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제 기업은 이윤을 획득하기 위한 활동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사회적 책임을 다 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주요 대기업들이 CSR와 관련된 보고서를 내기시작한 것도 이런 요구에 대한 반응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CSR에 대한 토론은 거의 없었다. 더구나 기업들이 스스로 내세우는 CSR 활동에 대한 평가는 매우 부족하다. 이런 상황은 우리 사회에서 CSR의 의미가 제대로 인식되지 않았거나 오도될 가능성을 안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업들 CSR 강조하지만…
이런 가운데 우리 기업들의 CSR 활동에 대해 전면적으로 비판하는 글이 발표돼 주목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노광표 부소장은 최근 발간된 노동전문 월간지 <노동사회>에 기고한 글에서 우리 기업의 CSR 활동에 대해 "이미지 개선 작업에 불과하다"고 혹평했다.
노 부소장은 "현대·기아자동차, 삼성SDI, 포스코 등은 다른 기업들보다 CSR의 수용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공통적으로 CSR의 본래 취지를 왜곡하는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CSR는 기업의 책임은 이익 증대에만 있다는 시각을 배격하며, 기업의 성과를 평가할 때 사회적 성과, 환경적 성과 등을 함께 고려한다. 특히 CSR는 주주, 종업원, 노조, 소비자, 공급자, 하청기업, 지역사회 모두를 고려한다.
하지만 이런 기준에 비춰 우리 기업들의 CSR 활동은 매우 불충분하다는 것이 노 부소장의 생각이다. 특히 특정 사안이나 주제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노 부소장은 지적했다.
그는 "CSR의 주된 지표 중 '윤리경영', '사회공헌', '투명경영' 분야에는 (우리 기업들이) 관심을 보이나, '지배구조', '환경', '인권', '노동' 분야는 아예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포스코 식 CSR
노광표 부소장은 CSR를 잘 하고 있다는 평가를 듣기도 하는 포스코를 예로 들었다. 노사관계 전문가인 노 부소장은 포스코의 노사관계를 들여다보면서 이 기업의 CSR 활동이 지닌 한계를 짚어냈다.
그는 "포스코는 CSR 경영에서 다른 국내 기업보다 비교적 앞선 예로 꼽힌다"며 "하지만 포스코의 CSR는 다른 국내 대기업들과 유사하게 유독 노사관계 및 노동조합에 관해서는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 근거로 포스코가 작성한 <2005년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들었다. 그는 "포스코의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는 '아동노동 및 강제노동'에 대해서는 매우 상세하게 설명하면서도 정작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설명은 누락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 부소장은 이어 "국제기구의 기업 CSR 평가에 들어가는 노동지표들은 공통적으로 '노동자의 결사의 자유 및 단체협약의 자유 보장', '차별 금지' 등을 포함하고 있다"며 "이런 점에서 포스코의 CSR는 다른 부분의 긍정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여러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했다.
변명만 늘어놓다가 두 손 두 발 든 나이키
노 부소장은 하청업체 노동자들을 외면하다가 시민사회의 거센 비판에 곤욕을 치르고 결국은 하청업체 노동자들에 대한 자사의 책임을 인정한 나이키의 사례를 통해 포스코식 CSR의 한계를 지적했다.
노 부소장에 따르면, 나이키는 1990년대에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한 시민사회단체들의 비난에 대해 처음에는 강하게 받아쳤다. "우리 회사가 공장을 소유하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 공장에서 일하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을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이키는 또한 "우리 회사는 제3세계 노동자들에게 빈곤을 탈출할 '기회의 사다리'를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나이키의 버티기는 지난 1996년 한 잡지의 표지에 12살짜리 파키스탄 소년이 나이키의 로고가 새겨진 축구공을 바느질하는 사진이 실리면서 끝이 났다. 이 사진은 미국과 유럽 사회를 충격과 분노에 빠지게 했고, 이같은 분노는 곧 나이키의 주가와 판매량에 영향을 미쳤다. 나이키가 손을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던 것이다.
그제서야 나이키는 하청업체 관리와 노동통제의 관행을 혁신적으로 바꾸는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노 부소장은 "사실 나이키는 이미 1992년에 만든 기업윤리규범의 일환으로 선진적인 노동규범을 갖고 있었다"며 그러나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는 '멋진 윤리규범'도 종잇조각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진정한 CSR을 위한 조건은?
노광표 부소장은 과거에 나이키가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조건에 대해 변명을 늘어놓았던 것처럼 지금 포스코는 하청업체 건설노동자들의 노동환경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포스코가 공사 발주단가를 예년보다 낮춘 데 이어 원청업체인 포스코건설이 공사대금을 삭감했기 때문에 건설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던 만큼, 포스코는 포항 건설노조 사태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노 부소장은 지적했다.
노 부소장은 "포스코의 CSR에서 이제 건설노동자들은 영원히 배제돼야 할 사람들이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면서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CSR의 핵심은 이해관계자들과의 '소통'에 있다. 몇 십억, 몇 백억의 기부가 중요한 것도 아니고 수 백, 수 천 쪽은 보고서가 중요한 것도 아니다. CSR를 추진하는 사람들이 진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노동자, 지역주민, 소비자, 투자자, 시민단체, 협력업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의사소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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