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룡 전 문광부 차관 경질 이후 계속된 '인사압력' 논란에 대해 청와대가 작심하고 반격에 나섰다.
전해철 민정수석과 박남춘 인사수석은 16일 나란히 청와대 기자실을 찾아 약 한 시간에 걸쳐 '민감한 발언'까지 서슴지 않고 유 전 차관의 경질 배경, 아리랑 TV 부사장 인사, 국립영상자료원장 인사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전해철 민정수석은 "유 전 차관의 '교체'는 신문유통업 사업 추진 부진에 대한 정무적 책임이 있고 민정수석실 조사 과정 및 그 이후에도 부적절한 언행을 하는 등의 사유 때문"이라고 말했고 박남춘 인사수석은 "아리랑 TV, 영상자료원 인사에 대한 홍보수석실의 청탁 논란은 사실이 아니고 정당한 업무 협의였다"고 결론지었다.
"문제 있는데 왜 차관시켰냐?"…"이런 말 하면 안 되지만 사실 2순위였다"
전해철 민정수석은 "정무직 인사 사유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 청와대의 일관된 입장"이라면서도 "하지만 근래 언론보도나 야당의 문제제기를 보면 본질이 아닌 인사 청탁 문제가 강조되고 정치공세까지 이뤄지고 있어 민정수석실의 조사 배경과 결과에 대해 설명 드리겠다"고 운을 뗐다.
전 수석은 "지난 5월경에 신문유통원 운영이 심각하다는 제보가 많이 들어와 조사에 착수했고 6월 초부터 기획예산처, 신문유통원, 문광부, 홍보수석실을 대상으로 광범위하게 조사했다"며 "아리랑 TV 부사장 인사에 대해서도 조사했지만 그 부분에 대해선 정당한 인사협의였기 때문에 유 전 차관이나 이백만 홍보수석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전 수석은 "결국 7월 정기 인사를 앞두고 유 전 차관은 기본적인 부처 조정, 설득능력이 부진하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조사 과정에서 (유 전 차관이) 상당히 부적절한 언행을 했다"며 "신문유통원 문제 때문에 조사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 '나를 조사하는 것은 청와대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를 해서 교체하게 됐다"고 밝혔다.
전 수석은 "신문유통원 문제를 조사하다 보니 (청와대와 문광부 사이에) 상당히 이견이 존재했고 그 과정이 미흡했던데 그 이유를 찾다보니 아리랑 TV 부사장 자리에 대한 이견과 갈등상태가 확인됐다"면서 "이백만 홍보수석, 양정철 비서관이 정당한 업무 협의를 한 것이고 그 과정에 '배 째' 발언 같은 것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유 전 차관이 청와대 386을 비방한 것도 인사의 한 요인이라는 주장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 전 수석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면서도 "2004년 2월 유 전 차관이 흥분해서 청와대 비서실에 대해 부적절한 언행을 한 것이 있고 우리가 문제 삼지는 않았지만 인사 데이터베이스에는 다 남아 있다"고 말했다.
전 수석은 "유 전 차관이 정책홍보실장 시절부터 청와대나 기획예산처 등과 조정하고 설득하는 능력이 부족했다"고 덧붙였다.
"정책홍보실장 시절부터 업무 능력이 부족했는데 왜 지난 1월에 차관으로 승진시켰냐"는 질문에는 박남춘 인사수석이 답했다.
박 수석은 "문광부 내 상하급자의 다면평가도 좋았고 국무조정실의 평가 등을 종합한 결과 당시 유 전 차관의 평정은 전체 2위였다"면서 "이제야 하는 말인데 당시 1순위자는 도덕성 검증에서 문제가 드러났고 정책홍보실장으로 유 전 차관이 유통원 업무에 대해서는 문제가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내밀한 이야기까지 소상히 밝혔다.
"헌법상 모든 인사권은 대통령에게 있다"
이어 박 수석은 인사압력 논란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박 수석은 "헌법상 모든 인사권은 대통령에게 있는 것이고 바빠서 다 못하니까 법률로 장관, 산하기관장에게 위임하는 경우가 많다"며 "물론 위임된 권한에 대해 기관장의 의견을 존중하지만 청와대는 항상 모니터하고 관리할 의무가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수석은 "과거 정권처럼 '소통령', '왕수석' 같은 비선(秘線)에서 압력을 넣는 것은 문제가 되지만 지금은 시스템에 의해 투명하게 인사가 협의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박 수석은 "인사 청탁은 해당 직위와 무관한 사람이 대상자의 능력 유무와 무관한 사람을 그 자리에 밀어 넣기 위해 적법한 절차를 무시하고 압력을 넣는 것"이라며 "반면 정당한 인사협의와 추천은 후보자풀을 확대하기 위해 인사권자에게 적절한 사람을 소개하고 인사권자에게 판단케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백만 홍보수석, 양정철 비서관이 아리랑 TV 부사장, 영상자료원장 자리에 '추천'한 L씨, K씨가 다 '적절한 인물'이냐"는 질문에 전 수석과 박 수석은 "그렇다"고 입을 모았다.
"영상자료원장에 추천한 인사는 1차 평가에서 탈락했고 최종까지 올라갔다가 청와대에 의해 반려당한 인사들에 비해 경력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박 수석은 "그 분(L씨)이 1980년대부터 국립극장, TV 등 문화예술계에서 쭉 일한 분이라 영상자료원장 자리 정도는 충분히 가서 영화인들과 대화도 하고 직원들과 이야기 할 수 있는 분으로 판단해서 추천한 것"이라며 "다만 그 분도 (능력이) 충분한데 더 휼륭한 사람들이 많아서 최종 3배수 안에 들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종 후보에 올라갔다가 청와대에서 반려당한 세 사람의 민감한 탈락사유를 소상히 언론에 밝힌 이유가 뭐냐"는 질문이 이어지자 전해철 민정수석은 "정말 이런 것은 공개하지 않는 것이 맞지 않지만 우리가 매도되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공개했다"면서도 세 사람의 탈락사유를 다시 한 번 자세히 설명했다.
전 수석은 "뇌물수수나 사기, 위장전입을 통한 농지 취득, 성범죄 전력에 대해서는 그간 예외 없이 처리해 왔는데 (영상자료원장 최종후보) 세 분도 여기에 상당수 포함된다. 뇌물수수나 여직원에 대한 성적 발언은 우리 검증기준에 안 맞는다"고 말했다.
부작용 감수한 청와대…'누수현상' 없어질까?
두 수석의 자세한 설명과 주장이 이어진 이후 "청와대 측 주장대로라면 아무 문제도 없는데 유 전 차관의 일방적 발언으로 피해가 심각해졌다는 것으로 들린다. 법적 대응을 할 계획이 없냐"는 질문이 나왔다.
이에 대해 전해철 민정수석은 "(유 전 차관에 대해) 법적 대응 검토는 안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배 째' 발언에 대한 근거 없는 이야기를 홈페이지에 올린 한나라당 고흥길 의원에 대해서는 대응할 것"이라고 답했다.
"유 전 차관이 이런 식으로 대응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는 전 수석은 "사실 그 부분이 쉽지가 않은데 신문유통원에 대한 (민정수석실) 조사를 (인사거절에 대한) 보복 행위라고 판단해서 격앙된 것이 아닌 가 싶다"고 답했다.
이 사건의 핵심 당사자인 이백만 홍보수석, 양정철 비서관은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핵심 수석 두 사람이 나와 소상히 전말을 전함으로서 청와대에서 나올 이야기는 거의 다 나왔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청와대가 유 전 차관 뿐아니라 영상자료원장 물망에 오른 인사들에게까지 사생활 침해와 역풍의 가능성을 감수하고 '탈락 사유'를 자세히 공개하고 나선 것은 이 문제가 일반적 인사잡음이 아니라 야당의 '정치공세'로 확장되고 있어 조기차단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짐작된다.
또한 임기 말에 접어들면서 이완되기 쉬운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군기잡기' 의도도 만만찮아 보인다. 이에 대해 청와대의 한 핵심관계자는 "유통원 정책도 정책이지만 정무직 인사가 청와대 (민정수석실) 조사에 대해 근거 없는 이야기를 여기저기 하고 다닌 것은 책임 있는 자세라고 판단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런 '인사누수 현상'은 언제든지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중론이다. '(인사)협의'냐 '압력'이냐는 어차피 경계가 모호한 데에다가 대통령 임기 만료가 다가올수록 챙겨야 할 사람 숫자는 늘어나는 반면 관료들은 '차기'를 생각해 몸을 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실은 차관 승진 때도 2순위였다"는 등의 청와대 역공에 대해 유 전 차관이 고개를 숙이고만 있을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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