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 지역 우리 동네, 아스콘·레미콘 공장 웬 말이냐!"
어느 누구 이끌어줄 사람도 없고, 모든 것이 낯설고 어설프지만 이렇게라도 입장을 표현하는 것 외에는 별 다른 방법이 없다. 이곳에 'D아스콘산업'과 '(주)W레미콘'이 각각 공장 설립 허가 신청을 했기 때문이다.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 대화3리 1122-4번지 외 5필지와 1093-2번지 일대 9,990㎡와 4,900㎡ 면적에 레미콘과 아스콘 공장을 짓겠다는 것이다.
지난달 공장신설과 사업계획에 대한 승인 신청이 평창군에 제출됐고, 도시계획위원회의 개발행위 허가 심의를 앞두고 있다. 이 동네는 현재 다섯 가구 열두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덧개수'라는 작은 시골 마을이다.
▲ 집 앞 풍경. 산으로 둘러쌓여있고, 들어가는 길목엔 해바라기가 피어있고, 집 앞엔 개울이 흐른다. 원래 있던 옛날집을 허물고 작년에 새로 지은 집이다. ⓒ최은정 |
"꼭 여기에 공장이 들어와야 되는기래요?"
공장 신청 부지는 '보전관리지역'인 금당계곡과 터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청정 지역이다. 해발 700미터의 고지대 상류로 지역 주민들의 상수원 발원지이기도 하다. 마땅히 보호되어야 할 지역에 공장이 두 개씩이나 들어온다는 소리에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게 될까 염려하고 있다.
사람이 살고, 가축이 살고, 농작물이 자라는 마을에, 왜 공장이 들어와야만 하는지 주민들은 억울할 뿐이다. "꼭 여기에 공장이 들어와야 되는기래요?" 대부분 고령인 주민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방법을 잘 알지 못하고, 군청은 주민들의 동의를 묻지도 않는다.
덧개수 마을에 사는 다섯 가구의 집은 공장 신청 부지와 100~200미터 거리에 있다. 가장 가까운 두 집은 직선거리로 100미터도 채 되지 않는다. 덧개수와 2킬로미터 가량 떨어져 있는 아랫마을 사람들도 걱정스러운 건 마찬가지다. 좁은 2차선 도로 옆으로 20여 가구가 줄지어 있는데, 대형차량이 그 길을 통해야만 덧개수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아랫마을에는 덧개수에서 밭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많다.
부모님이 기르신 들깨밭. 농성 현장에서 만난 마을 할아버지 한 분은 "이 산골에 내세울 것이라고는 공기 좋고 물 좋은 것 밖에 없는데 그 마저 잃게 생겼다"라며 속상해 하셨다. 덧개수는 무, 배추, 양배추 등의 고랭지채소뿐만 아니라 양상추, 적채, 샐러리 등의 양채류와 고추 등의 과채류가 청정하게 생산되어 주민들의 주 소득원이 되고 있다. 이런 지역에 레미콘·아스콘 공장이 들어온다면 제조 과정에서 발생되는 분진과 비산먼지 등이 농작물에 침착해 농산물 품질저하로 이어지고, 이로 인해 판로가 막힐 수밖에 없다.
주민들 대부분은 이 고장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들로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 달리 떠날 곳도 없을뿐더러, 할 수 있는 일도 농사밖에 없다. 시위에 나온 주민 한 분은 "조상 대대로 물려 내려온 천혜의 삶의 터전을 잃고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설령 자리를 옮겨간들 무엇을 어떻게 해서 먹고 살라는 거냐"며 막막한 상황을 토로했다. 공장을 지으려는 기업에게는 그저 '토지'이겠지만 주민들에게는 포기할 수 없는 삶의 터전인 것이다.
포기할 수 없는 삶의 터전
이 동네에 레미콘·아스콘 공장이 들어오면서 생길 문제들은 너무나 많다. 그 중 물은 가장 큰 문제다. 유엔사회권위원회 일반논평 15 '물에 대한 권리'(2002)는 "물에 대한 권리는 인간적인 삶을 이끄는 데 필수적인 요소일 뿐 아니라 다른 인권들을 구체화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선결요건"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일반논평은 당사국이 물에 대한 권리를 존중, 보호, 실현할 의무가 있고, 특히 기업 등이 물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보호해야 하며, 제3자가 물에 대한 평등한 접근을 부정하거나 물을 오염시키고 불공평하게 추출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덧개수는 여름 우기를 제외하면 식수난이 심해 주민들이 서로 물을 절약하여 사용한다. 공장이 설립되면 대규모 지하수를 개발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용수 공급이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업체 측은 지하수를 굴착하여 사용하고 부족분은 금당계곡으로 넘어가는 터널 1킬로미터 전방에 용수 저장탱크를 설치하고 관로를 매설한 후 일부 부족한 용수는 급수차로 실어와 저장해놓고 사용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주변의 자연을 파괴하는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다.
또한 레미콘이나 아스콘을 제조하는 시설에는 오폐수를 담는 시설부터 차량을 씻는 시설까지 제법 큰 규모의 기본시설이 필요한데, 경사면이 심한 지역 여건상 약간의 강우에도 저류시설이 넘쳐 폐수가 유출되기 십상이다. 그렇게 되면 진입로에 위치한 아랫마을과 덧개수 지역은 물론 상수원 보호구역인 대화천까지 순식간에 시멘트 슬러지 및 폐유 등의 유해물질로 오염되고 말 것이다.
문제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레미콘 및 아스콘 공장의 기계를 가동할 때 생기는 휘발성 유기화합물, 골재를 운반하거나 쌓으면서 생기는 비산먼지 등은 대기오염의 원인이 될 것이고 주변 토양 지하수 및 하천까지 오염시킬 수 있다. 폐아스콘이나 레미콘슬러지의 처리 문제, 대형차량의 진출입으로 인한 도로 주변 마을의 소음과 먼지, 내리막길에서의 과속이나 차량 고장으로 발생할 수 있는 대형교통사고, 대형차량이 오갈 때 발생되는 진동으로 인한 도로 인접 주택들의 균열 가능성 등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가 우려된다.
또한 공장 가동으로 발생하는 각종 공해 물질은 건강을 해친다. 레미콘·아스콘 제조 과정에서 나오는 물질들은 암, 피부질환, 두통, 기관지염, 천식 등을 유발시킬 수 있다. 주민들의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우려가 있고, 스트레스 때문에 삶의 질이 황폐화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처럼 공장이 설립되면 주민들의 생존권은 물론, 건강권이나 환경권 모두 박탈당하게 될 것이다. 마을 입구의 도로 옆에 살고 있는 할머니 한 분은 "이제 창문도 못 열고, 손자들이 놀러 와도 위험해서 밖에 내보낼 수 없다"며, 집 안에 갇혀 사는 신세가 될 것이라고 한탄했다.
평창군청의 무책임한 태도
대한민국 헌법 제35조 1항은 모든 국민이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진다고 밝히고 있다.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도 법률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덧개수의 주민들은 법의 보호 밖으로 내팽개쳐지고 있다.
▲ 부모님이 기르신 들깨밭. ⓒ최은정 |
11월 10일 공장 설립 허가 반대 시위를 마치고 주민들은 평창군청 담당자에게 면담을 신청하였다. 거주 주민의 입장을 고려하여 공장 허가를 결정해 달라는 요청에 돌아오는 답변은 시종일관 똑같다. "허가 절차 상 법적인 저촉이 없으면 허가를 내 줄 수밖에 없다!"
공장 신청 부지는 법적으로 '계획관리지역'이라 공장 설립이 가능하다. 그러나 주민의 인권은 법이 정한 지역 구분과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하다. 평창군에는 이미 레미콘 공장 8곳, 아스콘공장 3곳이 있어 다른 군보다 공장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평창군은 법적인 공장 허가 절차만 운운하며, 주민들의 의견을 듣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법적인 저촉이 없는지' 주민들은 확인할 길이 없다. 관할 군청에서 충분히 검토하는지, 그 과정에서 주민들이 우려하는 사항에 대한 검토는 이루어지는지 군청은 말하지 않는다. 공장 설립 허가 신청을 위해 업체가 제출한 신청서 및 부속서류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했으나 평창군은 공개하지 않았다.
기본적인 사항 외 일체의 서류에 대해 업체 측에서 공개를 원하지 않았고, 현재 검토가 진행 중인 사항으로 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하지만 공장신설 허가 관련 서류는 정보공개법이 정한 비공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공장신설 허가신청 서류를 널리 공개해서, 공장설립으로 영향을 받을 인근 지역주민들에게 어떤 피해가 있을 것인지 사전에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주민들은 업체가 사전환경성검토를 피하기 위해 공장 면적을 교묘하게 신청했다는 의심도 하고 있다. 법의 사각지대를 이용하려는 속셈이라는 것이다. 평창군은 소음, 분진, 수질, 대기, 폐수 배출 등 환경 문제와 관련해서는 허가를 할 때 기준 조건을 제시하겠다고 한다. 주민들은 이런 평창군에 대해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의 발상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주민들은 평생 살아온 동네 코앞에 환경오염 물질을 배출하는 공장이 들어와 공해에 직접 노출될 게 뻔한데, 공장에 대한 정보를 알 수가 없다. 군청이 주민들의 우려에 대해 어떤 대책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공장 설립에 주민들이 동의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평창군의 비공개 결정에 대해서는 이의신청을 해둔 상태인데,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평창군의 자세다. 주민들의 알 권리조차 무시하고,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인 조치를 강구하지도 않은 채 기업의 공장 설립 신청 허가 절차를 막무가내로 진행하고 있다. 평창군은 동계올림픽 특수를 노리고 허가를 신청한 공해 공장들에게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희생양으로 내어주고 있는 셈이다.
주민들의 꿈틀거림은 계속될 것이다
덧개수는 내 고향이고 지금도 부모님이 그 곳에 살고 있다. 늙으신 부모님이 이제는 더 이상 고생하지 않고, 공기 좋고 물 좋은 고향에서 맘 편히 사시기를 한결같이 바랬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공장 설립 반대 투쟁위원회' 위원장이 되셨다는 말을 들었다. 왜소한 아버지에게는 너무 무거운 감투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느라 아버지를 발 벗고 도와드릴 수 없는 처지가 속상하기만 하다. 시위할 때 필요한 용품을 만들어 보내거나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관련 기관에 민원을 넣으며 나름대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이렇게 해서 막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면 막막하기만 하다. 나를 비롯한 몇몇 젊은 사람들이 없었다면 아마 시위 한 번도 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면 더욱 아찔하다. 주민들의 인권은 이렇게 '법적인 하자만 없으면' 무시되어도 그만인 걸까.
허가 결정권을 손에 쥔 평창군에 묻고 싶다. 왜 이 마을에 꼭 레미콘·아스콘 공장이 들어와야 하는 것인가? 환경올림픽을 내세우는 평창군의 발언은 거짓이었나? 앞으로도 동계 올림픽을 내세운 환경파괴는 계속 될 것이고, 개발과 인간의 삶 사이에서 갈등조차 하지 않는 지방자치단체의 모습도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권침해에 맞서는 주민들의 작은 꿈틀거림도, 힘겹지만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 글은 "우리는 평창 동계올림픽의 희생양이 될 수 없다"라는 제목으로 주간인권신문 <인권오름>에도 실렸습니다. <인권오름> 기사들은 정보공유라이선스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정보공유라이선스에 대해 알려면, http://www.freeuse.or.kr 을 찾아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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