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김 위원장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19일 이후 현재까지 이에 대한 공식 논평을 내놓고 있지 않은 상태다. '박근혜 비대위' 출범 첫 날인 이날 이 문제에 대한 긴급회의를 열었지만, 조의 문제에 대해서는 신중론이 우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비대위 첫 회의에선…'조의'보다 '안보'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등 야당은 당 차원에서 조의를 표한 것과 달리, 한나라당은 '안보'를 강조했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모든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0.1%의 가능성까지 대비할 수 있는 물샐 틈 없는 대책"을 촉구했고, 회의 결과 역시 정부에 대한 철저한 대책 요구에 국한됐다. 안보에 대한 원칙적인 수준의 입장만 밝힌 채 보수 지지층을 의식한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하루 뒤인 20일까지 계속됐다. 황우여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 전 기자들의 질문에 "여당이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며 말을 아꼈고, 정작 회의에선 정치권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조의 문제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MB 대북정책 차별화' 강조하더니…공은 다시 청와대에?
한나라당의 이런 '속앓이'는 전날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발언에서도 그대로 묻어났다. 박 비대위원장은 취임 직후 조의 여부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런 문제는 국가와 정부 차원에서 논의를 할 일"이라며 공을 청와대에 넘겼다. '이명박 정부와의 차별화'를 내걸며 당 전면에 나선 그가 정치권 최대 화두로 떠오른 조의 문제를 정부에 미룬 것이다.
▲ 지난 2002년 방북해 김정일 위원장과 단독회동을 가진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모습(사진 왼쪽). ⓒ프레시안 자료사진 |
특히 박 비대위원장은 한나라당 현역의원 중 유일하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단독회동을 가진 정치인이기도 하다. 남북관계 전문가인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프레시안>이 주최한 좌담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조의 표명을) 하기 어렵다면, 이 대통령과 선을 그을 필요도 있고 비대위원장으로서 쇄신과 혁신을 해야하는 박근혜 위원장이 한 마디 할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지적했다. 한마디 조의 표명이 경색된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지렛대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박근혜, 진정한 당 쇄신·MB 차별화 이루려면…
야당의 요구도 빗발치고 있다. 민주통합당 노영민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조문에는 상주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는 애도의 조문도 있지만 외교적인 조문도 있는 법"이라고 지적했고, 김동철 외교통상통일위원회 간사 역시 "박근혜 비대위원장을 예방해 조문에 관한 의견을 타진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 접근이 있었다"며 "조문과 관련해 이분법적 태도는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런 의견은 당내에서도 제기됐다. 원희룡 의원은 19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김정일 사망 조의 표명은 평가와 관계없다"며 "북한에 대한 주도적 관리능력을 갖추기 위한 것이고, 북한을 중국과 미국의 관리상대로 넘기지 않기 위한 것"이라며 조의 표명은 외교의 당연한 절차임을 강조했다.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인 1994년 '조문 파동'을 교훈으로 삼아야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시 이부영 민주당 의원이 외통위 회의에서 '정부가 조문할 용의가 있느냐'고 질의하자 보수언론과 극우인사들이 이를 맹렬히 질타했고, 결국 김영삼 정부가 조문단의 방북과 조의 표명을 사법처리하겠다고 나서면서 '조문 파동'으로까지 불거진 것이다.
노영민 부대표는 "당시 우리의 옹졸한 태도에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조차 유감스럽게 생각했고 북한은 외교역량을 발휘해 네 나라를 자기 페이스로 끌어들이는 조문외교의 성과를 거뒀다"면서 "이 파동 후 북은 남을 한반도 문제해결의 당사자에서 철저히 배제시키면서 미국과 직접 현안 해결을 시도했다"며 94년 '조문 파동'을 이번 일의 교훈으로 삼자고 주장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