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원자력 산업계 인사들이 모이는 서울 원자력인더스트리서밋이 2012 핵안보정상회의의 공식 부대 행사로 23일 서울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열렸다. 후쿠시마 사고 1주년과 비슷한 시기에 열린 이날 행사에서는 '원자력 안전 강화'라는 모토와 함께 '원자력 재부흥'을 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날 자리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전세계적으로 높아진 '탈핵' 여론에 원자력 산업 관계자들 역시 상당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줬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주최한 이날 행사에는 세계 원자력협회(WNA), 국제원자력기구(IAEA), 경제협력개발기구 원자력기구(OECD/NEA) 등 원자력 관련 기구 관계자들과 마빈 퍼텔 미국 원자력협회(NEI) 회장, 쑨친 중국 국영핵공업집단공사 원자력 산업계 최고경영자(CEO)도 대거 참여했다.
로랑 스트리커 세계원자력사업자협회(WANO) 의장은 기조연설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교훈을 얻어 우리는 사고 예방과 위기관리에 가장 신경을 쓰게 됐다" 며 "세계 각국이 함께 연구하고 저마다 갖고 있는 정보와 경험을 공유하면서 원자력 산업을 좀 더 안전하고 강하게 만들자"고 말했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도 강행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원자력 확대' 기조를 재확인했다. 김황식 총리는 축사에서 "9.11테러 이후 핵 테러 우려가 증가하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자력의 안전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으나 증가하는 에너지 수요와 기후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원자력 사용이 필요하다"며 "앞으로 40~50년까지는 원자력의 안전한 이용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현실성 있는 대안"이라고 말했다.
한수원은 "이번 회의에서 국제적 핵안보 체계 강화와 안전에 대한 산업계의 의지를 보여줌으로 실추된 원자력 안전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고 원자력 산업계의 국제적 위상이 한층 높아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들은 이날 "연구용 고농축 우라늄의 사용을 최소화하고, 새로 원전을 도입하는 나라의 인프라 구축을 적극 지원한다"는 내용의 공동합의문을 발표했다. △안보 문화의 향상 △연구용 고농축 우라늄 사용 최소화 △IAEA의 권고사항 지원 △사이버테러 대응 강화 △핵안보 관련 우수사례 교류 △신규 원전 도입국에 대한 인프라 지원 등의 세부 실천 사항도 내놨다.
이중 '신규 원전 도입국에 대한 인프라 지원'은 '핵 수출 확대'라는 이날 회의의 본질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공동합의문은 "신규 원자력시설 도입국의 요청이 있는 경우, 원자력 인프라 구축에 관한 IAEA의 권고사항에 따라 원자력에너지의 안전하고 안정적인 사용을 위해 필요한 인프라 구축을 지원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IAEA는 그간 개발도상국이 원전을 도입하면 송전망을 깔아 전력시스템을 구축하고 원자력법을 제정하는 등의 유무형 인프라 구축을 해왔다"면서 "이 합의문에서 '에너지의 안정적인 사용'을 지적하며 이러한 사업을 지원한는 것은 말 그대로 핵발전소를 수출하겠다는 이날 회의의 본심을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후쿠시마 사고난 지 1년만에 '원자력 수출' 회의 여나"
원자력인더스트리서밋이 열린 행사자 부근에서는 이들을 비판하는 기자회견도 열렸다. 핵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과 핵안보정상회의 대항행동은 이날 오전 일본,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 미국 등의 반핵 운동가와 함께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당초 원자력인더스트리서밋이 열리는 그랜드인더콘티넨탈 호텔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할 예정이었으나, 경찰이 지하철역에서 이들의 출입을 통제함에 따라 삼성역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핵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 측은 "당초 호텔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기로 경찰과 합의했으나 경찰이 말을 바꿨다"고 비판했다.
이로 인해 핵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 측과 경찰 사이에서는 적지 않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 등은 경찰에 강하게 항의했고, 이를 지켜보던 아시아 반핵 활동가들도 영어로 "남한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고 외치는가 하면 한 활동가는 기자들에게 "(경찰이 막아서는) 이런 일이 한국에서는 자주 일어나느냐?"고 묻기도 했다.
필리핀에서 온 반핵 활동가 에밀리 델라 크루즈 씨는 "현재 도시바, GE와 같은 초국적 에너지 기업이 어떻게 핵 산업을 더 많이 수출할 것인지를 논의하고 있다. 더 많이 수출하기 위해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선전하고 있다"며 "그러나 일본과 같은 에너지 강국도 후쿠시마 사고와 같은 악몽을 막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태국에서 온 산티 촉차이참난킷 씨는 "다음달이면 체르노빌 사고가 발생한지 27주년이 되지만 아직도 해결책을 제시하는 정부나 기업은 없다"면서 "핵산업계는 다른 일을 더 벌이기전에 핵으로 인한 피해부터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그는 "핵산업계는 오로지 '수출'만 생각하지 자신들로 인해 피해받은 사람은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대신 '핵은 안전하다, 좋다'는 거짓말만 늘어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기후에너지 국장은 "한국 정부가 원자력을 확대하고 수출하려는 이들이 모이는 회의 자리를 만들었다. 한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고 죄송하다"고 사과하면서 "어떻게 사람의 얼굴을 하고 후쿠시마에 엄청난 재앙을 일으킨 지 1년 만에 원자력을 수출하겠다는 회의를 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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