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로벌 경제위기가 심상치 않다. 대통령이 긴급대책회의를 하면서 국가 재정건전성을 강조하고 포퓰리즘에 대한 경고도 했는데, 상황을 얼마나 심각하게 보고 있나?"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는 어느 정도 넘어섰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그 당시의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당시 세계적으로 급하다 보니 국가재정을 풀어 위기를 극복한 측면이 있는데, 그것이 상당히 재정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쪽으로 귀결됐다."
▲ 박형준 청와대 사회특보. ⓒ프레시안(최형락) |
"한국, 2008년 금융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2008년과 위기의 성격이 다르지 않은가?"
"이번 경제위기는 금융 자체의 위기라기보다는 몇몇 나라의 국가부도 위기가 표출된 것이다. 가장 안전한 나라였던 미국이 재정적자로 흔들리면서 전 세계가 함께 요동치고 흔들리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가 금융자본주의의 탐욕성이 드러난 것이었다면, 이번 위기는 일부 국가들의 재정안전성을 무시한 무분별한 인프라 투자와 복지 포퓰리즘이 어우러져서 나타났다. 지금 위기의 폭과 심도 또한 결코 간단치 않다. 너무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지만, 상당히 구조적인 위기이고, 그 만큼 해결하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다. 우리 정부도 중장기적 대책을 세워 침착하게 대응할 생각이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실물경제 위축이다. 사실 각국의 재정상황을 보면 우리는 상당히 건전한 편이다. 재정 적자도 GDP의 30%대 수준이고 2008년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주요산업 경쟁력과 시장점유율도 상당히 높아졌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이번 금융위기에 대해서도 한편으로는 유동성위기에 대비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실물경제 위축을 방지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뛰어난 리더십은 위기상황에서 빛을 발한다. 2008년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대통령의 역할을 평가한다면?"
"같은 경제위기였지만 1997년 IMF를 극복하는 과정과,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를 극복하는 과정은 판이하게 달랐다. 사실 IMF 위기는 우리 내부 요인이 더 컸다.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외환위기가 이전된 것도 있지만 전 세계적으론 아무 문제가 없었고, 우리 내부 문제에서 비롯됐다. 그래서 해결하는 방식도 IMF가 강제하는 소위 철저한 시장 논리에 의한 구조조정이었다. 그러다 보니 부실기업에 대한 과감한 퇴출이 이뤄졌고 엄청난 실직 사태가 발생하고 중소기업들이 문을 닫았다. 결과적으로 경제의 곪은 부분을 터트린 것도 있지만, 사회적으론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소비 진작 차원에서 신용카드 등을 풀었지만, 그게 또 가계부채의 원인이 됐다.
2008년 금융위기는 세계경제 전체가 위기에 빠진 것이기 때문에 더 위험한 상황이었다. 극복하는 방식은 강한 구조조정이 아니라 각 경제주체들이 힘을 모으는 것이었다. 여야가 많이 싸웠지만 그때는 힘을 합쳤고 다른 나라에는 개념 자체가 없는 일자리 나누기, '잡 셰어링(job sharing)'을 도입했다. 세계 모든 나라가 위기가 닥치면 해고를 당연시하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업들을 도태시키는 전략을 쓰는데, 우리는 반대로 두 가지를 했다. 중소기업 도산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대폭 강화했다. 이로 인해 실업이 늘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또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정리해고가 번지는 것을 막았다. 리먼 사태의 극복은 정부가 역할을 잘한 것도 있지만, 정부와 정치권, 재계와 시민사회가 모두 힘을 합친 결과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실물경제 위축이다. 사실 각국의 재정상황을 보면 우리는 상당히 건전한 편이다. 재정 적자도 GDP의 30%대 수준이고 2008년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주요산업 경쟁력과 시장점유율도 상당히 높아졌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이번 금융위기에 대해서도 한편으로는 유동성위기에 대비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실물경제 위축을 방지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뛰어난 리더십은 위기상황에서 빛을 발한다. 2008년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대통령의 역할을 평가한다면?"
"같은 경제위기였지만 1997년 IMF를 극복하는 과정과,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를 극복하는 과정은 판이하게 달랐다. 사실 IMF 위기는 우리 내부 요인이 더 컸다.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외환위기가 이전된 것도 있지만 전 세계적으론 아무 문제가 없었고, 우리 내부 문제에서 비롯됐다. 그래서 해결하는 방식도 IMF가 강제하는 소위 철저한 시장 논리에 의한 구조조정이었다. 그러다 보니 부실기업에 대한 과감한 퇴출이 이뤄졌고 엄청난 실직 사태가 발생하고 중소기업들이 문을 닫았다. 결과적으로 경제의 곪은 부분을 터트린 것도 있지만, 사회적으론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소비 진작 차원에서 신용카드 등을 풀었지만, 그게 또 가계부채의 원인이 됐다.
2008년 금융위기는 세계경제 전체가 위기에 빠진 것이기 때문에 더 위험한 상황이었다. 극복하는 방식은 강한 구조조정이 아니라 각 경제주체들이 힘을 모으는 것이었다. 여야가 많이 싸웠지만 그때는 힘을 합쳤고 다른 나라에는 개념 자체가 없는 일자리 나누기, '잡 셰어링(job sharing)'을 도입했다. 세계 모든 나라가 위기가 닥치면 해고를 당연시하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업들을 도태시키는 전략을 쓰는데, 우리는 반대로 두 가지를 했다. 중소기업 도산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대폭 강화했다. 이로 인해 실업이 늘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또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정리해고가 번지는 것을 막았다. 리먼 사태의 극복은 정부가 역할을 잘한 것도 있지만, 정부와 정치권, 재계와 시민사회가 모두 힘을 합친 결과다."
"일방적 리더십? 5년 단임제에선 딜레마 빠질 수밖에 없어"
"2008년 경제위기의 극복이 경제주체들의 자발적인 동참과 협력으로 이뤄졌다는 얘긴데, 정작 국민들은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해 '불통', '밀어붙이기 식' 리더십이라고 평가한다. 박 특보가 방금 설명한 대통령 리더십과 국민들이 생각하는 대통령 리더십은 완전히 다른 것 같다."
ⓒ프레시안(최형락) |
"그런 딜레마 상황에서 과반수 집권당까지 출현했으니 아무래도 밀어붙이기 식 국정 운영이 부각될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닐까?"
"밀어붙이기 식 국정운영이란 평가에 동의하기 어렵다. 과거 정부도 똑같은 상황이었다. 집권 세력은 여야 타협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결국은 다수결의 원칙에 입각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다수결에 호소하기 전에 과연 진정성을 갖고 대화와 설득을 위해 노력했는지 또 그 과정을 국민들이 인정했는지 아닌가?"
"우리나라 정치 리더십이 가져야 할 지속적인 숙제다. 현재와 같은 제도적 환경 속에선 쉽지 않다. 성인군자가 정치를 해도 자칫하면 무능한 대통령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노태우 대통령이 여소야대 정국에서 타협적으로 하려다가 '물태우'라는 비판을 듣지 않았나? 그래서 결국 3당 합당을 했다. 5년 단임제 하에서, 각 정당이 언제든 선거에 '올인' 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국회가 항상 순조로운 합의를 하는 것은 어렵다.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구조적인 경제위기와 기후변화 등 일국적인 문제는 사라지고 세계적인 문제가 확대되는 상황이다. 세계 문제에 의해 국내 상황이 규정되는 글로벌 시대의 특징이 전면적으로 나타나는데 이런 위기를 단합된 대응과 신속한 결정으로 극복해야 한다. 그걸 만들어내는 것이 정치다. 사실 어떤 나라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신속한 결정과 단합된 대응, 두 가지가 좀 상충적인 것 같다."
"신속한 결정을 하려면 합의가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합의 없이는 그게 안 된다."
"합의란 일상적인 공론구조가 활성화 됐을 때 가능하지 않은가?"
"실제로는 어렵다. 사실 민주주의 모범국가라고 불리는 미국조차도 점차 증오의 정치가 대두되고 있다. 어려울 때 여야가 초당적으로 대처하는 게 전통으로 내려왔지만, 이번엔 그게 깨졌다. 단순히 정치 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를 둘러싼 환경과 정치 자체가 점차 틀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건 개인 정치지도자의 리더십의 문제라기보다는, 정치 자체가 갖고 있는 위기의 성격이 표출된 것으로 봐야한다."
박 특보는 17대 국회의원이었다. 18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청와대에서 홍보기획관 정무수석비서관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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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총선, '이긴 선거'로 보기 어려워…문제는 공천 실패"
"이명박 대통령 취임 직후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과반 의석의 집권당이 됐다. 이게 국정운영에 독이 됐나, 약이 됐나?"
"과반수를 얻었지만 18대 총선을 이긴 선거라고 하기는 어렵다. 대통령 취임 직후 지지율이 한참 높을 때라는 것을 고려하면, 공천만 잘 했더라도 180석은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실제론 150석을 간신히 넘겼다. 특히 영남에는 무소속 돌풍이 거셌다. 문제가 많은 선거였다."
"공천 실패의 주요인은 무엇이었나?"
"대선과 총선이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서 시간이 충분치 못했다. 굉장히 특수한 상황이었다. 대통령 취임 후 한 달 반 만에 치러진 총선이었다. 다른 때 같으면 1~2년 동안 할 총선 준비를 제대로 못했다. 그 과정에서 공천을 투명하게 객관적 기준에 의해 하지 못했다."
"그 책임은 공천을 주도했던 친이계가 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주도했다고 한다면 책임을 져야겠지만…당이 공천을 너무 쉽게 생각했고, 안정적인 공천을 못했다."
"집권 초기, 친박 제대로 관리 못한 측면 있어"
"이명박 대통령이 경선 승리 직후 박근혜 전 대표에게 '국정 동반자'로 함께 가자고 약속했다. 어떻게 평가하나?"
"총선을 거치면서 어그러진 면이 있다. 공천에 대해 광범위하게 동의하고 승복하는 과정을 만들어내지 못하면서 상당히 금이 갔던 게 사실이다. 소위 친박을 표방했던 분들이 대거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했고, 이 분들이 친박연대를 구성했다. 결과적으로 집권 초기에 친박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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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정무수석을 하기 이전부터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의 관계를 원만하게 가져가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현재도 그 부분은 확고하다. 그 전에는 관계가 괜찮았는데 세종시 문제로 순조롭지 못했다. 그러다 지방선거 후 회동을 거치면서 상당히 관계가 좋아졌다.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선 반드시 단합해야한다는 인식도 같이 하고 있다."
"박 전 대표와 대통령간의 소통은 어떤가? 서로 간에 의견이 잘 전달되나?"
"정무 역할을 하는 분이 있으니까, 그런 소통엔 문제가 없다고 본다."
"함께 가야한다는 전략적인 구도에 대한 합의도 튼튼한가?"
"그것도 기본적으로 동의하는 부분이다."
"박근혜의 '탈이명박'? 그렇게 되면 서로 불행하지 않겠나"
"임기 말 박근혜 전 대표가 '탈이명박'을 할 가능성은 없나?"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서로 불행해지지 않겠나?"
"대선이 가까워올수록 대통령은 마무리를 해야 하고 박 전 대표는 미래권력으로서의 자기 정치를 구현해야 한다. 이명박은 무대 뒤로 가고 박근혜는 무대 앞으로 가는 교체가 불가피한 것 같은데?"
"대통령과 정당 리더들이 하는 정치는 영역이 다르다. 대통령은 국정 운영과 국가 경영차원에서 정치를 하는 것이고, 정권 재창출의 일차적인 책임과 역할은 당과 후보한테 있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표를 어떻게 평가하나?"
"훌륭한 지도자로 평가한다."
"어떤 점을 그렇게 보나?"
"제가 대통령이 아닌데 어떻게 얘기할 수 있겠나?"
"박 특보는 어떻게 평가하나?"
"저도 훌륭한 지도자라고 생각한다. (웃음)"
"어떤 점이? 보완할 점은 없나?"
"대통령을 모시고 있는 입장에서 당의 중요한 후보에 대해 평가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누구나 인정하듯이 미래권력에 가장 가까운 분이고, 소신과 원칙을 지켜가기 때문에 저희도 큰 기대를 갖고 보고 있다."
"대세론이 존재한다고 보나?"
"대세라는 말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른데 지금 대권 레이스에서 박 전 대표가 다른 후보들과 상당한 격차가 있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이 누가 있겠나."
"이동관 특보는 대세론이 '독'이라고 했는데."
"(이동관 특보 말의) 맥락을 쭉 읽어보면 대세론에 안주하지 말자는 경각심을 일깨우는 차원의 얘기다."
"맥락적으로 이해하면 좋긴 한데, 정치인은 독자들이 맥락적으로 이해해 줄 거라고 기대하고 말 하면 안 되지 않나? 맥락적으로 이해했다면 친박계가 그렇게 흥분할 필요가 없지 않았나. 덕담 정도로 받아들이면 되지."
"그렇다. 표현상의 문제는 있었던 것 같다."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소통엔 문제가 없더라도 친이계와 친박계는 맥락적인 이해를 하지 못할 만큼 거리가 있는 것 같다."
"정치적 이해와 현실적 역할이 달랐는데 무조건 그게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역사가 있는 것인데…그러나 그걸 극복하는 차원에서 활발히 대화도 하고, 힘을 모으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 6월3일 회동에서 공천과 관련, 친이·친박이 '지분 챙기기' 식으로 하지 말자는 얘기가 나왔다고 보도가 됐는데.."
"그런 보도를 저도 봤는데... 그건 완전 소설이다. 공천에 대해선 얘기할 계제도 아니고 전혀 그런 분위기도 아니었다."
"<프레시안>은 소설 안 쓴다. (웃음) 홍준표 대표가 대표 취임한 직후 공천에 대한 언급을 여러 번 했다. 어떻게 보나?"
"공천에 대해 국민이나 정치인, 언론이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하다. 현실적으로 내년 총선이 매우 중요한 정치적 관심사일 수밖에 없고 총선의 핵심은 1차적으로 공천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공천에 대해서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공천에 대한 요구는 두 가지다. 하나는 새로운 인물을 발탁하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밀실이 아니라 국민참여형으로 공천하자는 것이다. 공천경쟁에서 떨어진 후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그런 재앙적 공천이 아니라 모두가 승복 가능한 공천에 대한 요구가 있다. 이 두 가지 요구만 충족된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지도부가 공천 얘기를 여러 차례 언급한 것이 적절치 않다는 비판도 나오는데?"
"그건 제가 평하긴 조금 그렇고…. 중요한 것은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 힘을 행사한다는 식의 의구심을 떨쳐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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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총선, PK가 최대 전략지역 될 것"
"내년 총선에 어디서 출마하나?"
"총선에 나간다면 제 지역구에서 하려고 한다."
"민심은 괜찮은가? 부산 민심이 안 좋다는 얘기가 많던데?"
"별로 좋진 않다.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부산·경남이 최대 전략지역이 될 것이다. 안 좋은 일도 많았고 민심도 그렇다. 부산과 경남은 상당히 역동적인 지역인데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지역에 고여 있다는 생각을 시민들이 많이 하고 있다. 당에 대한 피로감도 높아졌고."
"문재인 이사장이 야권 단일후보로 출마할 경우, 총선에서 당선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어떤 지역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상당히 바람을 일으킬 개연성은 있다."
"김두관 경남지사의 희망이 부산 6석, 경남 7석, 울산 2석이던데, 가능할까?"
"한나라당이 어떤 공천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국회의원들, '국가 위한 정치' 아닌 '당선 위한 정치'에 매몰"
"어떤 공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전 세계가 정치위기를 겪고 있다. 우리 정치도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소선거구제가 갖고 있는 문제가 크다. 소선거구제 하에선 지역구 의원들이 국익과 지역의 이익이 충돌할 때 지역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번 부산저축은행 사태도 그렇다. 사후처리 과정에서 국가의 원칙과 피해주민들을 구제해야 하는 현실적 요구 사이의 충돌이 일어날 때, 국회의원 입장에선 현실적 요구를 선택할 수밖에 없지만 그로 인해 국가의 원칙이 흔들리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국가를 위한 정치가 아닌, 자신의 당선을 위한 정치에 매몰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의정 활동을 잘하는 것을 높이 평가했는데 지금은 심하게 말하면 지역에서 '골목을 잘 도는 것'을 중시한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한 것이 아니라, 정치의 질 자체가 악화된 것이다."
"복지논쟁, '퇴행적 좌파'와 '정체한 우파' 사이의 논쟁으로 흘러가"
ⓒ프레시안(최형락) |
"1980년대엔 사회성격 논쟁이나 사회주의 붕괴를 전후해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이런 문제가 90년대 초중반까지 치열하게 논쟁되면서 우리사회의 담론 수준이 세계적 수준과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턴가 담론 구조가 쇠퇴하고, 패거리 정치나 실용정치에 밀려났다. 아까 이야기한 '정치의 위기'도 본질적으로 보면 인문적인 위기라고 할 수 있지 않나?"
"담론이 정쟁의 도구가 되면 이미 담론으로서의 빛을 잃는다. 정치의 고유한 기능은 사회를 앞서서 진단하고 가야할 방향을 비전으로 제시하고 그걸 구체적인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 실천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차원의 지적 담론이 어느 순간 결핍되거나 정쟁의 도구로 쓰이게 됐다. 우리사회의 지적 취약성이 크게 드러난 셈이다. 세상은 크게 변했고 그에 따른 패러다임 전환을 해야 할 시기가 왔다. 새로운 지적 담론에 대한 요구 역시 커지고 있지만, 그에 부응하는 정치권의 노력은 많이 약화됐다. 그러면서 단발적인 정책을 갖고 프레임 전쟁에만 몰두한다. 이런 부분들을 극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성장과 분배라는 고전적인 두 주제를 어떻게든 20세기적으로 결합한 모델이 있었다면, 이제 21세기적으로 결합하는 새로운 모델이 필요한 때이다. 복지문제 역시 퇴행적 진보와 정체한 보수를 넘어서는 생산적인 논쟁으로 끌어가야 한다. 그런데 논쟁으로 가는 순간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면 논쟁 자체가 정체되지 않나? 포퓰리즘은 사실 우파나 좌파나 모두 갖고 있지 않나?"
"그렇다. 우파든 좌파든 포퓰리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선거에서 유권자의 환심을 사야하는 게 모든 정당과 정치인의 공통된 속성 아닌가. 국가발전의 비전속에서 정책이 배치되고 틀을 만드는 게 아니라 그런 것에 매몰되면 여든 야든, 좌든 우든 포퓰리즘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포퓰리즘에 대한 경계와 함께 시대가 어디로 가고 있고, 공통으로 붙잡아야 할 화두가 무엇이며 성장과 삶의 질, 기후변화와 번영이란 가치의 균형, 개인화 시대의 국가와 개인의 조화, 이런 문제들이 중요한 화두가 되어야 한다. 그 선상에서 논쟁도 많이 일어나야 한다."
"정치인이 최고 담론가 돼야…'골목정치'에 매몰되선 안 돼"
"아까 우리 정부가 '잡 셰어링'이란 개념을 만들어 2008년 금융위기를 극복했다고 했는데, 이게 일종의 한국적 발전 모델이 될 수 있을까?"
"그걸 바라고 있다. 예전엔 '캐치 업(catch up)' 발전 모델이었다. 배우고 따라했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럴 수 있는 모델이 없다. 우리 스스로 개척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이 됐다. 굉장한 지적 성실성과 부지런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교수도 했고 국회의원도 했고 청와대 특보도 하고 있는데 정치인이야말로 최고의 담론가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책상의 비전이 아니라 살아있는 비전을 현장 속에서 결합시켜야 한다. 같은 말이라도 정치인들이 뱉은 말은 학자의 말보다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정치는 말로 하는 것 아닌가."
"정치의 처음부터 끝까지가 모두 말이다."
"대통령 보좌진들의 담론 수준, 국회의원들의 담론 수준이 우리 사회의 수준을 결정한다고 할 수 있지 않나?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이 정치권에 들어와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고 있다. '내가 왜 그 동네에 가냐'며 꺼리는 이들도 많고…"
"선거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점점 심화될 것이다. 지금 국회의원이나 시의원이나 구의원이나 지역에서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차이가 없다. 국회의원은 '일'을 하느라 바빠야 하는데 주민들과 만나 스킨십 하는데만 바쁘다. 물론 그것도 일의 한 부분이지만, 그보다는 국가와 지역의 미래를 고민하고 담론과 정책을 만들어 실질적 성과를 내는 것이 국회의원이 할 일이다. 일을 하는 것과 선거에서 표를 얻는 것이 매번 일치하지는 않는 것 같다."
"존 스튜어트 밀이 영국 국회의원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내세운 공약이 지역구 활동을 안 하겠다는 것이었고, 실제로 그걸 지켰다. 그를 뽑아준 영국 국민도 대단하고 그걸 실천한 J.S.밀도 대단한데, 국내에선 어려운 일인가?"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하면 당선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정현 의원이 광주 서구 출마를 선언했다. 당선을 확신하던데 어떻게 보나?"
"용기 있는 일이다. 야당은 이제 부산경남에서도 당선권 안에 들지 않나. 그에 비해 한나라당은 호남에서 아직 20%대의 지지를 받는 것조차도 불가능하다. 자꾸 도전해 벽을 깨려는 노력은 높이 평가 돼야 한다."
"호남 유권자들이 야속한 건가, 아니면 한나라당이 그만큼 노력을 안 한 건가?
"너무 오랫동안 한 정당이 아주 강고한 지배를 하다보니까…. 저는 이번에 선거제도 전반의 개혁은 아니더라도 석패율 제도만은 도입하는 게 좋다고 본다. 증오의 정치에서 화합의 정치로 한 발 내디딜 수 있고, 최소한의 균형을 맞출 수도 있을 것이다."
"수도권 차출론도 나오는데, 박 특보에겐 그런 얘기가 없었나?"
"오히려 왜 어려운 부산에서 나가려고 하냐고 한다."
"수도권이 더 쉽다고 생각하나?"
"경우에 따라서는 그렇다. 내년에 부산은 상당한 격전지가 될 것이다."
"지난번엔 분당을 얘기도 나왔었는데?"
"잠시 검토했지만 대통령 측근이 나가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예 접었다."
"대통령을 직접 모시는 입장에선 그런 정치판의 얘기들이 부담 될 것 같은데."
"그렇다. 역차별 받는다는 말까지 있지 않나. 대통령을 모셨던 사람들은 대통령의 힘을 빌려 공천을 받는다는 생각은 일절 하지 않아야 한다. 정당하게 경쟁해서 공천을 받고 출마할 생각이다."
ⓒ프레시안(최형락) |
"집권 4년차 대통령은 위기 빠지기 마련…MB정부는 그 정도 상황 아냐"
"역대 선거를 보면 때에 따라서는 당의 이름이 거의 드러나지 않게 포스터를 만든다거나, 대통령과의 인연을 일부러 부각시키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의미 없다고 본다. 그런다고 국민들이 모르나? 다 안다. 역대 집권 4년차의 대통령은 항상 어려움에 빠져왔는데, 지금이 그 정도로 심각한 상황은 아니다. 우리나라 정치가 워낙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풍토가 있고, 대통령에 대한 평가 역시 무조건 부정하려드는 경향이 있다. 집권 4년차가 되면 기대보다 불만이 높아지고 민심이 돌아서는 환경이 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저는 누가 뭐래도 이명박 정부가 세계 속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크게 높인 점, 위기를 기회로 삼고 한국경제의 체질을 강화한 점 등은 높게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외에도 국정과제로 설정한 많은 것들을 열심히 했고, 또 잘 해냈다. 예컨대 농협개혁 같은 문제는 이제까지 아무도 손을 대지 못했는데, 그걸 해냈다. 그런 사례들이 굉장히 많다."
"최근 노태우, 김영삼 두 전직 대통령이 불협화음을 내는데, 어떻게 보나?"
"바람직하지 않다. 이명박 정부의 역사 인식 가운데 굉장히 중요한 차이점 하나가 대한민국의 역사를 긍정적이고 자랑스러운 역사로 본다는 것이다. 역대 대통령에 대해서도 긍정적 측면에서 부각하려고 애썼다. 8.15 경축사라든지 이런 행사 때도 항상 그런 차원을 신경 썼다."
"건국기념일의 의미를 광복보다 중시한 것도 그런 맥락인가?"
"이승만 전 대통령 뿐만 아니라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도 나름의 역사적 역할이 있었고, 그 역할에 충실했기 때문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서거는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굉장한 부담이었겠다."
"굉장한 부담이었다. 부담일 뿐만 아니라 누구도 예기치 못했던 일 아니었나. 그로 인해 충격을 많이 받았다."
"이명박 대통령도 1년 반 후면 퇴임인데, 퇴임 후 다른 나라 대통령처럼 활동적인 모습을 생각하고 있나?"
"그게 우리의 강력한 희망이다. 우리 역사가 계속 진화와 발전을 해오지 않았나. 우리 대통령이 어쨌든 대기업으로부터 돈 받지 않고 당선된 첫 번째 대통령이었다. 그리고 집권 5년 동안 통치 자금에서 자유로웠던 첫 번째 대통령이었다. 그런 부분들이 전통으로 이어져 갔으면 좋겠다. 또 희망컨대 퇴임 후 전임 대통령으로서 다른 나라의 사례처럼 정치적 역할이 아닌, 우리 국가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을 하는 첫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
"대통령은 퇴임 후 무엇을 할 것 같나?"
"제가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봉사를 하고 싶어 하신다. 그걸 굉장히 좋아하신다. 국제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크시다."
"대통령이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는 측면이 있지만 독도나 동해표기 문제, 북중관계 등 거듭된 외교적 실망과 실패도 있다. 어떻게 보나?"
"독도 문제는 우리가 정치적으로 대응하면 대응할수록 실질적으로 손해가 날 수 있다."
"그래서 조용하지만 단호한 전략을 취해온 것 아닌가. 그런데 이게 이번에 깨지지 않았나?"
"비교적 조용한 것 아닌가. 과거처럼 대통령이 직접 나서지도 않았고. 독도문제에 관해선 우리가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기 때문에 확고하고 일관성 있게 밀고 가는 게 필요하다. 동해 표기 문제는 100년간 진행된 문제이기 때문에 한꺼번에 바꾸는 것에 다소 힘의 한계가 있다. 노력을 해서 점진적으론 늘어나고는 있지만. 전체 한일관계를 보면 과거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좋아졌다. 작년에 간 나오토 총리가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을 공식적으로 표명하지 않았나. 정부는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로 가는 것이 동북아평화나 세계평화를 위해서도 이익이 된다는 일관된 관점을 갖고 있다. 우리가 보기에 일본보다는 넓은 시야와 큰 흐름 속에서 한일관계를 가져가고 있다.
중국이 북한과 가까워지고 한국과 멀어졌다는 시각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중국이 북한에 지렛대를 갖는 것이 앞으로 평화통일의 시대를 여는 것에도 의미가 있다. 한중관계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서 잘 관리되고 있다. 한중의 교역이 북중 교역의 100배다. 한중이 갖고 있는 전략적 이해관계가 북중의 정치적, 지정학적 이해관계 못지않다."
▲박형준 특보(왼쪽)와 고성국 박사.ⓒ프레시안(최형락) |
독자들께서도 느끼셨겠지만, 이번 박형준 특보와의 인터뷰는 필자가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필자의 느낌도 가급적 배제하고 인터뷰 당시의 현장감을 최대한 살려 전재하려 했다. 박형준 특보는 대학원 시절부터 필자와 동문수학한 사이고 한국사회 성격 논쟁을 비롯해 학계의 여러 논쟁과정에도 참여해온 사이였다. 근 10년 만에 이루어진 대담이었지만 어제 하다만 얘기를 이어서 하듯 자연스러워 좋았고 편했다. 그 느낌 그대로를 독자들께 전달하고 싶었다.
세계경제위기에서 시작해 이명박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평가, 2008년 총선과 이명박-박근혜 관계 그리고 총선·대선 전망과 박 특보 본인의 출마문제, 마지막으로 이명박 정부의 외교정책에 이르기까지 생각나는 대로 물어보고 대답한 "난삽한" 인터뷰였지만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인 '유기적 지식인'인 박형준의 현장 호흡을 느낄 수 있는 인터뷰가 된다면 그것으로 의미 있고 재미있는 기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독자 여러분의 너그러운 일독과 관용적 이해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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