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문재인 파동으로 극에 달했다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던 당청갈등이 다시 재연되는 양상이다. 이번 갈등의 표면적 키워드는 '바다이야기 관련 대국민 사과'와 '사학법 재개정' 이지만 지난 6일 당정청 회동은 '갈등의 봉합'에 불과했던 지라 터질 것이 또 터진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게다가 당청 간 소통 명목으로 출범한 '당정청 고위급 4인 모임'에도 불구하고 불협화음이 계속 노출돼 '백약이 무효'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당청 '4인 회동'에서 말 안 통하고 각자 딴 소리만
25일 우리당 김근태 당의장은 "(바다이야기 파문과 관련해) 시급히 (정부가) 국민에게 머리 숙여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이미 총리가 문화관광부를 방문했을 때 사과를 한 만큼 다시 한 번 분명한 대국민 사과를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사실상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재차 요구한 것이다.
이는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은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는 것이 먼저"라며 "대통령이 사과할지 총리가 할지 아니면 장관이 사과할지는 그 다음 문제"라고 밝힌 데 대한 반박으로 해석된다.
이런 갈등은 지난 23일에 당정청 고위급 인사 4인 회동의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회동에 참석한 김근태 당의장, 김한길 원내대표, 한명숙 총리, 이병완 비서실장은 대국민 사과 문제를 놓고 팽팽한 의견대립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이 회동에서 사학법 재개정 문제도 논의됐다. 이 실장이 정기국회에서 한나라당의 협조를 얻기 위해 사학법 재개정 문제를 원만하게 처리해 줄 것을 여당에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4월 말 대통령이 이재오 한나라당 당시 원내대표, 김한길 우리당 원내대표를 불러놓고 김 원내대표에게 양보를 종용한 데 이어 두 번째다.
하지만 이같은 '양보 요구'에 당 측 인사들은 난색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 실장은 24일 기자간담회에서 "사학법 재개정 문제에 대해 우리당이 정치적 합의를 위한 정치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고 다시 압박을 가했다. '대통령의 사과' 문제와 마찬가지로 이 문제도 조율이 안 되니 언론을 통해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결국 이는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실린 것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정태호 청와대 대변인은 "당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사학법에 대해 양보 요구를 하는 것은 대통령의 의중이 실린 것 아니냐"는 질문에 "비서실장의 발언 수준에서 생각해 달라"라고 말해 사실상 시인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우리당은 24일 밤 비대위 간담회에서 "사학법 재개정은 없다는 당론에는 변함이 없다"고 다시 못을 박았다.
결국 의견조율과 소통을 위해 마련한 '4인 회동'에서 아무런 조율도 이뤄지지 못하고 돌아서서 다들 자기 목소리만 높이며 상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셈이다.
'뉴딜'과 '비전 2030'에서부터 삐그덕
사실 김병준, 문재인 파동이 총정리된 지난 6일 당정청 회동에서 대통령이 당내 반발을 '진압'하고 '고위급 4인 모임'을 출범시켰지만, 그때도 전망은 썩 밝지 않았다. 회동 이후에도 당과 청와대에서는 각자 자신들에게 유리한 발언 내용만 흘렸고, 그 과정에서 특히 김근태 당의장은 체면이 상당히 깎였다.
그 뒤 노 대통령은 '탈당은 없다'는 수준을 넘어 '임기 후에도 당과 함께 하고 싶다'거나 '퇴임 후에는 당 고문을 맡고 싶다', '죽을 때까지 당과 함께할 것' 등의 발언을 통해 당에 대한 진한 애정을 과시해 왔다. 하지만 이런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당 쪽의 반응은 썰렁하기만 하다.
오히려 청와대가 야심차게 준비한, 복지 강화를 골자로 하는 장기 재정운용 계획인 '비전 2030'에 대해 대통령이 "당에 주는 선물"이라고 한껏 의미를 부여했지만 당의 모든 계파가 일치단결로 반대해, 결국 이 계획의 발표가 연기되고 말았다.
이는 김근태 당의장의 야심작인 '뉴딜'에 대한 청와대와 정부의 심드렁한 반응과 반대 방향에서 유사한 느낌을 주는 대목이다.
與 의원 "양정철 비서관 말에 믿음이 안 간다"
25일 국회 운영위는 이병완 비서실장, 이백만 홍보수석, 양정철 비서관 등을 불러놓고 바다이야기 파문, 낙하산 인사 논란 등에 대해 청문회 수준의 압박을 펼쳤다.
이 자리에서 우리당 주승용 의원은 양 비서관을 비판하며 "양 비서관은 과거 청와대 행사에 대해 기업체에 협찬을 요구하며 전화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는데, 처음에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하다가 나중에는 시인했다"며 "그런 전력 때문에 지금도 양 비서관의 말에 믿음이 안 간다"고 매섭게 비판했다.
현 정부 출범 초기 정무비서관, 국내언론비서관 등을 지내며 한동안 청와대 생활을 했던 김현미 의원도 최근의 낙하산 인사 파문을 문제 삼으며 "코드 인사를 하더라도 업무평가가 좋게 나왔다면 국민들이 반대할 리 없다"고 꼬집었다.
우리당 의원들이 청와대를 바라보는 시각을 극명하게 드러낸 대목이다. 이 자리에서 이병완 비서실장은 "정무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청와대 내에) 정무팀을 만드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실장 말대로 청와대 내에 정무팀이 신설된다 할지라도 과연 그것을 통해 이런 난맥상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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