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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폐지가 단순히 학과 몇 개 없애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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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폐지가 단순히 학과 몇 개 없애는 걸까요?"

[전태일 통신] [인터뷰] 조승연 동국대 부총학생회장

뉴욕 월스트리트의 (하위) 99%에 이어, 서울 동국대학교 (하위) 1%도 지난해 12월 5일(월) 본관 총장실을 강제 점거했다. 학과구조조정, 쉽게 말하면 취업률 등의 지표에서 하위권을 맴도는 학과들에 대한 통폐합 조치에 대한 반발 때문이다.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원하는 학문을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대학생으로서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점거는 9일간 지속됐다.

이 기간 동안 학생들은 본관 앞에서 학과구조조정에 대한 항의 릴레이108배와 피케팅, 삭발식과 공부시위 등을 계속했다. 인터넷 뉴스는 물론이고 공중파도 이들의 점거를 비중 있게 보도했다. 어떤 학생은 <나는 꼼수다> 정봉주 전 의원의 팬 카페에 동국대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원칙 없는 학과구조조정에 대한 고발 및 연대를 호소하는 장문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게시글 제목: 봉도사님! 동국대 학생들이 총장실을 점거하고 있습니다 도와주세효~ 제발 ㅠㅠ). 특히 문제의 글은 내가 졸업한 동국대 철학과를 직접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묻고 있었다.

"철학과와 국문학과와 정치외교학과는 꽃놀이패를 하고 있어서 기분들이 상쾌하신가? (필자 주: 동국대에서는 윤리문화학과는 폐과되는 반면 철학과는 남기로 결정됐다. 문예창작학과는 국문학과로, 북한학과는 정치외교학과로 통합된다) (..) 철학과여, 정외과여, 국문과여, 어디 대답을 해보시라! 대체 정의란 무엇이고, 중용이란 무엇인가?

롤스와 샌델과 한용운과 시대적 소통의 부재에 대해서 대답을 해보시라! 왜 사학과는 오지랖 넓게도 이들(필자 주: 폐과 예정학과들의 비상대책위원회)과 아름다운 동행을 선택했는가? 철학과는 정녕 쪽팔리지도 않는가?"

쪽팔린다. 그리고 더 쪽팔리게도, 이 글을 모교의 철학과 구성원들이 절대로 보지 않게 되길, 나는 지금 빌고 있다. 줄 세우기는 사람을 이토록 비겁하게 만드는가. 생존은 사람을 이토록 작아지게 만드는가. 정의란 무엇이냐고? 아, 어려운 철학 질문 같은 거 하지 마라. 머리의 문제가 아니라 몸의 문제 때문에 답을 할 수 없구나.

지난 12월 14일(수)은 총장실을 점거했던 20여 명의 학생들에게 지옥 같은 날이었다. 새벽 6시 45분, 동국대 남자 교직원 100여 명이 기습적으로 밀고 들어와 점거 중인 학생들을 강제로 본관 밖으로 끌어낸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교직원들의 폭력과 욕설이 난무했고, 어떤 여학생은 바지가 벗겨지기도 했단다. 나는 짓궂게도 하필이면 이날 낮, 본관 앞에 텐트를 치고 여전히 저항 중인 비상대책위원회 학생들을 만났다. 철학과 졸업자로서 쪽팔려서 윤리문화학과 학생을 수소문했다. 남자로서 미안해서 여학생을 찾았다.
▲ 서울 동국대학교 본관 앞에서 학과 구조조정에 반발하는 동국대 학생들이 삭발식을 열고 머리를 깎고 있다. ⓒ연합뉴스

조영훈 : 이번에(지난해 11월) 동국대학교 부총학생회장에 당선된 윤리문화학과 조승연님이시죠?

조승연 : 네.

조영훈 : 일단, 몸은 좀 괜찮으신지요?

조승연 : 아, 네. 저는 크게 다치지는 않았습니다.

조영훈 : 오늘(지난해 12월 14일) 새벽에 있었던 일을 간단히 설명해주시겠어요?

조승연 : 음… 저희는 본관에서 총장실의 집무실과 회의실, 비서실 등을 쓰고 있었어요. 회의실에서 점거 학생의 대다수인 여학생들이 자고 있었죠(폐과 예정학과는 윤리문화학과, 문예창작과 등 여학생 비중이 절대적으로 많은 과다). 새벽 6시 40분쯤이었나. 자고 있는데 갑자기 어딘가에서 여학생들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우당탕탕, 뭐가 부서지고 넘어지는 소리도 들리고, 막 사람들이 뛰어다니는 소리도 들리고. 보니까 우리 학교 남자 교직원들이었어요. 도서관 사서분들과 부총장님, 운영본부장님 같은 분들 얼굴을 똑똑히 보았지요. 저희의 수가 20명 정도밖에 안되었는데, 그중에서도 남학생들은 대여섯 명밖에 없었거든요. 이 숫자와 성비로 어떻게 건장한 체격의 남자 교직원 100여 명을 당해낼 수 있었겠어요.

계속 저항하면 지난 번 점거 때처럼 또 실신하거나 다치는 학생들이 생길 것 같아서, 나가겠다고 우리를 건드리지 말라고 했지요. 그래서 교직원들에게 끌려나왔습니다. 끌려나온 뒤 우리 짐을 내려달라고 하니까, 본관 앞 쓰레기통 옆에 내려주더라고요.

조영훈 : 아, 그래서 여기에 이렇게 텐트를 치고 계시는군요. 휴,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용역 깡패는 안 불러서 그나마 다행이네요.

조승연 : 네. 그런데 학교 보안을 담당하는 SECOM 직원들은 와 있더군요. 그러니까 외부 용역은 안 불렀지만, 내부 용역은 부른 셈이지요.

조영훈 : 그동안의 동국대 내에서의 학과구조조정 진행 경과를 좀 설명해주시겠어요? 그리고 점거는 왜 하게 됐는지도.

조승연 : 음… 3월에 신임 총장님이 새로 부임하셨어요. 그리고 곧바로 학문구조개편위원회가 꾸려졌대요. 다시, 7월에 '미래지향적 학문구조개편안'이란 것이 나왔어요. 이 개편안에 따르면, 윤리문화학과는 사실상 폐과, 북한학과는 정치외교학과로의 통합 및 연계전공체제로 전환, 문예창작학과는 국문학과로의 통합, 반도체과학과는 물리학과로의 통합, 경영정보학과와 회계학과는 경영학과로의 통합 등이 논의됐다고 하더라고요.

뭐, 땅따먹기도 아니고 힘센 과가 약한 과를 잡아먹는 형국인데, 사실 이 개편안이 나왔을 때는 여름방학 중이었기에 저희는 구체적인 행동을 취할 수가 없었어요. 9월, 새 학기가 개강하고 저희(총학생회)도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죠. 그 뒤 안 해본 거 없이 거의 다 해봤어요. 본관 앞에서 구조조정 반대 릴레이 108배, 피케팅, 학문처형식, 교정 곳곳에 종이학 모양의 '학(學)' 매달기, 총장님 면담신청, 학술부총장실 항의방문, 심지어 교육과학기술부도 찾아갔는데… 학교 측은 언제나 '너희는 피교육자이기 때문에 논의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주장으로만 일관했고요.

저희는 저희대로 이게 이번 학기를 넘어가면 끝이라고 판단했죠. 아무래도 학교가 교과부의 지원사업을 따내기 위해서 학과구조조정을 하는 건데, 이게 정말로 교과부로 넘어가서 내년 2, 3월에 지원금을 학교가 타내면 완전히 끝나는 거거든요. 그래서 어차피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해서 마지막 수단으로 연합총회를 열고 총장실 점거 안을 가결시켜 실행에 옮겼죠. 점거는 지난 5일(작년 12월 5일) 점심에 했습니다.

조영훈 : 학과구조조정 논의가 사실 올해가 처음이 아니었죠?

조승연 : 네. 제가 07년도에 입학했는데요. 07년, 09년, 11년 세 번 모두 구조조정 논의가 있었죠. 사실 07년 09년에는 철학과도 구조조정 대상이었고요. 실제로 09년에는 독어독문학과가 폐과되었어요. 그러고 보니 세 번 모두 총장실 점거를 했었네요. 그런데 올해가 점거기간이 가장 길었을 겁니다.

조영훈 : 2년 간격마다 총장실 점거라… 뭐, 동계올림픽 열리는 기간 같네요. 참,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는데… 음, 아픈 질문이기도 할 것 같은데요. 윤리문화학과나 북한학과 구성원들 중에는 폐과되기를 희망하는 학생들도 있을 것 같아서요. 학과가 없어지면 특별전과제도에 따라 다른 과로 전공을 자유롭게 옮길 수 있으니까, 경영학과 같은 취업이 잘 되는 과들로 전과하고 싶은 친구들에게는 외려 호기일 텐데…

조승연 : 음… 글쎄요. 그런 친구들도 있기는 있겠죠. 하지만 윤리문화학과의 경우는 과 인원도 너무 적고 가족 같은 분위기라서 그런 입장을 드러내는 친구들은 사실 한 명도 없어요.

조영훈 : 아, 그렇군요. 그럼, 학과를 지키려는 게, 윤리문화학이란 학문에 대한 애정입니까? 아니면 집단 혹은 소속감에 대한 애착입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원칙 없는 학과구조조정에 대한 분노인가요?

조승연 : 음… 세 개 전부 다 복합된 걸 텐데, 특히 뒤의 두 개가 큰 것 같아요. 저희 과는 사실 제가 입학한 07년 때부터 없어진단 얘기가 있었어요. 그때는 저도 아무것도 모르고 총장실을 점거해버렸는데… 하하. 새내기 때, 저를 예뻐해 주고 챙겨주던 오빠들이 우리 과가 없어진다며 울던 모습들을 보는 게 너무 슬펐어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왜 울어야 되나. 저 오빠들, 언니들과 내가, 정말로 학과가 폐과되고 나면 지금처럼 못 만나는 건가, 하는 생각에 분노도 치밀었죠. 그리고 09년부터는 사회학을 복수전공 하게 됐는데, 그러면서 우리 사회에 대해 아주 조금은 관심을 갖게 됐고, 학과구조조정의 문제가 단순히 학과 몇 개를 없애는 문제가 아니구나, 우리나라 전반에 만연한 경쟁과 줄세우기의 문제와 다른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내가 대학에 있을 때만큼은 이걸 꼭 막아야겠다는 다짐을 했죠.

조영훈 : 윤리문화학과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조승연 : 우리 과는 북한학과와 마찬가지로 사실상 폐과 선고가 내려진 상태에요. 그때 제일 처음에 든 감정은 인간적인 모멸감과 분노였지요. 비싼 등록금 내면서 학교 다니는데, 왜 우리만 만날 차별과 무시의 대상이 되는지 너무 화가 났지요.

조영훈 : 자, 이제 승연 씨 개인에 대해 물어볼게요. 앞으로 대학 졸업 후 하고 싶은 일은 뭔가요?

조승연 : 특정 직업은 잘 모르겠어요. 재밌게 살고 싶어요. 조금 관심 있는 건 있어요. 노숙자들이 판매하는 잡지로 유명한 <빅이슈> 아시죠? 그 잡지를 보고 사회적 기업에 대해 관심 갖게 됐어요. 지난 여름방학 때 <빅이슈> 아저씨들이 판매할 때 쑥스럽지 않게 같이 판매를 돕는 <빅이슈> 도우미로 일했는데 재밌고 보람 있었어요.

조영훈 : 혹시 요즘 관심 갖고 있는 사회문제도 있으신가요?

조승연 : 아, 사실 좀 부끄러운 얘기인데 (작년) 2학기가 되고 나서는 아예 신문을 못 봤어요. 선거 준비하고 학과구조조정 문제 때문에 싸우느라 사회에 전혀 관심을 못 가졌지요. 음… 저는 좀 전에도 말했지만 약자들을 위한 삶을 살고 싶어요. 철거민이나 해고자 문제에도 관심 있고요. 철거민과 해고자라… 아, 그런데 정말 저희 윤리문화학과와 같은 입장이군요. 과는 해고되고 점거지역에선 철거되어 끌려나오고….

조승연 씨는 자신이 철거민이자 해고자라고 했다. 다른 과 학생들과 거의 비슷한 액수의 등록금을 지불하고 대학에 다녔지만, 내년부터 윤리문화학, 북한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자기 전공을 잃게 된다. 문예창작학, 반도체과학, 경영정보학, 회계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자신들의 근거지를 잃고 다른 '더 큰' 학과에서 타향살이를 해야 한다.

동국대학교 본관 앞 텐트 속의 학생들은 지금 반값등록금을 요구하고 있는 게 아니다. 기숙사를 지어달라는 것도 아니다. 자신들이 하고 싶은 학문을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계속 할 수 있게 해달라는, 학생으로서 당연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동국대 측은 지금 학교경쟁력강화니, 엄정한 기준을 통한 학과재구성이니 하는, 온갖 감언이설들로 학과구조조정을 포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학과구조조정은 누가 봐도 학과 간 줄 세우기와 끝줄에 선 집단에 대한 무자비한 처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20009년 폐과된 독어독문학과의 당시 학생회장은 독어독문학과의 폐과가 확정되자 참다못한 눈물을 훔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53등 다음에는 52등입니다." 지금 동국대 내에서는 '52등들'의 폐과가 그야말로 거칠게 진행 중이다. 2년 뒤에는 또 어떤 '51등들'이 사라질까. 이것은 인터뷰이 조승연씨의 말처럼, 대학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다.

- 이에 대해 동국대는 학문구조 개편은 취업률 지표 하위권 학과에 대한 통폐합 조치가 아니라고 밝혀왔습니다.



- 지난 12월 14일날 관련해서는 해산 당시 별다른 물리적 충돌이 없었다고 알려왔습니다. 다만 한 명의 여학생이 소리를 지르며 저항해, 데리고 나오는 과정에서 바지가 조금 내려간 적이 있으나, 벗겨지거나 직원들의 폭력과 욕설이 난무했다는 것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알려왔습니다.



- 지금 진행 중인 학문구조 개편은 2013학년도에 입학하는 학생들부터 적용되는 것으로 현재 재학 중인 학생들에게는 아무런 피해가 가지 않는다고 밝혀왔습니다.



- 문예창작학과와 국어국문학과는 학부단위로 운영하고 트랙형 전공제로서 현행 커리큘럼 및 교육과정이 그대로 유지된다고 밝혀왔습니다.



- 징계 관련해서는 기물파손을 주도해 퇴학처분을 받았던 김모 군을 제외하고 나머지 2명은 무기정학, 2명은 유기정학 6주, 또다른 3명은 유기정학 3주를 받았다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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