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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장만 하려고 열심히 일했더니 '간첩활동'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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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장만 하려고 열심히 일했더니 '간첩활동' 이라고?"

'국가보안법 피해자 집담회'…"우리는 이용당하고 있다"

"결혼하고 '몇년 안에 집 장만하자'하는 계획을 세우고 정말 열심히 일했다. 몸이 아파서 임신이 안될 정도로 12시간 씩 일했다. 그런데 이걸 두고 국정원에서는 '(북에서) 조직의 자금을 못 대주니까 스스로 조직 자금을 만들려고 가게를 했다'고 말하더라. 국정원이 우리의 삶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에 너무 화가 났다. 지난 20~30년 간 살아온 삶을 모두 부정해야 우리를 놔줄 건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 ('왕재산 사건' 구속자 부인)

국가보안법 피해자들이 모여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서로 위로하는 집담회가 29일 저녁 서울 서대문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EZE홀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 참여한 이들은 최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조사와 재판을 받고 있거나 최근 재판이 끝난 이들이다. 구속, 수감되어 참석할 수 없는 이들은 대신 가족들이 참석했다.

이 자리를 주최한 박래군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집행위원장은 "2011년 공안기관들이 과거 사안에서부터 개인의 SNS에 이르기까지 국가보안법을 남용하고 있어서 피해자들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또 심리적으로 매우 위축된 상황"이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자리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욕설과 협박은 기본, 묵비권 행사하면 하루종일 묶어놓기도"

이날 집담회에는 소위 '왕재산 사건'으로 구속기소된 5명 중 3명의 아내가 나왔다. 여전히 충격이 역력한 표정의 이들은 이야기 중 자주 눈믈을 흘리고 울먹였다. 현재 검찰과 국정원은 '간첩 활동' 혐의로 5명을 구속기소하고 다른 5명은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중이다.

이날 나온 피해자 가족에 따르면 현재 국가정보원이 이 사건과 관련해 조사 중인 사람은 인천 지역에서만 100명을 넘는다고 한다. 현재 인천에 살고 있는 김모 씨는 "남편의 지인이나 알지못하는 사람에게 '잠깐 보면 된다'는 식으로 연락해 '누구의 간첩활동 혐의에 대해 아는대로 말하라'고 조사하는 식"이라며 "말은 참고인 조사지만 사실상 거의 피의자 수준의 조사를 받는 것으로 안다. 이들도 가족들이 느낀 국가권력에 대한 공포감과 비슷한 수준의 공포를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조사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기본적으로 욕하고 '니 마누라도 잡아오겠다'고 협박 하고 묵비권을 행사하면 하루종일 수갑채우고 포승줄로 묶어놓고, 단식 투쟁 하는 사람 앞에서 피자 펼쳐놓는 등 정신적 스트레스를 많이 주는 것 같다"며 "다들 '많이 나아지지 않았느냐'고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한모 씨는 "초반에는 '친정 아버지 찾아가 조사하겠다'는 협박도 많이 받았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아버지를 조사하겠다는 말 만으로 '쓰러지시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 너무 많이 떨었다. 지금 생각하면 겁먹었던게 분할 정도"라며 "다른 것보다 '이용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고 말했다.

엄모 씨는 "저는 정말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을 꺼내고는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남편은 정말 평범하게 대학 졸업해서 대기업에 취업했다가 그만두고 자기 사업을 한 사람"이라며 "어이 없었던 것이 무역회사를 하다보니 사업 와중에 다닌 출장을 두고 '외국에서 활동을 했다'는 식의 기록으로 나오더라"고 말했다.

그는 "과연 언제부터 감시를 당해온 것일까. 이 문제가 끝나더라도 계속 감시당하고 있다는 기분은 평생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며 "그리고 설령 이 재판이 끝나고 '무죄'로 판명나더라도 우리가 잃어버린 이 시간은 보상받지 못하는 것 아니냐. 일하는 것 외에는 모두 아이에게 투자했던 사람이 아이들과 만날 수 없는 공백 기간이 이렇게 길어졌는데. 고립된 이 시간은 돌아오거나 치유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 29일 서울 서대문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EZE홀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피해자 집담회. ⓒ프레시안(채은하)

"북한 계정 리트윗했다고 압수수색…<진보집권플랜>도 압수해가"

사회당 당원으로 사진관을 운영하는 박정근 씨는 북한측 트위터를 리트윗했다는 이유로 집과 가게를 압수수색 당했고 경기경찰청 보안수사대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조사받고 있다. 사회당 서울시당 연대사업국 활동을 하면서 두리반과 포이동 사태에서 활동한 그는 북한에서 개설한 '우리민족끼리' 등의 트위터 내용을 리트윗했다.

박 씨는 "압수수색이 있던 9월 21일 당일 10시 반 쯤 사진관 문을 열었더니 양복 입은 사람 8명 정도 가 들어오더라"며 "손님인줄 알고 맞았더니 국가보안법 혐의로 왔다고 가게를 뒤지기 시작했고 집도 압수수색했다. 압수목록에는 황당한게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조국 교수의 대담집인 <진보집권플랜>이나 두리반, 포이동 회의록, 사회당 입당 원서, 통일부 도서관에서 빌린 <사회주의문화건설>도 모두 압수해갔다"고 말했다.

서울 암사동에 사는 그는 "조사 내용은 거의 사상검증이더라. 왜 내가 경찰에 가서 북한 비판을 해야 하나, 표현의 자유 문제가 되다 보니 계속 화가 났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지금 신경안정제와 항우울제를 먹고 있다"며 "사는 집과 일하는 곳을 압수수색 받다 보니 집에 가면 잠을 못자고 가게에 가면 일을 못하는 상황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박정근 씨를 지지하는 그의 친구들은 오는 1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는 문화제 '뉴타운간첩파티'를 열 예정이다. 박정근 씨는 "사실 우리가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싸워야 하는 것 같다"며 "국가보안법과 같이 우스운 법에 1분 1초더 더 내 시간을 들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학생회 활동으로 '간첩' 혐의…엄마 못만나는 20개월 젖먹이는"

김은혜 씨는 지난 10월 14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3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혐의는 한총련 조국통일위원회 정책실장이었던 2003년 당시 '남북대학생 상봉 모임' 및 '남북 대학생 대표자 회의'에서 한총련 산하 대학의 학생회 선거 결과를 알려줬다는 것. 검찰은 김 씨가 "이적단체에 가입해 남북대학생 교류사업을 빙자해 회합통신 및 특수 잠입. 목적수행을 했다"는 내용으로 기소하고 징역 8년은 구형했었다.

이날 모임에 참석한 남편 김모 씨는 "이전 정권에서는 남북대학생 교류 사업이 인정이 됐었고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며 "그런데 정권이 바뀌자 간첩죄를 포괄 적용했다. 이렇게 따진다면 과연 간첩 혐의가 적용되지 않을 부분이 어디까지인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총련 간부로서 연말 학생회 선거 결과를 정리하는 것은 본연의 일에 해당하는 것인데 그걸 과연 지령을 받고 목적을 수행했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또 어느 대학의 총학생회장이 누가 됐다는 것이 왜 간첩죄에 해당하는 정보인지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실 다른 것보다 이제 20개월 된 아기가 가장 걱정스럽다. 확실히 엄마가 없어지고 난 다음에 변화가 있다. 울거나 그렇지는 않지만 늘 시무룩하다. 아무래도 결핍 증세가 있는 것 같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요즘은 불만 끄면 자지러지게 운다. 불을 끄면 잠을 자야한다는 것을 알아서 그런 것 같다. 아기를 상담 받아보려고 신청해둔 상태다."

그는 "12월에 2심 재판을 시작하는데 국정원이나 검찰에서는 '학생운동가로서는 첫 간첩'이라고 말한다고 들었다"면서 "이는 만에 하나 유죄로 나올 경우 '학생운동 간부 중에 간첩이 있다'는 식으로 나와 학생운동 자체에 큰 여파를 미칠 것 같다"고 말했다.

"국가보안법 뿐 아니라 '정보정치' 맛들인 정보기관 문제"

2007년 6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지난 10월 13일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사진작가 이시우 씨 부부도 참석했다. 이 씨는 "사건이 끝나고 나자 도망가고 싶은 마음밖에 들지 않더라. 판결의 성패를 떠나서 국가보안법에 연루가 되는 순간 큰 짐을 안고 갈 수밖에 없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이길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 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다부지게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래군 집행위원장은 "국가보안법과의 싸움은 법을 폐지하자는 싸움이기도 하지만 공안기관과의 싸움이기도 하다"면서 "이명박 정권 들어 정보 정치가 부활하면서 국정원도 기무사도 기고만장해져서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는데 거침이 없다. 최근엔 선거를 앞두고 공안정국을 만들려 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박래군 위원장은 "노무현 정부때는 사문화됐다고 느낄 정도로 국가보안법 사건도 줄고 엄격한 적용이 되고 그랬는데 이 정부를 보면서 그게 착각이었다는 걸,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지 않는 한 언제든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며 "다음 정부에서는 폐지할 수 있도록 다시 싸움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이광철 변호사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3가지 정도의 차원에서 가능할 것같다"며 △국가보안법 폐지 △국정원 개혁 △사생활 보호를 무력화하는 도, 감청의 문제 해결 등을 과제로 꼽았다.

그는 "국정원 개혁은 정권이 바뀌면 수사권을 폐지하고 해외 정보수집만 맡기는 식의 변화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며 "그러나 도감청 문제는 일단 기술적인 이해가 부족하고 관심을 가진 사람이 너무 적은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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