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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동네 뒷산'이 '살인 산사태'를 내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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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동네 뒷산'이 '살인 산사태'를 내기까지

[해설]우면산 잔혹사…'트러스트 운동'과 '난개발' 사이

사망자 18명, 부상자 21명을 낸 산사태로 악명을 떨친 우면산. 실제로는 해발 293m의 작은 산, 흔히 말하는 '동네 뒷산'이다. 바위산인 관악산과 달리 흙이 많은 육산인데다 산행길도 2시간 정도로 짧고 대체로 평탄해 주민들이 자주 산책하는 산이다.

이 '평범한' 산의 비극이라면 한국에서 가장 비싼 땅값을 자랑하는 강남·서초지구의 동네 뒷산이라는 것. 예술의 전당이 있는 북쪽으로는 방배동, 서초동을 잇는 남부순환도로가 달리고 서쪽으로는 고속도로와 양재동에 맞닿아 있다. 남쪽 기슭에 '로또'로 불리는 보금자리주택 서초지구와 내곡지구가 건설되면 우면산은 그야말로 투기와 개발에 포위된 '섬'이 된다.

우면산 내셔널트러스트, 이전에 선점한 '사유지'

시민들은 오래전부터 우면산이 난개발로 망가지는 것을 우려해왔다. 애초 우면산 일대를 개발행위 허가제한지역으로 지정해 왔으나 2003년 8월 법 개정으로 제한 지역에서 해제됐다. 서초구와 우면산 훼손을 우려하는 지역 환경단체들은 산을 지키기 위한 '우면산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을 시작했고 3년 만인 2006년 첫 결실을 거뒀다.

이들은 1800명 가량의 시민이 십시일반 돈을 모으고 서초구청이 17억원을 출연해 총 30억 원을 모아 훼손 위기에 있던 예술의 전당과 서초 나들목 사이의 우면산 기슭 땅 980평을 샀다.당시 우면산트러스트는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이 국내에 소개된 이래 최대 규모의 사업이었다. 일반 주민들의 참여도 활발했고 1993년 보건사회부 장관을 지냈던 송정숙 씨가 이사장을 맡고 김기수 전 검찰총장, 유상옥 코리아나화장품 회장 등이 참여해 화제가 됐다.

그러나 면적의 89% 대부분이 사유지인 우면산에서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28일 서울시와 서초구에 따르면 우면산은 전체면적 418만㎡의 84%인 365만㎡가 개인 소유다. 국가와 시가 소유하는 부분은 각각 16% 가량 뿐이다. 우면산트러스트는 추가로 우면산 부지를 매입하려는 시도를 해왔으나 소유주들이 땅을 팔려 하지 않아 실제로 매입한 부지는 몇개 필지 정도에 불과했다.

'생색만 생태' 공사, 우면산 생태계 망가뜨려

시민들의 '사랑'이 약이 되었던 것만은 아니다.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은 섣부른 '생태' 공사도 우면산을 괴롭혔다. 우면산에는 50여개의 산책로와 등산로, 주말농장 등이 있고 서초구가 2004년 20억 원을 들여 조성한 32만㎡ 크기의 자연생태공원도 있다. 또 북쪽에는 2000㎡이 저수지도 조성했다. 산 곳곳의 약수터와 쉼터도 10여개에 달한다. 올해 초에는 휠체어와 유모차가 다닐 수 있는 숲길 조성 공사도 벌였다.
▲ 우면산 등산 안내도. 우면산을 복잡하게 덮은 등산로, 산책로, 약수터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우면산 자연생태공원

이번 산사태의 원인으로 이런 공사가 우면산의 토질을 무르게 해서 폭우에 취약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는 전문가가 많다. 산을 공원화하는 과정에서 나무를 많이 베어낸 반면 물이 흘러내릴 배수로 공사는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

이번 우면산 산사태의 피해 지역 중 하나인 남태령 전원마을에 살고 있는 조원철 연세대 시스템공학부 교수는 28일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계곡 위에다 주말 농장과 정상 부근에 생태 공원 개발하면서 나무를 뽑아내고 흙을 부드럽게 하는 바람에 그 흙들이 전부 쓸려내려갔다"고 말했다.

강남서초환경운동연합은 "이번 산사태는 우면산 생태공원 내 저수지에 토사가 많이 쌓여 둑이 무너져 내린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결국 산사태가 일어난 것은 저수지 관리를 제대로 못한 데에 기본적인 원인이 있고 갑작스러운 폭우에 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태풍 곤파스가 닥쳤을 때도 우면산에서는 아까시 나무 3500그루가 뿌리채 뽑겨나가는 등 피해가 적지 않았다. 서초구청은 토사방지막과 빗물받이 등을 설치했지만 이번 폭우에 역시 무력했다.

산도 힘들고 사람도 힘든 '우면산 터널', 그리고 하나 더

'교통 요충지'가 된 우면산은 속도 성치 않다. 길이 3km, 왕복 4차선의 우면산터널은 예술의 전당 밑에서 과천 쪽으로 우면산을 관통하고 있다. 이번 산사태 때도 우면산 터널 요금소 출구에서 토사가 쏟아져 약 50m 구간이 뒤덮였다. 일각에서는 우면산 터널이 가뜩이나 약한 지반을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는 분석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우면산에는 터널이 하나 더 공사 중이다. 서울시는 강남순환도시고속도로를 건설하면서 우면산, 관악산을 관통하는 터널을 뚫고 있다. 관악산에는 약 4.5km의 관악터널과 약 2.8km의 신림터널이, 우면산에는 약 2.6km의 서초터널이 뚫린다. 사실상 하나의 터널이나 다름 없는 이들 터널의 총 길이는 9.9km로 완성되면 국내 최장의 자동차 전용 터널이 된다.

▲ 우면산과 관악산을 관통하는 강남순환고속도로의 조감도. ⓒ강남순환도로(주)

문제는 이 터널이 우면산의 환경을 심각하게 훼손할 가능성이 높다는데 있다. 서초터널 입구에는 30년 이상의 수령의 수령을 가진 천연활엽수림임 신갈나무 및 굴참나무가 천연림을 이루고 있다. 또 터널에 지름 5미터나 되는 수직환기구가 설치되면 지하수 고갈과 매연과 소음 등으로 인해 동물이 터전을 잃을 수 잇다.

우면산을 관통한다는 것 외에도 이들 터널은 '민자사업'으로 지어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면산 터널은 인천고속도로, 마창대교, 서울 지하철 9호선 등에 투자한 호주계 투자회사인 맥쿼리가 소유한 자회사가 운영하고 있고 서초 터널 역시 두산건설, 대림산업 등이 참여한 '강남순환도로(주)'에서 민자로 건설 중이다.

우면산 터널은 당초 남태령 사당 일대의 교통 정체를 해소한다고 지어진 터널이지만 통행료 2000원을 받으면서 당초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예상 보다 적은 통행량으로 인한 적자에 대해서는 서울시가 계약에 따라 세금으로 적자를 메워주고 있다. 서울시는 2004년 1월 우면산 터널이 개통된 이후 5년 동안 415억 여원을 적자 보조금으로 썼고, 앞으로 2033년까지 시민 세금 3000억 원 이상을 부담해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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