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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다국적 제약자본의 탐욕 때문에 죽고 싶지 않다"

[인권오름] "생명을 팔아넘긴 한미FTA"

2007년 3월, 대학로에서 보건의료단체들이 연합해 당시 막바지에 이른 한미 FTA 협상을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그때 난 모든 에이즈 치료제에 내성이 생겨 최악의 건강상태였고, 제대로 걷지도 못해 지팡이를 짚고 집회 무대에 발언을 하러 올라섰다.

그 자리에서 난 살고 싶다고 외쳤다. 다국적 제약자본의 탐욕 때문에 죽고 싶지 않다고 외쳤다. 그 때 내가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최악의 몸 상태였던 이유는, 내게 꼭 필요한 '푸제온'이란 에이즈 치료제를 다국적 제약회사 로슈가 비싼 약값을 요구하며 공급을 거부한 횡포 때문이었다.

스위스계 제약사 로슈는 2004년 '푸제온'을 국내에 시판하기 위해 식약청의 허가를 받았고, 보건복지부가 1년에 1800만 원의 약값을 책정해 보험등재가 되었다. 하지만 로슈는 스위스 약값 기준으로 1년에 약 3200만 원의 약값을 요구하며 푸제온의 공급을 거부했다. 그러더니 로슈는 2005년과 2007년에 다시 약값 인상 신청을 하여 결국에는 1년에 2200만 원을 요구했고, 아직도 푸제온은 건강보험을 통해 공급되지 않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다국적 제약자본의 탐욕 때문에 죽고 싶지 않다

2011년 11월 한미 FTA 비준 저지 집회가 열린 시청광장에 모인 수 천 명 앞에서 난 다시 한 번 외쳤다. 한미 FTA는 에이즈 환자와 약을 먹는 모든 환자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공포 그 자체라고.

그러나 많은 국민들이 우려했던 한미 FTA 비준안을 한나라당이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권은 비싼 특허 약을 먹어야만 하는 모든 환자들의 생명을 이윤밖에 모르는 다국적 제약자본에 팔아넘겼다. 한미 FTA가 체결되기 전에도 로슈처럼 비싼 약값을 요구하며 공급을 거부하는 횡포에 한국 정부는 어떤 대책도 제도도 없어 이미 통제 불능 상태였다.

이제 한미 FTA의 독소조항 중 하나인 허가-특허 연계제도로 특허는 더 강화되고 독점도 연장되어 다국적 제약자본의 횡포는 더 심해 질 것이다. 그리고 허가-특허 연계 제도로 인해 그나마 싸게 먹을 수 있었던 복제약도 만들기 어려워진다.

기존에는 특허가 끝나면 식약청의 유효성, 안전성 심사를 거쳐 허가를 받아 복제약을 출시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허가-특허 연계 제도는 특허를 가지고 있는 오리지널 제약사의 허락까지 받아야 한다. 오리지널 제약사가 허락해주지 않으면 복제약을 출시하지 못하고 소송을 진행해야 한다. 소송이 진행되는 몇 년의 기간 동안 특허는 연장된다. 소송에서 오리지널 제약사가 지더라도 소송기간 동안 비싼 특허 약값을 물어야 하는 환자나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배상을 받을 수도 없다.

특허를 가지고 있는 다국적 제약사는 복제약이 만들어지면 약값이 내려가니 갖가지 이유를 들어 허락을 안 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허락을 해주지 않으면 자신들의 비싼 특허 약을 더 오랫동안 팔아먹을 수 있고, 독점기간도 연장되니 다국적 제약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또한, 한미 FTA에는 정부가 책정해 준 약값이 맘에 들지 않으면 다국적 제약사가 이의 신청 할 수 있는 조항도 있다. 이 조항에 의해 독립적 이의 신청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이 독립적 이의신청기구에 정부는 빠지게 되어있고, 다국적 제약사는 들어가게 되어있다. 이 독립적 이의 신청기구에 정부가 빠진다면 당연히 이익 집단인 다국적 제약사도 빠져야 진정한 독립적 이의 신청기구이다. 이름만 독립적 이의 신청기구일 뿐인 이 기구는 다국적 제약사의 약값인상 신청기구가 될 것이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환자가 피해보는 일은 없다?

정부는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돈 벌어먹는 다국적 제약자본에게 더 강한 권한을 주고는 환자가 피해보는 일은 없을 거라고 장담한다. 한미 FTA가 날치기 통과된 다음 날 보건복지부는 브리핑을 통해 환자가 피해보는 일도 없고, 약값인상도 별로 없을 거라고 밝혔다. 정말 눈 가리고 아웅 한다. 이미 약값은 인상 될 대로 되어있다. 다국적 제약사들이 거의 다 특허로 독점하고 있는 에이즈 치료제는 1차 치료제가 한 달에 백만 원이 넘고, 2차 치료제는 2백만 원 가까이, 3차 치료제는 4백만 원이 넘는다.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은 한 달에 300만 원, 글리벡에 내성이 생긴 환자가 먹어야 하는 '스프라이셀'은 한 달에 400~500만 원이다. 어디 이뿐인가. 항암제, 중증의 당뇨 치료제 등 어지간한 약들은 다국적 제약사의 비싼 특허 약들이다. 다국적 제약사들이 요구하는 특허 약값은 국민 소득 4만 달러인 선진 7개국(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스위스, 이탈리아)의 약값이다. 국민 소득 2만 달러인 우리에게 소득 수준 4만 달러의 약값을 요구하고, 받아주지 않으면 공급을 거부하는 횡포를 부리는 것이다.

또한 정부는 허가-특허 연계 제도로 국내 제약사가 복제약을 만들기 어려워져 피해를 보는 문제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허가-특허제도로 특허가 연장되어 기존의 20년에서 더 오래 동안 비싼 특허 약값을 건강보험에서 부담해야 하는 문제는 함구한다. 이 문제는 건강보험 가입자인 모든 국민에게 피해가 가는 심각한 문제임에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건강보험에서 비싼 특허 약값 더 오래 동안 부담하다 적자가 심해지면 환자에게 본인 부담을 늘리거나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미 FTA,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 한미 FTA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닌 아시아 전역에 영향을 끼치는 문제가 되었다.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 아시아 지역과의 다자간 무역협정에서도 우리에게 강요한 특허 강화가 강요될 것이다. 그리고 인도가 EU와 내년 2월 협상 체결을 목표로 협상 중인 FTA도 전 세계 에이즈 감염인의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일이다.

인도는 세계의 약국이라 불릴 만큼 값싼 복제약을 많이 수출한다. 특히 에이즈 치료제의 경우 특허 약의 5~10%밖에 안 되는 가격이다. 개발도상국의 에이즈 감염인 90%가 인도의 값싼 복제약을 먹고 있고, 전 세계 50%의 에이즈 감염인이 인도의 약을 먹고 있다. 인도가 EU와 FTA를 체결하면 자료독점권과 지적재산권 집행조치로 값싼 복제약을 만들기 어려워진다. 인도의 값싼 약을 먹고 있는 개발도상국 대부분의 에이즈 감염인들은 국제 지원으로 어렵게 먹고 있는 실정이다.

한미 FTA가 통과 된 후 언론들은 분석기사들을 쏟아냈다. 기사를 아무리 봐도 한미 FTA로 이득을 보는 건 1%의 재벌과 초국적 기업들뿐이고, 피해를 보는 건 환자와 농민, 중소상인 등의 서민들이다. 한미 FTA로 피해보는 업종에 지원하는 대책도 결국 1%의 재벌과 초국적 제약기업 더 배불리기 위해 국민 혈세로 지원하는 꼴이다. 환자들의 생명권을 팔아넘긴 한미 FTA와 전 세계 에이즈 감염인의 생명을 위협하는 모든 FTA는 폐기해야 한다.

(이 글은 "생명을 팔아넘긴 한미 FTA, 폐기해야"라는 제목으로 주간인권신문 <인권오름>에도 실렸습니다. <인권오름> 기사들은 정보공유라이선스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정보공유라이선스에 대해 알려면, http://www.freeuse.or.kr 을 찾아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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