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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 오늘 불면(不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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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 오늘 불면(不眠)이다

[이 많은 작가들은 왜 강으로 갔을까?]<3>강은교 시인

그 젊은 여자는 강 앞에 섰다. 강 건너의 둔덕과 가장 가까운 물목을 사람들이 건너는 것이 어둠 속에서 희끗희끗 보였다. 그 여자는 한숨을 쉬며 강을 바라보았다. 아직 캄캄한 새벽, 아마 곧 동이 터올 것이다. 태양이 일어서기 전에 저 강물을 건너야 하는데……. 그 여자는 등에 업은 아기를 돌려 안으며 다시 한숨을 쉬었다. 아기의 입을 막았다. 아기는 꼼틀꼼틀 보채며 곧 울 태세였던 것이다. 아기가 울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강변에는 곳곳에 러시아 병사가 서 있었다. 언제 총을 쏴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한 노인이 다가왔다. 그는 속삭이듯 말했다.

"아주머니, 왜 그렇게 서 있소? 강을 건너려고?"
"네, 강을 건너려고 하는데 건널 방법이 없군요. 키가 너무 작아서…… 물에 빠져버릴 거예요."
젊은 그 여자는 아기의 입에서 잠깐 손을 떼었다가 다시 황급히 막으면서 울 듯이 말했다.

"내가 건네줄 테니 얼마 주시겠소?"
그 노인은 옆에 세워놓은 지게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젊은 여자는 가진 돈을 탈탈 털어 노인에게 건네며 거의 애원하듯이 속삭였다.
"얼마 안 되지만, 이거라도……."

고향 집(그 여자의 고향은 홍원이란 바닷가 소읍이었다)에서 몰래 나올 때 가지고 나온 돈은 기차가 있는 도시(함흥)까지 오는 기찻삯과 여관비로 거의 다 써버렸기 때문에 남은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하긴 기차를 탄 것만도 다행이었다. 남쪽으로 가려는 사람들 탓에 기차는 만원이었기 때문이다. 거의 아비규환이었다.

"좋소."
그 여자는 아기를 더욱 힘주어 안으며 지게에 올라앉았다. 지게에 올라앉으니 어둠이 더욱 몸을 덮치는 것 같아 바들바들 몸이 떨려왔다. 조마조마했다. 어느 순간 들킬지 몰랐다. 노인은 조심조심 물살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바람이 유난히 차가왔다.

"다 왔소. 천행이오, 애기 엄마. 잘 가시오."
노인은 젊은 여자가 지게에서 내리는 것을 도와주며, 이번에는 목소리를 꽤 힘차게 내어 말했다. 그 여자는 그새 쌔근쌔근 잠이 들어 있는 아기의 볼을 힘주어 만지며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묘한 표정으로 강 건너를 바라보았다. 산이며 들을 가슴에라도 넣듯이 오래오래.

"곧 돌아올 거야. 아버지만 만나면 돌아올 테니, '큰애'야 할머님 말씀 잘 들으며 있거라."
그 여자는 돌아섰다. 아기를 추슬러 다시 잘 업으며 그 여자는 신을 벗어들었다. 이젠 돈도 한 푼 없었다. 한 손에 든 보퉁이와 벗어든 신발이 그 여자가 가진 것 전부였다.

그 젊은 여자는 나의 어머니였다. 그 강은 임진강이었으며, 임진강을 지게로 건너 도착한 그 둔덕은 동두천이었다. 아기는 바로 나였고. 그래서 어머니는 가끔 말씀하곤 하셨다. "백일 때부터 너는 참 똑똑한 셈이었지. 우리 형편을 얼른 눈치채고 울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네가 울기라도 했으면 어쩔 뻔했니……"라고. 그러나 그때 어둠 속에 출렁이던 임진강 강물 앞에서 돌아선 후, 어머니는 다시는 그 강물을 건너지 못하셨다. 젖이 필요 없었기에 집에 두고 떠났던 '큰애'와 다시는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통일이 되면 우리 고향에 놀러가자. 쌀가마를 이고 가면 아주 좋을 거다. 거기 가자미는 얼마나 맛있다고……. 여기 가자미는 가자미가 아니야. 아 얼마나 물이 맑았다고. 모래밭은 또 얼마나 부드러웠는지……."

눈을 가늘게 뜨고 속삭이듯 말씀하시던 어머니의 목소리. 어찌어찌 어머니는 아버지를 만나셨는데, 휴전이 되는 바람에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시고 만 것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가호적 세대가 되고 말았고, 고향 땅을 밟아보지 못한 채 백일에 동두천을 건넌 나는 고향 없는 세대가 되고 말았다. 그 후 몇 개의 흐름을 더 지나오면서, 나는 늙어버렸다. 그러면 이야기를 더 계속해볼까. 나라는 사람이 어떻게 임진강―아마도 거기엔 수달, 가는 돌고래, 말똥가리, 꾸구리도 있었으리라―을 지나 낙동강, 또는 바다―게와 은모래가 출렁거리던―앞에 흐르며 서 있었는지를, 삶이 어떻게 흐르는 강물이며 바다였는지를, 그리고 그것들이 어떻게 오염되어갔는지를, 그것들이 오염되어갈 때 나의 삶은 얼마나 시커먼 가슴이 되었는지를.

ⓒ최항영

대학을 나온 다음 나는 어찌어찌 부산에서 살게 되었다. '교수 초빙'이 되었기 때문이다. 낙동강이 출렁이는 하단이란 곳에 나는 짐을 풀었다. 그때 낙동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어떤 학생의 집에 전세를 들었는데, 일몰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일몰에 비쳐 강물은 붉은색으로 물들곤 했다. 파도도 붉게 핀 꽃이 떨어지듯이 부서지곤 했다. 커단 붉은 햇덩이가 산을 넘어 사라지면 강 건너 쪽으로 점점이 불이 켜지곤 했다. 그때 쓴 것이 시집 《붉은 강》의 시들이었다.

물론 그런 광경은 다시 볼 수 없어졌다. 키 큰 아파트가 강을 가로막고 들어섰기 때문이다. 건너편의 갈대밭도, 갈대밭 뒤로 점점이 켜지던 불빛들도. 아마도 그때 그 붉은 낙동강가 갈대숲에는 얼룩새코미꾸리, 재두루미가 날개를 펴고 마악 날려고 하며 서 있었을 것이다.

저물어 붉은 강에는
푸르게 뚫린 창이 두 개 있습니다.

창 하나는 우리의 그리움입니다.
물은 서 있고
아무리 흘러도 꿈은 흐르지 않아
흐르지 않는 것끼리 모여서
창 둘은 우리의 사랑입니다.
바람이 부니
곁에 섰던 어둠들
우르르 흩어집니다.
어둠 속
작은 밝음들도 흩어집니다.

―〈붉은 강 2〉 중에서

그 몇 년 후 나는 바닷가로 가게 되었다. 송도라는 곳이었다. 아름다운 남항의 바다 앞, 나지막한 산 밑에 선 아파트. 그곳은 일출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햇덩이가 수평선 위로 불쑥 떠오를 때는 징소리가 들리곤 했다. 무녀들이 치는 징소리였다. 그때 나는 새벽녘이면 아파트 아줌마들과 조깅을 하곤 했는데 그때 바닷가 길에서 보는 햇덩이의 떠오름은 얼마나 장관이었는지, 햇덩이가 마구 나를 덮치는 느낌이었다고나 할는지. 거기서 나는 북녘의 바닷물이 그리로 흘러오는 것을 그 햇덩이와 함께 보곤 했다. 햇덩이는 말하자면 어머니가 그렇게 맑음을 강조하곤 하시던 북녘 고향 강씨 마을의 바닷물을 업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바다와 햇덩이를 보는 것은 고향을 보는 것이었다. 실향민 아닌 실향민인 내가 고향을 보는 것이었다. 통일을 보는 것이었다. 내가 그리로 온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언젠가 쓴 나의 시가 운명처럼 떠오르곤 했다.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우리가 물이 되어〉 중에서

더구나 송도 건너편 영도와 정박한 배들에 불빛이 켜질 때면 정말 아름다웠다. 한밤중이면 나는 늘 유리구두를 신은 신데렐라가 되곤 했다.

그러다 나는 그 송도와 멀지 않은 다대포라는 곳으로 다시 이사하게 되었다. 다대포, 낙동강과 합수(合水)하는, 말하자면 강물과 바닷물이 몸을 섞는 그곳. 거기도 하단의 낙동강처럼 일몰이 아름다웠다. 학교서 오는 길에 만나는 하구언은 낙동강의 허리를 바람 속에 희게 드러나게 하곤 했고, 그 허리 위에 붉은 햇덩이가 누워 있게 하곤 했다. 붉은 햇덩이에게선 향기가 났다. 물론 지금은 그곳 모래밭에 가득 구멍을 파며 사람이 다가가면 재빨리 구멍 속으로 숨곤 하던 게도 볼 수 없어졌고, 망태 가득 조개를 들고 오던 아낙도 볼 수 없어졌다. 그 대신 한여름이면 쿵쾅거리는 밴드 소리도 요란한 '록 음악회' 같은 것이 모래밭에서 열리고, 캠핑하는 사람들이 모래밭 가득 텐트를 칠 뿐 아니라, 최근엔 거기 분수까지 생겨 일몰 때면 발 디딜 틈도 없어졌다.

게의 단잠이 은모래 허리 위에 얹혀 있다.
따스한 거품 게우며

떠나가는 파도.

―〈게-너무 짧은 사랑 이미지〉 전문

그곳만이 아니었다. 곳곳에서 출렁이던 바다가 매립되고, 강에는 모래와 자갈 채취선의 깃발이 나부꼈다. 갈대로 유명하던 을숙도도 마찬가지. '을숙도에 을숙도는 없고 을숙도라는 이름 또는 추억만 있었다'고 할는지. 낙동강도 더 이상 향기가 나지 않았다. 강물 위를 날고 있는 몇 마리 새의 날개도 안개 속에서 흐리게만 보였다.

나는 이제 산 밑에 산다. 보이지 않는 것을 사랑하기로 했다,고나 할는지. 강물도 바닷물도 보이지 않는 곳, 그러나 보이지 않기에 파도가 더욱 아름답게 출렁이는 강물, 바다.

강은 이제 가쁜 숨을 헐떡인다. 강물과 몸을 섞으며 파도치는 바다도, 잔뜩 웅크리고 누운 섬들도 따라 숨을 헐떡인다. 언제 나의 모래를 퍼갈는지, 내가 안은 물고기며 새들이 배를 뒤집고 나의 몸 위에 소리도 없이 누워버릴는지, 불안에 떨며. 그래서 강은 오늘도 불면(不眠)이다. 바다도 오늘 불면이다. 우리의 삶도 오늘 불면이다.

ⓒ최항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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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강은 오늘 불면이다>(강은교 외 28명 지음, 한국작가회의저항의글쓰기실천위원회 엮음, 아카이브 펴냄). ⓒArchive

그들은 왜 강으로 갔을까. 강 '살리기'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파괴'의 현장에서, 그들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기록했을까.

이제는 막바지로 치달은 4대강 사업에 관한 세 권의 책이 출간됐다. 고은 외 99명이 쓴 시집 <꿈속에서도 물소리 아프지 마라>(한국작가회의저항의글쓰기실천위원회 엮음, 이하 아카이브 펴냄), 강은교 외 28명의 산문집 <강은 오늘 불면이다>(한국작가회의저항의글쓰기실천위원회 엮음), 성남훈 외 9명이 참여한 <사진, 강을 기억하다>(이미지프레시안 기획)가 그것들이다.

저자와 출판사의 동의를 얻어 문인들과 사진가들이 기록한 '강의 오늘'을 <프레시안> 지면에 소개한다. 오늘도 포클레인의 삽날에 신음하는 '불면의 강'의 이야기는 한 달여 동안 독자들을 찾아갈 예정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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