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대표가 '국민주' 이야기를 처음 꺼낸 것은 지난달 13일, 대표 취임 후 이명박 대통령과의 첫 오찬회동에서다. 당시 홍 대표는 공적자금이 투입된 우리금융지주와 대우조선해양을 국민 공모주 형태로 매각하는 방안을 제안했고, 이는 정부·야당은 물론 당내에서도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
▲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국민주 시리즈' 2탄을 발표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 불리는 인천국제공항 국민주 매각을 주장하고 나선 것. 이번에도 명분은 '친서민'이다. ⓒ뉴시스 |
정부도 이번엔 반색하는 분위기다. 홍 대표는 이날 기자들에게 "임태희 대통령실장에게 이런 의견을 전달해 임 실장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밝혔고, 기획재정부와 국토해양부 관계자들이 구체적인 매각 방식과 비율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 역시 2일 "우리금융지주·대우조선해양과 인천공항은 좀 다르지 않냐"며 "현재로선 (홍 대표의) 좋은 제안에 대해 긍정적인 검토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1일 직접 당 대표실을 찾아 국민주 매각에 공감한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홍 대표가 "조만간 정부의 정책 전환이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보인 것은 이 때문이다.
정부, 민영화 안 되니 국민주 '물타기'?
인천공항 민영화는 정부 출범 이후부터 '공기업 선진화'의 일환으로 추진된 이명박 정부의 야심작이다. 지난해엔 한나라당 박상은 의원이 인천공항공사의 지분 49%를 외국인 등 민간 부문에 매각할 수 있게 한 인천공항공사법 개정안을 상정해 현재 국토위 법안소위에 계류 중이다.
매각을 주장하는 쪽의 논리는 이렇다. "인천공항 설립 당시부터 민영화는 계획"됐고, "51%의 지분을 국가가 갖고, 선진화·개방화의 목표 하에 49%의 지분만 민간이나 외국인에게 매각"(한나라당 박상은 의원)하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의 '민영화'는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 역시 해외의 선진운영 기술을 도입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 불리는 인천공항 지분매각에 대한 반발도 거셌다. 이미 인천공항은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렀으며, 개항 10년 만에 영업이익 5332억 원을 내는 '초우량 기업'으로 탈바꿈했다는 것이다. 6년 연속 공항서비스평가 세계 1위, 6년 연속 흑자경영 기록, 매년 18%의 영업성장률이란 성적표도 '민영화 반대'의 근거가 됐다.
급기야는 '헐값 매각' 논란도 불거졌다. 각계의 반발에도 정부가 고집스럽게 매각을 주장하면서, 대통령의 친인척까지 연루된 외국계 투자금융회사 '맥쿼리 매각설' 역시 고개를 들었다. 맥쿼리 매각설은 3년 전인 2008년 8월, 강만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이 '호주 맥쿼리공항'을 직접 언급하면서 불씨를 지폈다.
이런 상황에서 홍 대표가 꺼내든 '국민주 카드'는 정부 입장에서도 꽤 매력적인 '차선책'이 될 수 있다. 국민주라는 매각 방식이 여론의 반발을 무마시키고 민영화의 동력을 재차 얻을 수 있는 일종의 '출구'가 된 셈이다.
인천공항공사노조 정재웅 총무국장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국민주 매각은 민영화 반발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며 "겉으론 친서민적인 매각 방식으로 보이지만, 국가기간산업에 대한 민영화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반발했다.
홍준표는 왜 '국민주'에 집착하나
홍준표 대표 입장에서도 국민주 매각은 손해 날 것이 없는 장사다. 정치권 안팎에선 홍 대표의 우리금융지주·대우조선해양 국민주 매각 구상이 반발에 부딪히자, 좀더 손쉬운 인천공항공사로 대상을 바꾼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홍 대표도 "인천공항공사의 경우 아직 상장이 돼 있지 않아 기존 주주들과의 형평성 문제 등 논란의 여지가 없다"며 "지난 3년간 지지부진했던 매각 작업에 국민주가 새로운 물꼬를 틀 것"이라고 말했다. 당 대표 취임 후 대통령과의 첫 회동에서 '국민주'란 칼을 뽑아든 홍 대표 입장에선, 두 기업은 어렵더라도 인천공항 정도는 베어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홍 대표가 국민주를 통해 일종의 친서민 이미지를 브랜드화하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엔 야권에서 먼저 '포퓰리즘' 비판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국회 국토해양위 소속 김진애 의원(민주당)은 "국민에게 표를 얻기 위한 표퓰리즘적 발상"이라고 비판했고, 자유선진당은 아예 "굳이 알토란같은 공기업을 매각하려 한다면 내년 총선 이후에나 하라"고 꼬집었다.
민주노동당 우위영 대변인 역시 "민영화를 국민주라는 이름으로 적당히 포장해 국민을 기만하려는 의도"라고 강하게 반대했다.
"국민에게 몇 주 준다고 서민경제 나아지나?"
과거 사례에 비춰볼 때, 국민주 공모가 민영화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1988년 국민주 방식으로 매각했던 포스코 사례만 봐도, 매입자들이 이를 되팔아 외국계 지분이 현재 49%에 달한다는 것이다.
김용복 서울사회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국민주 매입 후 시한이 경과하면 주식시장에 유통이 가능하고, 이게 국내 투자회사는 물론 해외자본에도 얼마든지 넘어갈 수 있다"며 "국민들에게 몇 주 준다고 해서 서민경제가 나아진다는 것은 현실성 없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김 연구위원은 이어 "애초 정부의 민영화 목적이 해외기술 도입을 통한 인천공항의 경쟁력 강화에 있었는데, 국민주 매각은 이런 명분을 정부 스스로 부정하는 일"이라며 "민영화가 반대에 부딪히니 국민주 매각 주장이 나왔는데, 매각 비율이 15%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결국엔 전면적인 민영화로 가는 징검다리가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지분을 민간에 넘길 경우 공항 사용료 인상 등 소비자 피해가 속출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재웅 총무국장은 "주주가 정부가 아닌 이상에야 주주에게 일정 수익을 보장해 주기 위해 공항 이용자의 부담이 필연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홍 대표가 제시한 '국민의 자산증식을 위한 친서민 정책'이란 명분도 현실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아무리 시장가격보다 낮게 책정한다지만, 그 주식을 살 수 있는 서민층은 실제 많지 않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내 '경제통'으로 꼽히는 유승민 최고위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기업 매각 시 수익을 극대화하는 게 국민에 대한 의무이고 아무리 주가가 낮다고 하더라도 그걸 살 수 있는 서민층은 한정적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