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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를 원하는가? 집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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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를 원하는가? 집권하라!"

[인터뷰]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창립 4주년을 맞았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6일 저녁 여의도 국민일보사 빌딩 1층에서 '역동적 복지국가 건설 비전과 당면 실천 과제'를 제시하며 복지국가 국민운동의 결의를 다지는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보편적 복지'가 중요한 의제로 떠오른 데에는 시민사회에서 오랫동안 추진해온 무상급식 운동과 함께 '역동적 복지국가'를 주창해 온 복지국가 소사이어티의 역할이 작지 않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광범위한 시민운동을 위한 '복지국가 만들기 국민운동 본부'를 설립하고 전국적인 조직을 만들기도 했다.

이상이 공동대표는 지난 30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해온 '복지국가 싱크탱크' 역할과 복지국가 국민운동본부가 하는 시민운동에 더해 정치세력화를 위한 움직임도 적극적으로 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상이 대표는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복지국가 세력이 집권하기 위해서는 민주당의 환골탈태가 시급하다"고 강조하면서 "최근의 '탈정치화 현상'은 민주당에게 민생 불안을 해결하는 복지 정당으로 거듭나라는 국민적 요구"라고 주장했다. 그는 "민주당의 다수가 복지국가 세력으로 채워져야 한다"면서 "현재 학계, 시민사회에 있는 복지국가 활동가들도 당적에 관계 없이 정치권에 진출하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복지국가론'에 대해서는 "국민을 속이는 것"이라고 비난하면서 "시장만능 경제, 줄푸세 노선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복지국가 경제정책을 만들겠다는 것은 허구"라고 비판했다. 그는 "잔여주의 복지나 선별적 복지는 복지국가에 포함될 수 없고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통해 복지와 경제가 결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다음은 서울 마포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사무실에서 진행된 <프레시안>과 이상이 대표의 인터뷰 전문. <편집자>


▲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프레시안(최형락)

"민생 불안이 '복지국가'를 가져온 핵심 동력"

프레시안 :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창립 4주년 축하드린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출범한 지 4년 만에 '복지국가'가 새로운 아젠다로 떠올랐다. 절반의 성공이랄 수 있는데, 그 원동력이 뭘까?

이상이 : 2007년 7월 5일 <복지국가혁명>이라는 책을 출간한 것이 우리의 공식적인 시작이었다. 이 책을 준비했을 때가 노무현 정부 후반기인 2006년 가을이었는데. 당시 우리는 '무엇인가가 잘못되고 있다'는 인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당시 정부는 각종 경제지표가 좋아지니 '잘되고 있다'고 했지만 우리가 볼 땐 사람들이 살기는 점점 힘들어지고 있었다. 당시 지방선거나 재보궐 선거에서 연전연패하고 있지 않았나.

우리는 한국 사회의 경제 사회의 운영원리가 잘못되어 있다고 진단했다. 경제 정책으로서의 신자유주의와 복지정책으로서의 잔여주의가 결합되어 중산층이 무너지고 양극화를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도전과제는 어떻게 중산층을 복구할 것인가에 맞춰졌다. 중산층은 굉장히 넓은 범위다. 중위소득의 50%부터 150%까지를 포함하는 것으로, 사실 보통 국민이면 중산층이 된다. 그런데 이 숫자와 소득이 상대적으로, 절대적으로 줄어들고 있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경제, 사회 시스템이 더 이상 국민을 행복하고 편안하게 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른 거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틀을 바꿔야 한다고 봤고 '복지국가'라는 말을 끌어냈다. 그러나 당시 정통 좌파는 개량주의라고, 주류 담론에서는 철지난 이야기를 한다고 비아냥댔다. 그러나 우리는 복지국가가 아니고서는 소위 말하는 신자유주의 질서를 바꿀 대안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봐도 한국의 현실을 점쟁이처럼 잘 포착해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류 전문가가 몰랐을 뿐이지 지표면 밑에서는 마그마처럼 분출하는 힘이 있었다. 이것이 복지국가 운동을 이끌어 온 핵심 동력이다. 우리는 그에 불을 지핀 것에 불과하다.

프레시안 : '복지국가소사이어티'라는 이름은 '복지국가'와 '소사이어티'를 붙인 것일텐데, 이름이 특이하다. 이렇게 짓게 된 이유가 있을까?

이상이 : 정치인들의 화법을 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주로 복지사회라는 말을 많이 쓴다. 반면 민주당 내의 복지국가에 대한 열망이 강한 정치인들은 복지국가라는 말을 의도적으로 즐겨 쓴다. 또 진보정당으로 가면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대표는 복지국가라는 말을 쓰는데. 민주노동당은 '복지국가'라고 쓰지 않고 '복지'라고 한다. 복지와 복지사회, 복지국가는 다른 개념이기 때문이다.

협의의 복지는 빈곤층, 장애인. 노인 등을 위한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말한다. 중범위의 복지는 주거, 교육, 아동 복지 등 복지와 관련된 사회 정책을 다 모은 것을 뜻하고 이것이 사회 정책을 넘어 한 사회의 운영원리로 확대되면 이것이 복지국가다. 복지국가는 이념이자 가치 체계다. 정통 진보 세력 중 일부는 이념이자 가치체계로서의 복지국가라는 말을 쓰지 않고 '복지'라는 말을 모호하게 사용하는 경우가 있고 우리 사회 주류나 자유주의 세력 중에도 복지국가라는 말 보다는 일반 명사로서의 복지 사회라는 말을 즐겨 쓴다. 복지사회는 말 그대로 '살기 좋은 사회'라는 뜻으로 이념이나 가치를 내포하지 않기 때문에 진정성이 없다고 본다.

프레시안 : 일각에서는 '미국식 복지도 복지국가'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생각은?

이상이 : 선별적 복지나 잔여주의 복지는 복지국가에 포함이 안된다. 이를 '선택적 복지'라고 붙여서 복지국가에 포함시키는 것은 대국민 사기다. 복지국가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 대표적으로 한 사람에게 의료, 교육, 직업훈련, 평생 교육, 요양 등을 다 제공하는 개념이다. 그래서 한 사람의 국민도 공동체의 일원에서 탈락시키지 않고 탄탄하게 뒷받침 되어야 경제 혁신이 가능하고 경제와 복지가 유기적으로 통합된 모델이 가능하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뒤에 붙어있는 '소사이어티'라는 말은 어디서 따온 것인가?

이상이 : 19세기 영국의 '페이비언 소사이어티'를 창조적으로 모방한 것이다. '페이비언 소사이어티'가 영국의 복지국가 시대를 열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꽃을 피우는 동시에 굉장히 사회적 갈등이 심했던 당시에 쪼개진 사회를 통합하고 복지국가를 만들겠다는 취지 아래 페이비언 소사이어티가 만들어졌고 이후 노동당 창당의 주역이 됐다. 노동당은 처칠의 보수당을 무찌르고 단독 정권을 수립해서 30년 동안 영국이 복지국가로 이행하도록 이끌었다. 페이비언 소사이어티는 100년째 존속하고 있고 많은 정치인들과 학자 등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다. 우리도 그런 단체가 되어보자, 라는 소망이 담겨 있다.

"복지국가 위해선 민주당의 환골탈태가 시급하다"

프레시안 : '페이비언 소사이어티'는 노동당이라는 새로운 정당을 창당시켜 복지국가를 위한 집권에 성공했다. 현재의 제1야당인 민주당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이상이 : 대한민국의 현 시점에서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한 20년 정도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10년에 걸쳐 달성해야 할 고지가 OECD 평균 수준의 복지다. 이런 꿈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합당한 정치세력이 필요하다. 진보적 자유주의자와 사회민주주의자가 연합해야 한다. 진보적 자유주의자는 자유를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평등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성장도 중요하지만 분배, 복지도 중요하다고 통합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을 뜻한다. 우리나라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진보정당에 많이 포진되어 있고 자기 역할을 하고 있지만 복지국가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회진보주의자는 집권세력이 되어야 한다. 복지국가는 집권하지 않으면 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당이 중요하다. 야당 중 제 1세력이고 현실적으로 집권한 경험도 있다. 민주당을 포함하는 다수파 전략이 필요한데. 문제는 민주당 안에 사회민주주의자가 없다는 것이다. 개별적으로 존재할지 모르나 세력으로는 아예 없다. 내 생각에는 민주당 안에는 보수, 중도적 자유주의, 진보적 자유주의 이 세 세력이 대체적으로 1:1:1로 있는 것 같다. 그 3분의 1에 주목한다. 이들이 민주당의 주류가 되어 대권도 가지길 바란다.

그 외에 진보정당과 시민사회에 진보적 자유주의자들과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많다. 이들까지 다 포함해서 복지국가 정치세력을 형성해야 한다. 빨리 이뤄질수록 복지국가로 빨리 갈 수 있다. 그나마 지금 민주당 안에 복지국가를 주창하는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이 3분의 1정도 차지하고 있고 당헌에도 보편적 복지국가를 정치 이념으로 선언했다는 점에서 희망을 갖는다. 물론 한나라당의 보수 세력과 큰 차이가 없는 3분의 1의 보수주의자도 있지만 앞으로 크게 바뀌리라고 본다.

▲ "'안철수 현상'은 민주당에게 복지국가 정당으로 환골탈태하라는 국민적 요구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지금 큰 선거를 앞두고 있긴 하지만 기성 정당을 바꾼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닌데.

이상이 : 이번에 '안철수 현상'을 비롯해서 '탈정치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국민이 민주당에 대한 준엄한 경고 사인을 보낸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민주당에게 복지국가 정당으로 환골탈태해 민생 불안의 근본 원인을 치료하라는 요구다. '안철수-박원순'으로 가장 손해본 것이 민주당 아닌가. 그래서 민주당의 3분의 2 세력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방법은 당내의 혁신과 외부세력과의 통합, 혹은 연합을 통해서 바꿔내는 것이다. 지금 추세로는 불가피한 일로 보이지만 문제는 시기다. 가급적이면 총선이 내년 4월이니 올해 안으로 일어났으면 하고 늦어도 대통령 선거 전에는 달성됐으면 한다. 다만 때를 놓쳐서 대선 패배 이후 정계 개편을 시도하는 것만은 아니었으면 한다. 선제적이고 공격적으로 개편해서 이 힘으로 대선과 총선을 돌파해서 복지국가를 앞당기는데 기여하는 그런 개편이 되도록 힘썼으면 한다.

"'복지국가 세력'이 국회 내에서 다수를 차지해야"

프레시안 :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창립 4주년 보도자료에 보면 "복지국가 운동의 정치 세력화를 위하여 복지국가 활동가들의 조직적인 정치권 진출 지원"이라는 내용이 있다. 직접 정치권 진출을 도모하는 것인가?

이상이 :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앞으로 100년간 '싱크탱크'로 가겠다는 비전은 확고하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는 복지국가 절대 못 만든다. 국민의 참여가 필요하다. 복지국가를 향한 참여 민주주의, 노무현 전 대통령 식 어법으로 하면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 필요하다. 국민들이 진짜 원해야 하고 권리와 함께 의무도 져야 한다. 국민들이 아직까지 공공성을 강화하는 형태로 우리 삶의 원리를 바꾸는데 대해 크게 적극적이지 않다. 비용을 부담하는 문제와 마주치면 소극적으로 돌변하는 경우가 많다. 복지는 좋은데 부담은 싫다는 식이다. 그래서 우리는 복지국가의 담론과 정책을 연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국민과 소통하고, 풀뿌리 시민 정치운동을 통해 확산, 소통하겠다는 생각이다. 복지국가 소사이어티의 담론과 정책을 풀뿌리 현장에서 확산시킬 국민운동 조직이 필요해서 '복지국가 만들기 국민운동 본부' 전국 조직이 출범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만으로는 복지국가 못 만든다. 마지막 축이 정치 세력이다. 복지국가를 실질적으로 건설할 정치세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국민운동본부나 복지국가 소사이어티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 중에서 정치적 능력이 있는 사람들을 발굴해서 국회의원으로 보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적을 불문하고 이러한 작업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한다. 본인의 희망에 따라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

그리고 이제까지는 정치적 구설수에 오를까 싶어 기존의 정치인들을 핵심 회원으로 받지 않았었는데 이제는 복지국가 건설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있고 정치적 비전과 신념이 복지국가에 있는 것이 확인되고. 회원으로서의 소정의 의무를 준수한다면 우리 회원으로 받아들일 예정이다. 그래야 국회 내에서 거대한 정치 블록을 형성하지 않겠나.

프레시안 : 정치권 내에도 '정의로운 복지국가론' 등 각양각색의 복지 담론이 있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복지국가를 말하고 있는데. 어디까지 포괄할 수 있을까.

이상이 : 천정배 의원의 '정의로운 복지국가'는 '정의로운'이라는 말은 자신의 정치적 레 토릭인 것 같고 그 내용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에서 말하는 복지국가의 원리에서 벗어나있지 않다고 본다. 반면 박근혜 의원이 말하는 복지국가는 복지국가가 아니다. 국민을 속이는 것이다. 복지국가를 하려면 경제, 사회 운영원리를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경제에 대해서는 공정하고 혁신적인 경제를 가져올 수 있는 대안을 반드시 가져와야 한다. 지금처럼 시장만능 경제를 그대로 두고 규제 완화와 감세를 그대로 유지한다면서 어떻게 복지국가적인 경제정책을 만들겠나. '선택적 복지' 등의 말을 만들더라도 보편주의라는 원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복지국가가 아니다.

"정부를 못 믿으면 시장을 믿을 건가…'무상'으로 준비하자"

프레시안 : 지금까지 정치권에서 이뤄진 복지 담론이 대부분 '무상'에 치중되어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이상이 : 무상이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 의미 외에도 적극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에 좋다고 생각한다. 무상복지라고 하면 사회주의 이념을 덧칠하거나 '질 낮은 복지' 등을 연상하기도 하는데 무상은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함의를 가지고 있다. 누구에게나 접근성, 형평성을 보장한다는 긍정적 의미가 있다. 무상이라는 개념은 서비스를 받는 시점에서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는 듯이다. 시장 원리에 입각한 의료 제도라면 병원 갈 때 돈이 있어야 하는데, 무상이라는 개념에 따르면 치료 받는 시점에서는 돈을 낼 필요가 없다.

무상을 공짜라고 한다면 국민을 속이는 나쁜 사람이다. 무상은 서비스를 받는 시점에서 돈을 내지 않는 것이지 국민이 낸 세금으로 하는 것이다. 학교 문턱에 들어설 때 학비를, 보육시설에 갈 때 보육료를, 양로원에 갈 때 요양비를 안내는 것이다. 이로써 누구나 다 필요로 하는 출산, 보육, 의료, 교육, 요양 등의 분야에서 누구에게나 접근의 형평성을 보장해 주는 것이 무상의 개념이다 이를 '공짜'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돈이 안 들어가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는 세금과 사회 보험료로 미리 내는 거다.

이러한 방식은 사회 서비스 재원을 미리 준비하는 '사회적 준비' 관점에서도 중요하고, 부자들은 세금을 많이 내고 가난한 사람들은 적게 내는 '연대'의 정신과 이로써 온 국민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데 그 중요성이 있다. 만약에 이러한 메커니즘이 갖춰지지 않으면 개인적으로 알아서 준비해야 하는데 버겁기도 하고, 돈이 없는 사람들은 서비스를 아예 이용하지 못하게 된다. 결국 무상에 따른 국가복지를 거부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국가를 부정하고 시장만 긍정하는 야만적인 사고방식이다. 다만 '공짜냐', '질 낮은 것 아니냐'는 등의 비난 때문에 무상이라는 말을 계속 써야 하느냐는 것을 두고 설왕설래가 있지만 시장복지와 가장 대비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 "무상을 공짜라고 한다면 국민을 속이는 나쁜 사람이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무상'은 '공짜'가 아니다라는 말은 최근 내세우는 '증세운동'과 맞물린다. 하지만 과연 '세금 더 내자'라는 운동이 광범위한 대중운동이 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이상이 : 참여정부 때 건강보험공단에서 4년을 근무했는데 당시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높이기 위해 짜낸 아이디어가 '암부터 무상의료'였다. 국민들은 가족 중에 암환자가 생기면 가계가 거덜난다는 두려움이 컸고 우리는 이를 해결하겠다고 내세우면서 건강보험료를 올리자고 공격적으로 설득했다. 그래서 보통 의료에서 본인 부담 비율이 40%인데 암은 20%로, 국민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작년 6월부터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을 하고 있는데 입원을 필요로 하는 모든 질환에 대해 사실상 무상의료를 하자는 운동이다. 이 역시 '보험료 더 내자'는 운동이지만 서민들은 좋아한다. 왜냐하면 국가가 운영하는 국민의료보험으로부터 완벽하게 보장을 못 받으니 그 불안감에 국민의 80%가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는데 실제로 이 불안감에서 해방된다면 굳이 가입할 필요가 없다. 사실 지금은 돈을 이중으로 내는데 그 돈의 일부만 건강보험에 더 내면 민간의료에 가입하지 않아도 된다. 결과적으로는 서민 가계가 돈을 버는 거다. 국가가 시장 실패를 조정하고 제대로 운영만 한다면.

프레시안 : 의료 영역에 한정되는 건강 보험료와 여타 세금의 경우 국민들이 보이는 반응이 다를 수 있다.

이상이 : '건강 보험료 더 내자'고 할 때도 '확실히 돌아오는 거 맞아요', '정부를 믿어도 되냐'는 질문이 많았다. 정부가 그간 신뢰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복지를 제대로 한 적도 없고, 복지 하라고 세금 내면 그 돈으로 4대강 개발하든지 엉뚱한 짓을 하는 게 많았다. 물론 지금은 국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이에 더해 반문하고 싶다. 국가를 못 믿으면 시장은 믿을 수 있나. 시장은 더 못됐다. 정부 실패보다 시장 실패가 더 크고 국가는 시장의 장사꾼보다 더 믿을만하다. 우리가 국가를 불신하고 난 다음에 남는 것은 시장 밖에 없는데, 시장이 우리의 민생을 잡아먹은 결과가 이 양극화가 아닌가. 국가가 다시 필요한 규제를 할 수 있도록 정치를 바꾸어야 하고. 국가가 더 많은 공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국가 재정을 풍부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부자들은 세금을 훨씬 더 많이 내게 되어 우리에게는 이로운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내가 내는 돈은 5배, 10배의 복지로 돌아간다.

이를 위해 복지국가 목적세를 소득세를 중심으로 만들자고 제안한다. 사실 그간 진보 진영에서는 조승수 의원이 사회복지 목적세를 말하는 등 꽤 논의가 됐다. 이럴 기본 틀로 합의하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항목은 소득세다. 경제사회에서 발생하는 모든 부는 개인에게 귀착되게 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에게 소득세를 정확하게 누진적으로 부과하는 게 가장 진보적이랄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 고소득자들은 국제적 기준에서 보면 세금을 너무 안 낸다. 상위 10% 고소득자들은 지금 기준의 두 배를 더 내야 한다.

프레시안 : 부자 증세는 국민들이 높게 호응할 듯하나, 보편적 증세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이상이 : 보편적 증세가 중요한데, 우리나라에서 소득세와 같은 직접세를 내는 국민이 절반도 안된다. 직접세를 낼 돈이 없거나 각종 감면 제도 때문이다.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대부분이 세금을 내는 게 옳지만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에 세금을 낼 돈이 없다. 국민의 70~80%가 세금을 내기 위해서는 더 나은 일자리를 만들어줘야 한다. 최저 임금을 올리고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결합시켜 중산층을 더 두텁게 만들어 주는 거다. 중산층의 소득을 증가시키고, 비정규직 일자리를 정규직으로 전원하고, 적정 임금 일자리를 확대하고 산업 생태계의 공정성을 확보하는게 중요하다. 이러한 재정정책을 할 세금을 부자 증세를 통해 확보하고, 그 재정을 기반으로 중산층을 강화해 보편적 증세로 옮겨가는 것이다.

"복지국가는 국민이 원하는만큼 된다"

프레시안 : 최저임금을 올리는 문제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나 전경련 등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이슈들이다. 돌파할 수 있을까?

이상이 : 그 지점에서 민주주의를 믿어야 한다. 예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고 보니 이미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더라'는 말을 한 적 있는데 그 말이 적절한지 여부를 떠나서 대통령 나름으로 현실을 고발한 것이라 생각한다. 민생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것은 시장에 있다는 것이다. 또 봉하마을에 있을 때는 '민주주의는 국민이 원하는 만큼 된다. 시민사회에서 깨어 있는 시민들이 중요하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복지국가 정치 세력이 권력을 잡아서 복지국가를 하고 싶어도 국민이 원하지 않으면 못하는 거다.

이 말을 뒤집으면 국민이 원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다할 수 있다는 뜻이다. 복지세력을 제1 정치 세력으로 세우고 정권을 쥐어주면 전경련은 국민 앞에 무릎을 꿇게 되어 있다. 유럽도 그런 과정을 거쳐 복지국가를 만들었다. 지금 거대한 벽처럼 느껴지는 것은 우리 민주주의가 취약해서 그렇다. 그걸 넘어서고자 하는 열망이 모이고 거대한 민주주의 혁명이 이뤄진다면 크게 바뀔 것이다. 보수세력이 가장 무서워 하는 게 그것이다.

▲ "머지 않아 민주노총도 바뀔 수밖에 없다. "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유럽의 복지국가 이행에는 노동조합이 큰 역할을 했는데 한국에서는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 모두 복지 담론에는 큰 관심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상이 : 시대적 소명을 못하는 조직으로 남아있어 그렇다. 복지국가 운동에 방해가 되지는 않지만 사실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면 좋겠다. 왜냐면 이러한 현실이 한국 노동운동의 비극이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정규직은 완벽한 기업 복지를 제공받는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의 숫자는 전체 노동자의 10%이내다. 90%의 노동자들은 무관한 세상에 살고 있다. 즉 민주노총은 불행하게도 상위 10%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사실 민주노총의 지도자들이 굉장히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민주노총 위원장은 몇 차례 '복지국가를 적극 지지한다'고 천명했다. 다만 조합원들의 정서가 따라오지 못하는 것이다. 지난번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기 자식들의 고용에 유리한 조건을 달라고 주장하다가 사회적 비난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이는 정규직 노동자가 되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 사이의 차별이 어떤 것인지를 알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사실 그러한 정규직의 안정성을 모든 국민과 노동자가 다같이 누릴 생각을 해야 하는데,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이 못 미치는 것이다. 바로 이게 노동운동과 민주주의의 현 주소다. 그래서 우리는 노동조합 운동을 통한 복지국가 전략이 아닌 풀뿌리 국민운동을 채택하고 있다. 먼저 정치 권력을 바꾸고 친 노동정책을 통해 비정규직의 삶이 좋아지도록 해서 스스로 결사할수록 여건을 만들고 산별노조를 통해 노동권의 향상을 지원하는 식이다. 노동조합을 기반으로 복지국가로 이행하는 전략은 포기하지만 반드시 민주노총은 달라질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버티기 힘들기 때문이다. 곧 머지 않아 하층 노동자를 중심으로한 조직화가 광범위하게 나타날 것이다.

프레시안 : 복지국가만들기 국민운동 본부가 내세우는 운동방식이 말하자면 '복지에 대해 수다떨기'인데 잘 되고 있나?

이상이 : 잘된다. 어려운 점이 있다면 사회운동의 퇴조기라 이를 조직화할 활동가를 찾기가 쉽지 않다. 먼저 나서서 주민들에게 제안하고 수다를 떨 수 있도록 장을 만드는 활동가가 없다. 그러나 막상 지역 주민들을 만나서. 수다모임을 해보면 정말 재미있게 자기 의견을 많이 이야기한다. 특히 많은 경우에 잘못된 지식을 갖고 있었음을 확인한다. '종부세를 내면 서민 생활이 어려워진다'는 식이다. 추석 때 가족들이 모여 정치 이야기. 직장 이야기 하듯이 그런 모임을 자연스럽게 만들자는 거다. 그를 위한 짧은 홍보용 전단도 만들었다. 오는 6일에 4주년 행사하자마자 길거리 나가서 서명 운동도 받고 적극적인 활동을 벌여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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