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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로 죽은 아이, 한국과 영국의 차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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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로 죽은 아이, 한국과 영국의 차이는?"

[아동학대, 주범 보다 무서운 공범들·③] 강력한 친권, 처벌은 없다?

"규희(가명, 9살)과 규철(가명, 8살)은 아버지, 할머니와 지저분하고 추운 월세방 한 칸에서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이들을 발로 차거나 라이터로 머리를 때리기도 했다. 규희의 머리에는 라이터로 맞아 찢긴 상처가 있었고 규철이의 손에는 아버지가 칼로 위협할 때 생긴 1cm 가량의 상처가 남아있었고 두 아이 모두 팔과 다리에는 멍자국이 있었다. 아이들은 알콜 중독과 우울증 증세가 있는 아버지가 무서워 며칠씩 집에 들어가지 않고 있다가 배가 고프면 근처 파출소로 가서 끼니를 해결했고 파출소에서 집으로 돌려보내면 다시 가출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아이들은 자주 끼니를 거르고 학교에도 자주 결석했지만 아버지는 의식주와 같은 기본 생활이나 교육 문제 등에도 신경쓰지 않았다.

몇차례의 상담 동안 아동보호기관 상담원은 아이들을 때리지 말 것을 여러차례 주지시켰지만 아버지는 바뀌지 않았다. 학대가 반복되자 상담원은 아이들을 보육원에 입소하도록 했고 아이들도 무서운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보다 보육원에 있는 편이 좋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처음 보육원 입소에 동의했던 아버지는 곧 입장을 바꿔 아이들을 데려가야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특히 아버지는 아이들이 입소한 이후 아이 앞으로 나오던 생활보조금이 안 나와 수급액이 줄어들었다며 항의했다. 결국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아이들을 때리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고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냈지만 다시 폭행이 반복됐다. 결국 아버지가 교통사고 벌금 문제로 교도소에 가면서 아이들은 다시 보육원에 입소하게 됐다."


아동학대, 주범보다 무서운 공범들

☞ 1편 : 부모가 칼 들고 아이 위협, 아동학대 왜 자꾸…
☞ 2편 : "내 자식 내가 때리는데 당신이 무슨 상관이야?"


"바뀌지 않는 부모, 반복되는 아동학대"

친부모 등 보호자가 가해자인 아동학대 사건은 신고 접수 이후에도 처리 절차가 매우 복잡하다. 여타 폭행 사건은 가해자를 사법절차에 따라 처벌하면 되지만, 아동학대의 경우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오히려 아동으로부터 보호자를 빼앗아 또다른 트라우마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개입은 보호와 치료가 중심이 된다.

윤혜미 충북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아동학대 사건에서 공적 개입의 목적은 가능하면 친가정에서 잘 자라도록 하는 것이지 가정을 깨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가능하면 부모를 교육하거나 가정 환경을 정비하거나 중독 치료 등 가족에게 필요한 여러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해 원가정을 보존 할 수 있도록 맞춰진다"고 말했다.

현장조사 후 해당 가정에서 실제 아동학대가 벌어졌다고 판단되면 상담원들은 위급한 경우 아동을 임시 격리조치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 원래 가정에 둔 채로 아동에 대한 심리검사를 실시하고 필요한 경우 소아정신과 치료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 가해 부모에 대해서는 양육 방식을 재교육하고 입원 치료 등 권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부모가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의 아동학대 서비스가 아동에게만 맞춰 제공된다는 점이다. '2010년 ' 보고서를 보면 아동보호전문기관의 학대 가정에 제공한 서비스 중 78.7%는 피해 아동에게 이뤄지고 12.4%만이 학대 행위자에게 이뤄졌다. 신체적, 정신적 상처를 입은 아동에게 다양한 서비스가 이뤄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학대 행위자에 대한 조치가 없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재학대' 가능성을 열어두는 셈이 된다.

전문가들은 아동복지법 자체의 미비에서 근본적인 원인을 찾는다. 현 아동복지법 상 아동학대 가해자에게 상담이나 재학대 방지 프로그램 참여 등을 강제하는 규정이 없다. 현행 아동복지법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버려진 아동을 구호하기 위해 1961년 제정된 아동복리법에서 전체 아동을 대상으로 확대, 개정된 것으로 기본적으로 학대 행위자에 대한 제재보다는 아동 보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동복지법에서 학대 행위자에 대한 처벌 등을 규정한 조항은 몇개 되지 않는다.

윤혜미 교수는 "많은 학대 부모들이 다양한 서비스가 장기간 필요한 경우가 많지만 현재 시스템은 아동에게만 집중되기 때문에 좀처럼 가정환경이 바뀌지 않는다"며 "이 때문에 아동들은 몇 년간 시설과 원가정을 오가거나 입양가정을 돌아다니는 등 정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강력한 친권에 학대 아동은 두번 운다"

상담원들이 아동학대 현장을 조사한 결과 아동이 심각한 성학대에 노출되어 있거나 생명과 안전의 위협이 심각한 경우 상담원들은 3일 이내의 긴급 격리보호 조치를 할 수 있다. 이후 사례 판정 결과 장기적인 격리보호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아동을 친인척에게 맡기거나 그룹홈, 청소년쉼터와 같은 시설, 혹은 입양 가정에 맡기는 조치를 취한다.

그러나 장기 격리보호 조치는 쉽지 않다. 가해자인 그 친권자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앞서 규희, 규철이네 가정의 경우처럼 친권을 가진 아버지가 일단 동의한 내용을 번복해 시설에 맡겨진 아이를 데려오겠다고 나서면 아동보호기관으로서는 법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다.

법적으로 친권을 제한하거나 상실시키는 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민법과 아동복지법, 가정폭력특례법 등에는 가족을 제외하고 친권상실의 선고를 청구할 수 있는 권한을 검사와 시,도지사, 군수, 구청장 등 지자체장에게 주고 있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지자체장에게 요처하면 지자체장이 친권 제한을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

문제는 상당수 지자체장들이 친권제한 청구를 꺼리기 때문에 친권제한과 상실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는데 있다. 이지미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교육홍보팀장은 "일부 지역의 경우 친권 제한 청구에 적극적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특히 서울시의 경우 친권제한 청구에 소극적인 편"이라며 "아무래도 '자식은 부모가 키워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보니 지자체가 나서기가 부담스럽고, 또 친권제한 이후 부모와 고소, 고발 등의 분쟁이 생길까 두려워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관계 기관의 소극적인 조치는 높은 재학대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2010년의 경우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개입한 이후 다시 학대가 발생한 사례는 총 503건으로 전체 학대 피해 아동 10명 중 1명 꼴로 일어난다.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은 "학대 행위자에 대한 교정, 또 친권자의 권리 제한·상실 등의 조치를 강화하지 않고는 학대 재발을 근본적으로 예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러한 지적에 따라 내년 8월부터 시행되는 아동복지법 개정안에서는 아동전문기관장이 직접 법원에 친권제한, 친권상실 청구를 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기관장이 검사나 지자체장에게 친권제한 조치를 청구하고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30일 이내에 직접 법원에 청구할 수 있도록 개정됐다. 장화정 관장은 "친권제한 조치의 필요성을 가장 잘 판단할 수 있는 관계기관에서 맡게 되어 보다 강력한 조치가 취해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부산 경남정보대학 디지털디자인계열 황슬기 학생이 지난 2009년 제35회 부산미술대전 디자인 부문에서 대상을 받은 '아동학대'를 주제로 한 포스터. ⓒ뉴시스

"고소·고발 조치 낮아…아동학대 특별법 필요하다"

중앙아동전문기관의 '2010 전국아동학대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아동학대로 판정된 5657건 가운데 고소·고발된 경우는 290건 으로 5.1%에 그쳤다. 이중에서도 법원의 판결까지 받은 사례는 160건으로 아동학대 사례 중 법원 판결을 받은 경우는 단 3%에 불과했다.

또 판결을 받더라도 '우발적 범행'이라거나 '아이를 양육해야 한다'는 이유로 감형하거나 선고유예, 집행유예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지난 2월 서울 광진구에서 3살 아이를 폭행, 사망케하고 시체를 쓰레기통에 유기한 남성은 징역 5년을, 그 부인은 다른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이유로 기소유예 결정을 받았다. 장화정 중앙아동전문기관 관장은 "아동학대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거의 이뤄지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학계 등에서는 아동학대에 대한 처벌 규정 강화를 요구했으나 지난 6월 개정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장화정 관장은 "개정된 아동복지법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 처벌 강화가 되지 않은 것"이라며 "논의 과정에서 아동학대 사건 처리절차를 마련하고 학대 행위자에 대한 교정, 상담, 치료 등의 내용을 담은 '아동학대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대를 이뤘다"고 말했다.

장 관장은 "이 특례법에는 아동학대 범죄자는 아동 관련 직종에 취업을 제한하고 자격 상실을 규정하는 내용도 들어가야 할 것"이라며 "이러한 특례법의 제정은 다음 국회가 해야할 몫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위험 가정을 관리하고 지역 사회 복지를 탄탄하게 하면…"

한편 아동보호 정책 자체가 사후 대응와 처벌보다는 예방으로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윤혜미 교수는 "현재의 시스템은 아동학대 사건이 일어난 이후 사후 조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아동학대 피해 아동을 구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번 학대를 받은 아동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되기 때문에 미리 예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영국의 경우 2000년 학대로 아동이 사망하는 빅토리아 크림비 사건이 발생하자 아동학대 사망사건에 '무관심'으로 일관한 한국과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당시 의회는 적극적인 조사활동을 벌였고 토니 블레어 총리는 '10개월 동안 최소한 10회의 위기 개입 시점이 있었으나 놓쳤다'며 기존의 아동보호제도를 '실패'로 규정했다. 결국 영국은 2004년 아동법을 전면 개정했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영국 등의 경우 아동학대 예방 사업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면서 "지역사회의 꼼꼼한 모니터링을 통해 아동학대 가능성이 높은 가정을 찾아 집중적인 지원을 통해 관리하고, 동시에 지역사회의 교육-의료-보육 등 복지 서비스의 질을 높여 아이들의 안전을 강화하는 등 두가지 방법이 병행된다"고 말했다.

장화정 관장은 "아동학대 예방과 조기 발견, 치료를 위한 지역사회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며 "아동보호 역시 관료 중심적인 시스템에서 지역사회의 각 기관과 전문가들이 유기적으로 연계된 아동학대 예방체계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린이집 아동학대, 예방하는 방법은?"

올해 여론을 들끓게 한 뉴스 중 하나는 어린이집과 같은 보육시설 내에서의 아동학대 사건이었다. 지난해 12월 인천 남구의 한 어린이집에서 원장 등이 아이들을 손찌검하고 폭언을 퍼붓는 CCTV 화면이 공개되면서 여론이 들끓었고 그 이후에도 영유아가 발로 차이거나 뺨을 맞고 발가벗겨진 채 건물 밖으로 내쫓기는 등 충격적인 사건들이 이어졌다.

지난 29일에도 한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어린이집 원장에게 보육교사 충원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한데 대한 불만을 품고 화풀이 삼아 한살배기 어린아이를 밀치는 등 때린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는 사건이 있었다.

'2010 전국아동학대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가정 내에서의 아동학대 사건이 87.9%로 대다수를 차지하고 어린이집에서의 사건은 1.8%에 불과하다. 그러나 보육시설 종사자들은 아동들을 학대로부터 보호해야할 아동학대 신고의무자라는 점에서 문제는 심각하다.

보육업계에서는 지나친 부담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아동학대 사건이 재발하는 원인으로 지적한다. 통계에 따르면 보육교사는 하루에 9시간 반 가량 근무하고 1인당 담당해야 할 아동의 수는 10명이 넘는 경우가 많다. 가정내 아동학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보육자의 스트레스는 아동에게 전가되기 쉽다.

백선희 서울신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보육 교사들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가 어린이집 내 아동학대를 일으키는 원인인 것은 분명하다"며 "그러나 그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그 무엇보다 우선하는 아동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은 정당화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백선희 교수는 "어린이집에 있는 아이들은 더 어리고, 특히 영아일수록 자기 표현도, 방어·대처 능력이 없어 특히 보호받아야 한다"면서 "어린이집은 보육교사와 원장 외에 접근할 수 없는 폐쇄적인 공간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여론이 들끓자 보건복지부는 지난 20일 폭언, 체벌, 폭행 등 아동학대 행위 금지 규정을 신설하고, 이를 위반한 사람은 어린이집에서 영구히 종사하지 못하도록 하고 그 시설도 운영 정지 또는 폐쇄 처분하도록 하는 처벌 방침을 발표했다. 아동학대가 발생한 어린이집에 대해서는 각종 정부 보조금 등의 지원도 중단하기로 했다.

그러나 사후적인 처벌 강화 대책 만큼이나 예방 대책도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백 교수는 "이미 보육교사들은 아동학대 예방교육을 의무적으로 받도록 되어 있지만 대부분 일회성 교육에 그친다"면서 "사례도 여러가지인데다 어느 행동까지가 학대인지를 판별하기에 애매한 경우도 많아 한번의 교육으로 해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서 보육교사와 원장들의 아동학대 민감성을 키우고, 아동학대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면서 "이에 더해 보건복지부 등 보육시설을 담당하는 행정기관과 아동보호전문기관 등의 협력, 교류를 통해 사례 발견시에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사전에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기획에 포함된 사례는 각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 등이 언론에 공개한 것으로, 각 아동의 인권 보호 등을 위해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또 당사자가 특정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구체적인 지역과 해당 센터 이름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아동학대 문제는 가해자와 보호자가 일치하는 특수성 때문에 당사자의 동의를 얻기 어려워, 보다 다양한 사례를 기사에 인용하는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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