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내년 1조5000억 원 규모의 국가재정을 투입해 대학 등록금을 15% 이상 낮추는 등록금 인하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이 같은 대책에 합의하지 않았다고 불쾌감을 드러냈고, 문제의 당사자인 대학생들조차 '생색내기식 대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야심차게 발표한 등록금 인하 대책이 여기저기서 공격받고 있는 모양새다.
23일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는 이주영 정책위의장, 임해규 등록금대책TF 팀장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2014년까지 약 6조8000억 원의 국가재정을 투입해 등록금 부담을 30% 이상 경감하겠다고 발표했다.
2014년까지 6.8조 투입해 등록금 30% 인하
한나라당은 우선 2012년 1조5000억 원의 국가재정과 5000억 원의 대학 자체 장학금을 확충해 올해보다 등록금을 15% 이상 낮추기로 했다.
이어 2013년엔 2조3000억 원, 2014년에는 3조 원을 추가적으로 투입해 등록금을 현재보다 30% 이상 인하할 예정이다. 향후 3년간 총 6조8000억 원의 국가재정과 1조5000억 원의 대학 장학금을 확충해 등록금을 현재 수준보다 30% 이상 낮추겠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일단 내년도 투입될 1조5000억 원의 재정 중 1조3000억 원을 실질 등록금 인하에 사용하고, 나머지 2000억 원은 내년 초 폐지될 예정이었던 차상위계층 장학금 지원, 든든학자금 개선(군 복무 중 이자 면제) 용도로 사용하기로 했다. 또 차상위계층 장학금 지급과 함께 2014년까지 소득 1분위의 학생들도 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저소득층을 위한 장학금 확충안을 마련했다.
이밖에도 대학의 자구노력의 일환으로 적립금·기부금 등을 활용한 교내 장학금 확충 계획을 사전에 공개토록 하고, 대학이 등록금 자체 인하율을 사전에 제시하는 경우 등록금 인하에 투입되는 국가재정 일부를 인센티브 재원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그간 논란이 됐던 부실 대학 퇴출 등 대학 구조조정 방안 역시 마련되고, 대학 기부금에 대해선 다양한 세제 혜택을 추진키로 했다.
황우여 원내대표는 "한나라당이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노력의 결과 이번 안이 발표됐지만, 국민들이 보시기엔 아직 미흡할 수 있다"면서 "그러나 이 방안이 국가재정 지원의 최대치라는 것을 이해해주길 당부드린다. 등록금 부담 완화를 위한 첫걸음으로 봐 달라"고 말했다.
기재부 "등록금 재정 지원 합의 안 됐다"
문제는 이 같은 대책이 어디까지나 '한나라당의 안'이라는 점이다. 당장 정부는 한나라당의 이 같은 발표에 불쾌감을 표시하고 있다. 당정은 22일 밤 긴급회의를 가졌으나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합의안 도출에 실패했다.
기획재정부는 방문규 대변인은 이날 긴급기자회견을 통해 "(한나라당과) 협의는 하고 있지만 합의가 이뤄진 것은 아니다"라며 "세부적인 실행 계획을 수립하려면 갈 길이 아직 멀고, 특히 재정지원 규모는 짚어볼 점이 많아 후속 협의가 필요하다"고 한나라당의 대책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에 대해 이주영 정책위의장은 "이번 방안은 우리 당과 정부 사이에서 협의를 해온 결과"라며 "당정이 논의하는 과정에서 큰 틀에서 합의는 했지만 최종적인 합의는 아니다. 앞으로 추가적인 협의를 거쳐서 일치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청와대 "영수회담 전에 꼭…"
청와대 역시 뾰로통한 분위기다. 이날 오전 청와대 관계자는 "이명박 대통령과 손학규 대표의 영수회담 의제 가운데 등록금 인하 방안도 들어가 있다"며 "회담의 의미가 여야정이 머리를 맞대고 좋은 방안을 내고자 하는 것인데, 야당 대표나 야당 상황도 생각해줬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나라당이 당정협의를 거쳤다고 하지만 다음주 초 야당이 말할 것도 있다"며 "현재 실무 협상단이 협의 활동을 시작했는데, 그런 것도 감안했어야 하지 않았나"라고 지적했다.
한나라당의 발표 직후 김두우 홍보수석은 "당에서 '최종적인 합의에 이르렀다'고 발표하지는 않았다"고 강조했다. 최종 당정합의안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김 수석은 "고차원적이다. 여당의 입장도 세워줘야 하고 야당 대표 입장도 고려해줘야 하고, 풀어가는 게 쉽지 않은 사안이다"라고 토로했다.
'청와대가 당에 발표를 미룰 것을 요청하지 않았나'는 질문에 김 수석은 "그런 설명은 따로 하지 않겠다"고 직답을 피하면서 "당 발표 내용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노골적으로 한나라당의 발표를 비판하지는 않는 상황이지만, 이 대통령은 이미 반값 등록금에 대한 '불가' 입장을 시사한 바 있다. 청와대 다른 관계자는 "교과부 쪽에선 여당 안에 상대적으로 긍정적이라면 기획재정부 쪽이 부정적인 것 같더라"라고 전했다.
민주당 이용섭 대변인은 "여야 영수회담이 예정된 이 시점에 서둘러 졸속 대책을 발표한 한나라당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회담을 몇일 앞두고 부랴부랴 발표해서 영수회담에 찬물 끼얹으려는 행태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대학생단체 "한나라당 안은 생색내기용"…내일 대규모 촛불시위
한편에선 등록금 문제의 당사자인 대학생과 학부모들이 반발하고 있다. '반값 등록금' 촛불시위를 주도해온 한국대학생연합은 같은 시각 한나라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나라당의 안은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며 "장학금 확충 재원 또한 지난해 한나라당의 날치기로 폐지됐던 차상위계층 장학금을 복원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대련은 24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대규모 촛불집회를 열 계획이다.
'등록금 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네트워크'도 "대다수 국민들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등록금과 과중한 고등교육비 고통을 해결하는 데에는 턱없이 부족한 대책"이라며 "이는 소득 하위 50% 학생들을 대상으로 장학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힌 애초의 안보다도 후퇴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 최미숙 대표는 "여기저기서 하는 말이 다른데다 어쨌든 돈을 지원해야 하는 게 기재부인데 아직 합의가 안 됐다고 하니 어디를 믿어야 하나"라며 "내년에 기재부가 여건에 따라 이 예산을 없앨 수도 있고, 말 바꾸기가 가능한 상황에서 2014년까지 시간을 벌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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