건센터 소장은 "원전 반경 200km 영향권에는 서울을 비롯한 남한 대부분의 지역이 들어간다"면서 "일본에서 주민 소개 지역으로 결정한 30km 이내 지역에도 고리 원전의 경우 322만 명, 월성 원전 109만 명, 울진 원전 6만명, 영광 원전 14만명 등 모두 451만 명(2005년 인구 기준)이 살고 있다"고 말했다.
최예용 소장은 "원전으로부터 60km 범위까지를 사고 피해 직접 영향권으로 생각하고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며 "일상적인 방재교육은 물론 모든 주민이 참여하는 종합방재훈련이 반드시 필요하고, 학교와 인구 밀집 시설을 포함해 방사능 측점 지점을 확대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원전으로부터 60~100km 범위에 대규모 원전 피난 시설을 확보해야 한다"고도 촉구했다.
▲ 고리원전으로부터 30km 영향권 내에는 울산, 부산, 경남 양산·김해의 322만 명이 살고 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
▲ 국내원전으로부터 반경 60km 이내 영향권에 있는 지역들. ⓒ환경보건시민센터 |
▲ 반경 100km 이내 지역. 남한 대부분의 지역이 포함된다. ⓒ환경보건시민센터 |
"원자력안전위, '세계 최고' 운운 그만하고 기본부터 챙겨라"
후쿠시마 사고에 이어 국내에서도 원전 사고가 잇달으면서 국민들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원자력안전위원회 등 안전 규제기관은 "안전하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원자력학계에서도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이번 고리 1호기에서는 사람 잘못, 기기 고장, 늑장보고 등 익숙한 일들이 다시 불거졌다. 아직까지 진행 중인 후쿠시마 사고에서 무엇을 배웠나"라며 "특히 은폐 의혹은 우리나라 원전 안전 관리체제의 구조적 부실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균렬 교수는 "국내 원전 건설과 운영을 한국수력원자력이 독점하는 것도 문제고, 인력을 양성하는 전문 과정도 마땅치 않고 감독기관인 원자력안전위도 존재감이 희미해 보인다"면서 "규제자와 사업자 간엔 건강한 거리가 유지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생각과 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원전의 위험성 논란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안전 없이 원전은 없다"고 꼬집었다.
대한변협 환경인권소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여영학 변호사는 원자력안전위원회를 강하게 비판했다. 여영학 변호사는 "세계 최초, 세계 최고수준 이런 이야기는 그만하고 기본적인 것부터 챙겼으면 좋겠다"면서 "국민들은 안전위가 내놓는 '생활 속의 방사능 대책'도 믿지 못하고 있는데, 이것을 국민들이 불안해해서 문제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일침을 놨다.
여 변호사는 "신뢰할 수 없는 지침을 내놓고 '내 말을 믿는 수밖에 없다'는 고압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원자력안전위에 기대할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며 "이런 곳에서 일하는 분들은 적어도 잘못을 인정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또 원전에 관한 정보를 대폭 공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황승식 인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원자력안전위의 자문위원 명단을 보면 의학 전문가가 두분 계신데 둘다 치료용 방사선 전문가"라며 "적어도 자문위원 중 한 분은 인구 집단에의 방사능 영향을 이이해, 평가하고 방재 정책에 도움을 주는 분들이 계셔야 하는데 치료 목적의 방사능만 평가하는 분만 계신 것은 문제 아니냐"고 지적했다.
쏟아지는 비판에 대해 엄재식 원자력안전위 과장은 "국민들의 신뢰도가 낮다는 점에 반성하겠다"면서도 "그러나 작년 10월에 출범한 작은 부처이고, 어쨌든 규제 기관으로 출범한 것은 원자력 안전만을 바라보겠다는 취지다. 국민들이 지지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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