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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의 현장', "우면산이 무너진다" 비명소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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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의 현장', "우면산이 무너진다" 비명소리에…

[현장] 20분만 일찍 출근했더라면…아찔했던 그 순간

"산이 무너지고 있어! 빨리 피해요!!"

기자는 27일 우면산 산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서울 서초구 방배3동 래미안아파트의 주민이다.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서다, 누군가의 다급한 비명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우르릉 쾅' 소리를 내며 토사가 아파트 담장을 부수고 발밑까지 쓸려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고립됐다.

사실 집을 나서면서도 불안했다. 엘레베이터에서 만난 한 이웃은 "지금 나가지 않는 게 나을거에요"라며 걱정스러운 충고를 던졌다. 그 역시 집을 나서자마자 다시 발걸음을 돌린 참이었다. 충고를 한 귀로 흘려듣고 문밖을 나서며 목격한 풍경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산은 한 순간에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어디선가 "살려주세요"라는 비명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니, 한 20대 여성이 턱 밑까지 밀려온 물에 휩쓸려 위태롭게 난간만 잡고 서 있었다. 이 여성은 곧바로 아파트 경비원에 의해 구조돼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다.

▲ 무너진 우면산의 토사가 아파트 담벼락을 부수고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사진은 27일 오전 8시40분께 촬영한 것이다. ⓒ프레시안(선명수)

산사태가 발생한 것은 이날 오전 8시30분께. 폭우로 물을 머금은 산은 8차선 남부순환로를 덮친데 이어 맞은 편 아파트단지에도 밀려왔다. 탄탄했던 담장은 한순간에 허물어졌고, 무너진 담 사이로 토사가 폭포수처럼 밀려들었다.

출근길 주민들은 눈앞에서 펼쳐진 광경에 재빨리 발길을 돌렸고, 그조차 여의치 않았던 이들은 달리는 차 안에서, 길거리에서 속수무책으로 토사의 공격을 받았다. 곳곳에서 구조 요청이 빗발쳤지만 손 쓸 길이 없었다.

▲ 토사와 나무로 뒤덮힌 놀이터. ⓒ프레시안(선명수)

▲ 아파트 담벼락과 건물이 속수무책으로 파손됐다. 산 위의 나무가 건물을 뚫고 내려왔고, 가로등이 넘여져 아파트단지 안으로 밀려왔다. ⓒ프레시안(선명수)

흙더미는 아파트 담벼락을 무너뜨린 데 이어 건물까지 덮쳤다. 아파트 4층까지 토사가 차올랐고, 고립된 주민들은 수건을 흔들며 구조를 기다렸다. 이번 산사태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래미안아트힐아파트 주민 박모(45) 씨는 "갑자기 '쾅' 소리가 나면서 나무뿌리와 토사가 베란다 창문을 깨고 거실까지 밀어닥쳤다"며 "창문 근처에만 서 있어서도 바로 파묻힐 상황이었다"며 울먹였다.

또 다른 주민은 "아침에 창문 밖을 내다보는데, 산이 무너지면서 흰색 티셔츠를 입은 한 사람이 한 순간에 눈앞에서 사라졌다"며 "119에 여러 번 전화를 했지만, 여러 군데서 전화가 오는지 계속 불통이었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현재까지 래미안아파트 주민 가운데 집계된 사망자는 모두 4명이다. 기자가 출근 버스를 타는 곳이 우면산 바로 앞이다. 20분만 일찍 집을 나섰더라면, 사망자로 추가됐으리라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구조대가 도착한 시간은 비가 다소 잦아든 오전 10시께. 일터로 나갔다 소식을 듣고 집으로 향한 주민들은 맥없이 부서진 건물 앞에서 "우리 집 어떡해"라며 발만 동동 굴렀다. 이 일대 전기가 나가면서, 주민들은 휴대전화 배터리에만 의지한 채 가족들의 안부를 확인했다. 기자 역시 전기와 인터넷을 쓸 수 없어 전화만으로 회사에 상황을 알렸다.

▲ 나무와 토사가 밀려온 남부순환로. 맞은 편 아파트의 담벼락이 흔적없이 무너졌다. ⓒ프레시안(선명수)

▲ 물에 잠긴 남부순환로. 도로가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프레시안(선명수)

▲ 침수된 도로에 폭포수처럼 토사가 쓸려내리고 있다. ⓒ프레시안(선명수)

▲ 허리까지 차오른 토사와 잔해들. ⓒ프레시안(선명수)

밀려온 산에 맥없이 부서진 것은 건물만이 아니었다. 출근길 차를 몰고 일터로 향하던 주민들도 물과 함께 밀려온 산에 맥없이 쓸려갔다. 방배3동 주민 김모(59) 씨는 "방배역에서 운전을 하며 남부순환로 쪽으로 올라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흙탕물이 쏟아지면서 차들이 떠내려 왔다"며 "일부는 미리 차를 버리고 건물 안으로 몸을 피했지만, 운전자들이 파손된 차 속에서 어쩔 줄 모르고 떠내려 오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주민들이 분통을 터뜨린 이유는 늦은 구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아파트 주민 김모(57) 씨는 "매일 우면산으로 등산을 가는데, 작년 태풍 이후 복구 공사를 한다고 한 지가 벌써 1년째"라며 "1년 넘게 공사를 지연시키더니 결국 이런 일이 생긴 것이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현재 초토화된 도로엔 산 중턱에 있던 컨테이너 등 건설 장비까지 떠 밀려온 상태다.

▲ 산사태로 인해 훼손된 자동차들. ⓒ프레시안(선명수)

▲ 우면산의 나무 뿌리가 도로 한복판에까지 쓸려왔다. ⓒ프레시안(선명수)

▲ 토사가 밀려온 집. ⓒ프레시안(선명수)

▲ 산 중턱에 있던 컨테이너와 공사 장비가 주택가까지 쓸려왔다. ⓒ프레시안(선명수)

현재 남부순환로 일대는 군부대와 포클레인 등을 동원해 복구 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오후 7시 30분 현재까지 전기가 공급되지 않아 이 일대 주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갑자기 닥친 어둠에 밤부터 다시 폭우가 내린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주민들의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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