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검찰은 힘이 세다. 원내 과반수이상의 의석을 가진 여당조차도 검찰의 위세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 신세일 따름이었다.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에서 여야가 합의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가 여당인 한나라당의 반대로 무산될 처지에 놓인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폐지는 기정사실처럼 보였다. 그러나 검찰이 완강하게 저항하는 데다 청와대가 검찰의 손을 들어주자 한나라당의 입장이 표변했다. 중수부 폐지와 관련된 논의가 지속되는 동안 내내 침묵을 지키던 청와대가 결정적인 국면에 검찰의 손을 들어준 이유는 자명하다. 이미 레임덕이 시작된 이명박 대통령은 검찰마저 등을 돌리면 국정운영이 어렵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한나라당으로서는 사개특위를 만들어 중수부 폐지를 야당과 합의까지 한 마당에 이를 번복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인 셈인데, 중수부 폐지와 관련해 갈팡질팡하는 여당의 행태는 한국사회의 비루한 현실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추레한 현실의 구체적인 내용은 검찰이 청와대를 움직여 여당의 입장을 정반대로 바꿀 만큼 힘이 있다는 사실과 여전히 여당이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입법부의 권능과 역할을 독립적으로 수행하지 못하고 대통령의 결정에 좌우된다는 사실로 구성된다.
행정부 소속 일개 부의 외청(外廳)에 불과한 검찰의 눈치를 헌법기관인 대통령이 보고 그 대통령의 간접적인 지시에 입법부의 가장 큰 덩어리인 여당이 끌려 다니는 한심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중수부 폐지와 관련된 소극(笑劇)에 국가기관 상호간의 견제와 균형, 권한 배분 등의 헌법적 원리가 작동된 흔적은 없다.
국회 의석 분포를 볼 때 여당이 반대하는 마당에 '대검 중수부 폐지'가 실현될 가능성은 없다. 검찰로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검찰의 항변과는 달리 중수부가 폐지된다고 해서 검찰이 정치인이나 재벌 등에 대한 수사를 못할 리는 없다. 더구나 중수부 폐지에 대한 대안도 심도 있게 논의되고 있는 중이었다.
검찰이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명분과는 달리 검찰은 기능상의 장애 때문이 아니라 단지 검찰이 휘두르고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에 제동이 걸리는 듯한 모양새를 보이는 것이 싫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검찰이라는 국가기관의 권한은 팽창의 기억만 있을 뿐 축소의 경험은 없다. 중수부 폐지에 극력 반대한 검찰 내의 강경파들은 중수부 폐지를 검찰 개혁의 시발점으로 여겼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검찰 개혁의 종착역은 수사권과 기소권에 대한 독점ㆍ배타적 권한의 해체일 것이다.
검찰은 중수부 폐지를 사실상 백지화시킴으로써 검찰 개혁의 예봉을 꺾는 한편 대한민국이 검찰공화국이라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깊이 각인시키는 부수적 효과도 얻었다. 당장은 검찰이 파워 게임에서 승리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검찰은 국민들에게 오만하기 그지없는 초법적 존재로 비춰지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중수부 폐지 사태를 보면서 검찰을 헌법기관의 통제와 개혁을 거부하는 조직으로 인식하게 됐다. 입에 담기도 어려운 변명으로 불리며 가뜩이나 국민들에게 불신의 대상이 된 검찰에게 중수부 폐지사태는 악재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후회는 먼저 오지 않는다"는 격언이 있다. 후회할 일을 미리 예방하는 조직이나 개인은 지혜롭고 복되다. 불행히도 대한민국 검찰에게는 그런 지혜와 복이 없는 것 같다. 지금 올리는 개가(凱歌)가 머잖아 비통의 신음으로 바뀔 때 검찰은 비로소 후회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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