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퇴역 주한미군들의 인터넷 사이트 '한국전 프로젝트(Korean War Project)'에 따르면, 지난 1977년부터 1978년까지 미 육군 2사단 사령부에서 복무한 래리 앤더슨은 "그 무렵 2사단 전체 창고에 저장돼 남아있는 모든 다이옥신을 없애라는 명령이 내려졌다"며 "우리 부대만이 아니라 전 부대에 내려진 명령이었다"고 밝혔다.
그가 근무했던 미 육군 2사단은 임진강 북쪽과 판문점 남쪽의 서부전선을 방어하는 부대로, 경기도 파주와 연천, 문산, 동두천, 의정부, 포천 등에 기지가 분산 배치돼 있다. 그는 한국전 프로젝트가 주한미군의 고엽제 피해 현황 파악을 위해 개설한 게시판에 지난 2009년 8월 이 같은 글을 올렸다.
"미군, 한국 곳곳에 고엽제 뿌렸다…미국 정부 거짓말 하고 있어"
의무병으로 1968년에도 의정부 미군기지 '캠프 스탠리'에서 복무했다는 앤더슨은 "미국 정부가 한국의 여러 지역에 걸쳐 고엽제를 살포됐음에도 이를 계속 부인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캠프 스탠리에 복무하면서 '캠프 머서(부천시 오정동에 있었던 옛 미군기지)'에도 파견 근무를 나가 부대원의 건강을 챙기는 일을 했다"며 "1968년 봄부터 여름까지 캠프 내 화장실, 막사, 식당 등 모든 건물 주변에 고엽제를 뿌렸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비무장지대(DMZ)와 정확히 장소를 알 수 없는 여러 곳에서 부대와 함께 고엽제를 살포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퇴역 미군인 래리 킬고어도 이 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1960년, 1970년대에 걸쳐 비무장지대뿐 아니라 한국의 다른 지역에도 광범위하게 고엽제가 살포됐다"고 주장했다.
지난 1973년 동두천의 '캠프 케이시'에서 초병으로 근무했다는 미키 퍼크스는 "남쪽에 있는 미사일 기지 보초를 서기 위해서 몇 차례 파견 근무를 했는데, 기지 주변 지역의 나무나 풀이 자라는 것을 막기 위해 많은 제초제를 뿌렸다"면서 "그때 그것이 고엽제라고 들었다"고 주장했다.
꼬리 무는 증언, 일치하는 시점…1978년에 무슨 일이?
앤더슨이 밝힌 다이옥신 제초제 전량 폐기 명령이 하달된 시점은 역시 퇴역 군인인 스티브 하우스가 경북 왜관의 캠프 캐럴에 고엽제를 매립했다는 1978년과 시점이 일치한다.
앤더슨은 당시 제초제 폐기 명령이 떨어진 이유를 밝히진 않았지만, 1978년은 유독성 화학물질 매립으로 대형 환경 사고를 초래했던 '러브 캐널(canal·운하)' 사건이 큰 파장을 일으켰던 해라 그 사건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 러브 캐널 인근 지역주민들이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wikipedia.org |
이 사고가 드러나면서 미국 정부는 1978년 이곳을 '환경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235가구의 주민을 이주시켰으며 주택과 학교를 철거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 내에서는 물론 한국을 비롯한 해외의 미군기지에서도 유해 화학물질을 처리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 1978년은 베트남전(戰)에 참전자들이 고엽제로 인한 각종 질환을 호소하며 소송을 제기하는 등 고엽제 피해가 국제사회에 거론되기 시작한 해라서, 미군이 이런 문제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한국에서도 서둘러 조치에 나섰을 것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그러나 미군이 이러한 이유로 급하게 고엽제를 폐기했다고 하더라도 미국 정부의 주장처럼 자국으로 회수했는지, 또는 베트남전 당시처럼 인근 해양에 투기했는지, 최악의 경우 퇴역 미군들의 주장처럼 한국 어딘가에 매립했는지 여부는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다.
한편, 경북 왜관 지역의 고엽제 매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미공동조사단이 이르면 26일 구성될 예정이다. 당초 우리 정부는 25일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환경분과위원회를 열고 조사단 구성에 대한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었지만, 미국 측의 요청으로 하루 연기해 26일 회의를 열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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