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EU FTA가 발효되는 시점에 이 법(상생법)이 문제가 된다. EU측과의 합의에 위반되기 때문이다." (2010년4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지난 2010년 4월과 10월, 국회의 기업형슈퍼마켓(SSM) 규제법안에 반대한 김종훈 당시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의 발언이다.
당시 국회가 추진 중이던 SSM 규제법안이 자유무역협정(FTA)와 배치된다며 반대 입장을 고수한 김 본부장의 '입김'으로, 여야가 어렵사리 합의한 대·중소기업상생법(상생법)과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은 한 때 표류하기도 했다. 당시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통상관료 한 명 때문에 법안 표류가 말이 되느냐"는 볼멘소리가 쏟아졌었다.
그로부터 1년4개월 후, 국회에서 진풍경이 벌어졌다.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꾼 한나라당은 "경제민주화를 위해 골목상권을 대형 유통업체로부터 보호하겠다"며 13일 중소도시의 대형마트 진입을 규제하는 정책을 내놨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4.11 총선을 앞두고 SSM 규제를 반대했던 김종훈 전 본부장의 영입에 몰두하고 있다. 총선 전 '정책'과 '인물' 사이에서 자가당착에 빠진 셈이다.
'SSM 규제가 FTA 위반'이라던 김종훈, 테스코에 'SSM법 개입' 약속 파문
특히 김 전 본부장은 지난 2010년 국회가 SSM 규제법안을 추진할 당시 영국계 유통업체인 테스코(TESCO)에 "국회에 적절한 개입을 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서한을 보내 파문을 빚은 인물이다. 대기업의 과도한 골목상권 진출로 국내 재래시장과 중소상인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 통상관료가 외국계 유통회사 입장에 동조하는 서한을 보낸 것.
▲ '한미FTA 전도사'로 불리는 김종훈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뉴시스 |
실제 김 전 본부장은 당시 국회의 SSM 논의 과정에서 적극적인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당시 국회는 여야 합의 하에 재래시장의 반경 500m 내에 SSM 입점을 금지한 유통법과 SSM의 입점조건과 영업시간을 중소상인과 사전 협의토록 한 상생법 등 두가지 법안 통과를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김 본부장은 "상생법이 통과되면 한·EU FTA 체결에 어려움을 준다"며 반대했고, 결국 법안 통과에 긍정적이었던 한나라당이 유통법과 상생법을 분리처리하도록 입장을 바꾸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과정에서 당시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까지 테스코사의 '로비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스텝 꼬인 새누리당…김종훈, 새누리당 '중소도시 SSM 규제'엔 뭐라 할까?
새누리당의 '자가당착'은 이 뿐만이 아니다. SSM 규제법안으로 인해 "제소당할 게 뻔하다"는 김 전 본부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새누리당은 자신들의 손으로 강행처리한 한미FTA와 충돌하는 정책을 추진한 셈이 된다.
당장 일각에선 한·EU FTA 외에도 한미 FTA 12장(국경 간 서비스무역)을 들며 새누리당의 중소도시 SSM 규제법안과 충돌한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이 조항은 "지역적 소구분에 기초해 자국의 영역에서 경제적 수요심사에 따라 서비스 공급자의 수를 제한하는 조치를 채택하거나 유지할 수 없다"며 외국인 투자자의 시장접근 보장을 규정하고 있다. '인구 30만 미만의 중소도시'라는 지역적 구분에 따라 SSM 진출을 제한하는 새누리당의 정책이 한미 FTA 규정과 충돌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은 "국내기업과 외국기업을 차별하지 않고 균등하게 제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FTA에 대해서는 큰 걱정을 안해도 된다"(김종인 비상대책위원)며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새누리당 후보로 총선 출마 의사를 밝힌 김종훈 전 본부장은 과연 이 정책에 어떤 입장을 밝힐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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