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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노동법 날치기로 YS정권 몰락했다"더니…

[기자의 눈] 사상 초유의 밀실처리, '한미FTA 살생부' 두려웠나

"결국 취재는 다 했잖아요?"

22일 한나라당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날치기 직후, 왜 본회의장 취재를 막았느냐는 질문에 대한 한나라당 김기현 대변인의 답변이다.

그의 말대로, 취재는 가까스로 이뤄졌다. 그러나 이는 야당 당직자들이 유리창을 깨고 굳게 닫힌 방청석 출입문의 자물쇠를 부수고 나서야 가능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의원총회 도중 본회의장으로 몰려간 오후 3시부터, 국회 경위들은 본회의장의 모든 출입문을 봉쇄한 채 취재진의 출입을 철저히 막았다. 본회의장이 내려다보이는 4층 방청석의 취재진 좌석도 마찬가지였다. 본회의 생방송을 위해 설치된 회의장 내부의 폐쇄회로텔레비전(CCTV)도 꺼져 있었다. 철저한 '비공개' 회의였다.

▲ 한나라당이 한미FTA 비준안을 사상 초유의 날치기로 통과시킨 22일, 국회는 철옹성을 방불케 했다. 국회의장이 경호권이 발동됨에 따라 국회 정문 앞은 물론 본회의장의 출입도 철저히 통제됐다. ⓒ뉴시스

기자들, 깨진 유리창 사이로 가까스로 입실…바닥엔 피가 '뚝뚝'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의 '최루탄 투척' 직후인 오후 4시15분. 4층 방청석이 '뚫렸다'는 소식에 본회의장 앞에서 대기하던 취재진 50여 명이 방청석 입구로 몰려들었다. 일부 민주노동당 당직자들이 망치로 출입문 유리창을 깨자, 대기하고 있던 국회 경위들은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고 막아섰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도 출입문은 열리지 않았고, 결국 깨진 유리창 사이로 기자들이 한 명 한 명 들어가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벌어졌다. 바닥엔 깨진 유리 파편과 함께 손을 다친 당직자의 피가 뚝뚝 떨어져 있었다.

한바탕 소동으로 가까스로 본회의장 내 취재진이 진입했지만, 정의화 국회부의장은 곧바로 '본회의 비공개 진행 동의안'을 직권상정해 통과시켰다. 재석의원 167명 중 154명이 찬성했다. 회의가 비공개로 전환되면 본회의장 영상중계가 되지 않는 것을 물론, 영상회의록도 남지 않는다. 정 부의장은 "아무것도 두려운 것이 없다"고 했다.

국회법 75조는 '본회의는 공개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다만 "의장의 제의 또는 의원 10인 이상의 연서에 의한 동의로 본회의 의결이 있거나 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와 협의해 국가의 안전보장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한 때에는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원칙적으로 비공개 본회의는 표결 결과 역시 비공개에 부쳐진다. 어떤 의원이 찬성과 반대를 했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 굳게 닫힌 문 틈 사이로 본회의장 내부의 모습이 보인다. 이날 한나라당은 헌정 사상 최초로 국제통상조약을 비공개 처리했다. 원칙적으로 비공개 본회의는 표결 결과 역시 비공개에 부쳐진다. 어떤 의원이 찬성과 반대를 했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연합뉴스

앞서 한나라당은 지난 8월 성희롱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강용석 의원에 대한 제명안을 비공개 회의로 돌려 부결시킨 바 있다. 그 당시에도 '국회의원 감싸기'라는 비난 여론이 드셌지만, 한나라당이 "국가 중대사"라고 그토록 강조해온 국제 통상 조약을 비공개로 처리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다. 옛 신한국당이 1996년 노동법을 날치기 처리했을 때도, 신한국당 의원들이 성탄절 새벽 국회에 몰래 들어가 기습처리한 것일 뿐 본회의 의결을 통해 비공개로 회의를 한 것은 아니었다.

김기현 한나라당 대변인은 23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공개회의를 통해 카메라가 현장에 나오면 폭력사태가 악화될 우려가 있었다"며 비공개 회의 배경을 설명했다. 결국 비공개 회의는 국회법에 명시된 것처럼 "국가의 안전보장"을 위해서가 아닌, '국회의원의 안전보장'에 더 가까웠던 것이다.

한나라, '국가 안전보장' 아니라 '의원 안전보장' 위해 비공개 회의?

사실 한나라당은 용의주도하게 비공개 회의를 준비해왔다. '본회의 비공개 진행 동의안'이 의결되기 전부터, 본회의장은 물론 국회 본청의 모든 출입문이 폐쇄됐고 기자들의 취재조차 막았다. 본회의장의 상황이 그대로 생중계 될 경우, 여야간 격렬한 몸싸움이 노출되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기 때문이다.

어떤 의원이 찬성 표를 던지고, 어떤 의원이 반대표를 던졌는지 국민들에게 알려지는 것 역시 이들에겐 부담거리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간 한나라당 내에선 한미FTA 비준안 처리를 아예 '무기명 비밀투표'로 하자는 의견까지 심심찮게 제기됐었다.

정몽준 전 대표는 '몸싸움이 수반된 표결 시 19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당내 협상파의 표 이탈을 우려한 듯 "본회의 표결을 무기명 비밀투표로 하면 몸싸움을 피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이는 민주당 일부 협상파 의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대한민국이 통상 선진국으로 뻗어나가기 위한 국가 중대사"라던 한미FTA 비준을 비밀에 부치자는, 헌정 사상 유례없는 발상인 것이다.

▲ 한나라당이 한미FTA 비준안을 강행처리하던 22일 오후, 국회 본청 밖은 국회 안으로 진입하려는 야당 보좌진들과 경찰들이 격한 몸싸움을 벌였다. ⓒ연합뉴스

홍준표, '노동법 날치기의 추억' 기억한다면…

개회 4분만에 FTA 비준안을 처리한 홍준표 대표는 본회의장을 나선 후 쏟아지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은 채 국회를 떠났다. 그리고 그날 밤, 자신의 트위터에 한 마디의 소회를 남겼다. "국익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1년 전, 한나라당의 '예산안 날치기' 직후 홍 대표가 남겼던 말은 지금과는 다소 달랐다.

"12월 8일 본회의장 몸싸움을 보면서 나는 1996년 12월 25일 새벽, 날치기 노동법 기습처리를 생각했다. 당시 우리는 승리했다고 25일 아침 '양지탕'집에 가서 거사를 축하하고 축배를 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YS정권 몰락의 신호탄이었다. 그 이후로 바로 한보사건이 터지면서 YS정권은 몰락하고 IMF 금융위기가 초래되면서 우리는 50년 보수정권을 진보진영에게 넘겨줬다."

96년 '노동법 날치기' 이후 최악의 국회 날치기 사건으로 꼽히는 이번 한미FTA 비준안 처리를 보면서, 홍 대표가 1년 전 언급했던 '50년 보수정권의 미래'가 궁금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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