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을 앞두고 위기감에 휩싸인 한나라당이 지도부 교체를 놓고 격론을 벌이고 있다.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 완패 후 "이대로라면 총선도 필패"라는 인식이 팽배한데다, '당 해체 수준의 쇄신' 요구까지 나온 상황에서 홍준표 대표가 '박근혜 조기 등판'을 전제로 대표직 사임 의사까지 내비친 것.
홍준표 대표가 29일 한나라당 '쇄신 연찬회'에서 "당내 대다수의 뜻이 박근혜 전 대표가 당 대표로 복귀해 쇄신과 총선을 지휘해야 한다고 결정된다면 당 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한 뒤 회의장을 퇴장하자, 한나라당은 당혹감 속에 찬반 격론을 이어가고 있다.
홍준표의 '배수진'
홍 대표의 이 같은 선언은 최근 당내 일각에서 제기된 지도부 퇴진론에 당 대표직을 걸고 정면 승부를 벌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스스로 '사퇴'까지 언급하면서 일각의 퇴진 요구를 잠재우고, 더 이상의 책임 공방을 종식시키는 정면 돌파를 택한 것이다.
▲ 홍준표 대표(왼쪽), 박근혜 전 대표. ⓒ뉴시스 |
다만 홍 대표가 자신의 퇴진을 박근혜 전 대표의 '조기 등판'과 연계시켰다는 점에서, 홍 대표의 이 같은 '조건부 사퇴'는 사실상 대표직 퇴임 의사가 없음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그간 친박(친박근혜) 진영은 당의 위기 때마다 제기된 박 전 대표의 조기 등판 요구를 완강히 거부해 왔다. 그간 '여당 속 야당'으로 이명박 정부와 거리를 둬온 박 전 대표 입장에서야 침몰해가는 한나라당에 뛰어들어 흙탕물을 뒤집어쓰는 대신, 대권을 향한 길을 독자적으로 가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안철수는 아웃복싱을 하고 있는데, 박근혜 전 대표는 인파이팅이나 하라는 것이냐"(윤상현 의원)는 친박계의 볼멘소리는 이 때문이다.
박근혜의 '몸 사리기'
홍 대표의 배수진과 달리, 친박계 의원들은 이날도 '조기 등판' 요구를 일축하며 몸을 사리는 모습을 보였다. 당사자인 박근혜 전 대표는 아예 연찬회에 참석하지 않아 또 다른 여권 잠룡(潛龍)인 정몽준 의원으로부터 "국회의원이라면…"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친박계 윤상현 의원은 비공개로 진행된 의원총회 도중 기자간담회를 자처해 "박근혜 전 대표의 전면 등장은 시기나 내용 면에서 적절치 않다. 박 전 대표가 조기 등판해 당 대표를 맡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적극적인 방어에 나섰다. 친박계인 이혜훈 의원 역시 "박 전 대표가 안하겠다는데 얘기해 봐야 뭐하느냐"고 일축했다.
친박계 의원들은 홍준표 대표가 사퇴의 전제조건으로 박 전 대표의 등판을 요구한 만큼, 지도부 사퇴 역시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친박 유기준 의원은 "17대 국회 당시 열린우리당이 선거에서 패할 때마다 의장을 바꿨지만 결국 폐업했다"며 "그간의 잘못을 인정하고 잘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면 되지, 대표나 당명을 바꾼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친박계가 주장하고 있는 것은 '정책 쇄신'이다. 정책 쇄신 수준으로 쇄신 논의를 마무리해 지도부 사퇴에 따른 조기 등판 요구를 피하고, 최근 박 전 대표가 선보이는 정책 행보와도 궤를 같이할 수 있기 때문.
이 같은 주장에 쇄신파의 좌장 격인 정두언 의원이 직격탄을 날렸다. 정 의원은 "정책 쇄신은 할 만큼 했다. 추가감세도 철회했고 각종 복지정책과 버핏세, 비정규직 대책도 내놨다"며 "그러나 한나라당이 바뀌었다고 국민들이 생각하나? 아니다"라고 '정책 쇄신론'을 일축했다.
이어 그는 "총선에서 지면 박근혜 전 대표는 책임에서 자유롭겠느냐. 절대 아니다. 벌써 안철수 교수와 지지율이 역전됐다"며 "박 전 대표는 대선 전 총선에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총선에서 지면 대선도 어렵다"며 거듭 박 전 대표의 적극적 행보를 주문했다.
정 의원은 유승민 최고위원 등 친박계에서 제기한 '지도부-공천권 분리론'에 대해서도 "지도부에게 책임은 지우되 권한은 안준다는 주장"이라며 "권한은 내가(친박계) 다 갖고 책임 안 지겠다는 것 아니냐"며 친박계 의원들을 정면을 겨냥했다. 홍준표 체제 지속을 요구하면서 공천권 분리를 요구하는 친박계의 이중적인 태도를 꼬집은 것.
홍준표 '사퇴 카드', 친박계와의 '윈-윈' 게임으로 마무리될 듯
이날 비공개 회의에선 지도부 총사퇴 및 박근혜 조기 등판을 주장하는 쇄신파 일부와 이에 반대하는 친박계 의원들이 팽팽히 맞서, 그간 일정 정도 같은 목소리를 내온 친박계와 쇄신파의 '연합 전선' 역시 박 전 대표의 거취 문제로 시효 소멸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선이 가까워 오면서 당내 '신주류'로 부상한 친박계의 주장이 힘을 얻고 있어, 결국 이날 열린 끝장토론은 '현상 유지'로 결론 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한편 이날 연찬회엔 당 소속 국회의원 156명과 원외 당협위원장 61명 등 총 217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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