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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독도를 빼앗아 간 거죠?"

['교과서 전쟁' 현장을 가다①] "일본 우익의 '교과서 공격'이 재개됐다"

'교과서 전쟁'의 부활인가. 일본의 역사왜곡 교과서가 또 한 차례 동아시아를 뒤흔들 전망이다. 일본 문부과학성의 교과서 검정 발표가 4월 초로 바짝 다가온 가운데, 일본사회 우경화의 바람을 타고 식민지배와 전쟁을 미화한 역사왜곡 교과서도 부활 조짐을 보이고 있다.

4년마다 돌아오는 교과서 검정이지만, 올해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일단 이번 검정은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명시한 문부성의 '신학습지도요령'의 적용을 받는 첫번째 검정이다. 결국 4월 발표될 교과서는 이 요령에 따라 독도 문제를 기술할 수밖에 없어, 한일간 영토 분쟁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일본의 극우단체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을 주축으로 한 역사 왜곡도 확산될 조짐이다. 새역모가 2001년과 2005년 발행한 교과서는 한국의 근대화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 덕분이라는 주장과 함께, 태평양전쟁을 '아시아해방전쟁'이라고 기술하는 등 침략을 미화해 파장을 일으켰다. 새역모계에서 발간한 두 편의 교과서 역시 이번 문부성의 검정을 기다리고 있다.

또 한 번의 '교과서 전쟁'이 꿈틀거리고 있는 일본.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와 함께 일본을 방문해 현지의 상황을 들어봤다. <편집자>

'평화의 도시' 히로시마에서도 "제국주의사관 교육은 이제 그만"

"'선생님, 그러니까 한국이 다케시마(독도)를 빼앗아 간 거죠? 중국도 일본 땅을 빼앗은 거구요?'.

막 중학교 1학년이 된 학생이 언젠가 저에게 이런 질문을 했어요. 어린 학생들이 이런 방식으로 배우고 자란다면, 언젠가 또 다른 전쟁이 발생할지 모릅니다. 저는 이게 가장 무섭습니다."


지난 5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만난 중학교 교사 나츠하라 노부유키 씨는 "이제는 더 이상 안심할 수 없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일본 문부성의 중학교 교과서 검정 발표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일본 시민사회 내에서는 '우익들의 역사 공격이 시작됐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4일 오후 히로시마시청. 열명 남짓의 사람들이 시교육위원회의 문을 두드렸다. 평범한 학부모부터 교사, 평화운동가 등으로 구성된 이들은 '교과서 문제를 생각하는 히로시마 시민네트워크' 회원들이다. 대부분 나이가 지긋한 60~70대 노인들이 시교육위를 찾아간 까닭은 "다음 세대에게 더 이상 제국주의 사관을 가르칠 수 없기 때문"에서다.

▲ 4일 오후 '교과서 문제를 생각하는 히로시마 시민네트워크' 회원들이 시교육위를 방문해 역사 왜곡 교과서의 불채택을 요청하고 있다. ⓒ프레시안(선명수)


문부성의 교과서 검정이 끝나면, 현·시 단위의 교육위원회가 회의를 통해 검정을 통과한 출판사의 교과서를 채택하게 된다. 시민네트워크 회원들은 "시가 히로시마의 아픈 과거를 잊지 않았다면 전쟁 찬미 교과서가 아닌 전쟁을 반성하고 역사를 바로 알리는 교과서를 채택해 달라"고 촉구했다. 교육위원회는 8월 중순께 교과서를 채택할 예정이다.

"20년 전, 한 교류회 자리에서 동아시아 여성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한국 여성들과는 유독 친해지지 못했어요. 서로의 역사 인식이 그만큼 달랐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알 수 없는 거리감과 증오의 시대를 살아왔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역사를 더 이상 물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토에이 케이코 씨, 교과서문제를생각하는시민네트워크)

▲ 일본의 극우단체 '새로운역사교과서를만드는모임'에서 발간한 후쇼샤판 교과서. 일본의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등 역사를 왜곡해 논란이 됐다. ⓒ프레시안

히로시마는 현재까지 새역모계의 두 출판사인 '지유샤(自由社)'와 '후쇼샤(扶桑社)'판 교과서를 채택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평화의 도시' 히로시마도 역사왜곡 안전지대는 아니다.이 단체의 공동대표이자 현직 교사인 키시 나오토 씨는 "새역모의 교과서 공격 이후 역사 교과서의 전반적인 우경화가 진행되는 추세"라며 "히로시마 역시 과거 (전쟁) 가해자 중심의 교육에서 피해자 중심의 교육으로 전환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구지부와 함께 '한일 공동역사 교재' 편찬 작업을 진행 중인 히로시마교직원조합(교조)의 한 활동가는 "교사들이 '평화 교육'이란 말만해도 현과 시가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상황"이라며 "역사왜곡 교과서의 채택률이 점차 높이지는 상황에서 히로시마도 안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불안감 커진 요코하마…"새역모 압력에 굴복"

요코하마 지역의 경우 불안감은 더 크다. 지난 2009년 요코하마시 교육위원회는 지유샤 역사교과서를 채택해 시내 18개 지구 중 8개 지구의 중학교에서 사용 중이다. 일본에서 지유샤 교과서가 채택된 것은 요코하마시가 최초였다. 덕분에 0.4%대에 머물던 새역모계 역사 교과서 채택률은 1.7%로 4배 이상 뛰었다.

지유샤판 역사교과서는 후쇼샤판과 마찬가지로 한일 학계에서 부정되는 '임나일본부설'을 서술하고 있으며, 동아시아에선 일본만이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밖에도 태평양전쟁을 '대동아전쟁'으로 기술, 이 전쟁이 '자존자위'를 위한 싸움이었다고 표현하는 등 일본의 동아시아 침략 의도를 미화하고 있다.

▲ 일본의 극우단체 새역모에서 발간한 지유샤판 역사 왜곡 교과서. 요코하마시에서 채택된 이 교과서는 태평양전쟁을 '대동아전쟁'으로 기술, 이 전쟁이 '자존자위'를 위한 싸움이었다고 표현하는 등 일본의 동아시아 침략 의도를 미화하고 있다. ⓒ프레시안

문제는 시가 지난 2009년 18개 지구를 하나로 통합했다는 것. 때문에 올해에도 지유샤의 교과서가 채택된다면, 채택률은 5%대로 급상승하게 된다. 일본 최대의 교과서 관련 시민단체인 '어린이와교과서네트워크21' 요코하마지부 사토 마키코 씨는 "새역모와 일부 자민당 인사들이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일선 시장들에게 압력을 넣어 교과서 채택을 확산시키고 있다"며 "요코하마시 역시 극우성향의 교육위원장이 선임돼 지유샤를 채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요코하마시 이마다 교육위원장은 교과서 채택 전 지유샤 교과서의 발행인인 후지오카 노부카츠를 만나 사전 담합을 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며 "이마다 위원장에 대한 사임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역모 회장인 후지오카 노부카츠(도쿄대 교수)는 일본의 대표적인 극우인사로, 지난 2005년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하는 사람들은 종군 위안부가 아닌 북한 공작원"이라는 발언을 해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신발끈 조인 한일 시민단체…"새역모 채택률 0%가 목표"

문부성의 교과서 검정 발표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한일 양국의 시민단체들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일본 시민단체와 협력 차 도쿄를 방문한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양미강 공동운영위원장은 "문제는 (새역모 교과서의) 채택률이 아니라 교과서의 전반적인 우경화"라고 지적했다.

현재까지 새역모 교과서의 채택률은 1.7% 남짓으로 낮은 편이다. 그러나 새역모 스스로도 자평하듯, 새역모의 '교과서 공격' 이후 이른바 '민감한 사안'이 된 일본군 위안부 등의 과거사 기술은 다른 교과서에서도 대부분 사라지는 추세라는 것이 문제다.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허미선 사무국장은 "새역모를 비롯한 극우단체가 일본군 위안부나 난징대학살을 기술한 교과서 회사에 대해 전방위적인 공격을 벌이다보니, 그나마 식민지배를 제대로 기술하던 출판사들도 많이 움츠려든 상태"라며 "특히 위안부 문제에 대한 기술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설명했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 이후 1997년부터 일본 역사 교과서에 등재되기 시작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애초 7종의 역사교과서에 쓰여졌으나 2001년 새역모의 교과서 발간 이후 4종으로 크게 줄었다. 2006년 기준으로는 단 2종의 교과서만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서술하고 있다. 특히 교과서 점유율의 51.2%를 차지하는 '도쿄서적'의 경우, 2001년 교과서 파동 이후엔 위안부 문제를 교과서에서 삭제한 상태다.

▲일본 최대의 교과서 관련 시민단체인 '어린이와교과서네트워크21' 사무실에 빼곡히 붙은 선전물. 역사 왜곡 교과서를 아이들에게 주지 말자는 내용의 홍보물들이다. ⓒ프레시안(선명수)

한일 시민단체는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어린이와교과서네트워크21 타와라 요시후미 사무국장은 "일단 검정 직전까지 각 지역 회원들이 역사왜곡 교과서 반대 캠페인을 벌인 후, 검정이 발표되면 교과서 분석 작업에 돌입할 예정"이라며 "새역모계 교과서 2종에 대한 0% 채택이 목표"라고 말했다.

동아시아 역사 문제를 둘러싼 시민단체의 국제 협력은 이미 10년째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지난 2005년엔 한국의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가 일본과 중국의 시민단체와 함께 한중일 역사 공동부교재인 <미래를 여는 역사>를 발간해 일본, 중국의 일부 중고등학교에서 부교재로 사용 중이다. 새역모의 역사 교과서에 대항해 동아시아 근현대사를 바로 알리자는 취지에서 발간된 이 교재는 오는 7월 후속편이 출간된다.

일본 우익의 '교과서 공격'과 새역모

일본 역사교과서 파동은 195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내에서 평화와 민주주의를 기치로 내건 교과서가 '일본 재군비론'의 등장을 타고 우익들의 공격을 받게 된 것이 바로 '1차 교과서 공격'이었다.

일본 교과서 문제가 동아시아 국가 간의 외교 마찰로 번진 것은 1982년, 일본 문부과학성이 출판사로 하여금 일본의 '침략'을 '진출'로, '탄압'을 '진압'으로 기술하도록 지시한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외교 분쟁으로까지 번진 이 당시의 '2차 교과서 공격'은 결국 일본 외무성이 '근린제국조항(近隣諸國條項·역사교과서 기술에 아시아 이웃 국가들의 입장을 고려해야한다는 조항)'을 교과서 검정 기준으로 신설하면서 일단락됐다.

이때부터 우익들의 공격은 다시 본격화됐다. 한국과 중국의 반발은 일본에 대한 '내정간섭'이며, 일본의 침략 역사 서술을 곧 '자학사관'이라고 비판한 것. 이들의 반발은 1997년 극우인사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이 발족하면서 조직화됐다.

새역모는 1995년까지 자민당 내 존재했던 '역사검토위원회'를 배경으로 후지오카 노부카스 동경대 교수, 니시오 간지 전기통신대 교수 등이 주축이 돼 결성됐다. 이들의 주장은 △'대동아전쟁(태평양전쟁)'은 아시아 해방전쟁이었고 △난징대학살, 일본군 위안부 등의 가해는 '날조'이며 △최근의 교과서는 있지도 않은 위안부 문제 등을 바탕으로 '자학사관'을 펼쳐 이를 교과서에서 삭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 새역모 회장 후지오카 노부카츠(도쿄대 교수). 일본의 대표적인 극우인사로, 지난 2005년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하는 사람들은 종군 위안부가 아닌 북한 공작원"이라는 망언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이런 결론에 근거해 시작된 것이 90년대 후반부터 진행된 '3차 교과서 공격'이다. 새역모를 주축으로 '보통국가'로의 헌법개정운동을 벌이는 '일본회의', 극우세력의 대변지 <산케이신문> 등은 각종 강연회와 심포지엄을 연간 700회 이상 개최하며 교과서 기술 변화를 주장했다. 또 각 지역의 보수 정치인을 포섭해 교과서 채택권을 가진 각급 교육위원회를 장악하며 압력을 행사했다.

2000년, 마침내 새역모는 자신들이 직접 쓴 교과서를 발간하기에 이른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후쇼샤(扶桑社)판 역사 교과서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극우세력의 총공세에도 2001년 채택률은 0.039%에 불과했고, 새역모는 이런 실패가 일본 시민단체의 반발과 주변국의 항의 때문이라며 '4년 후의 복수'를 선언한다.

4년 후인 2005년, 채택률 10%를 향해 전방위적으로 움직였지만 새역모 교과서의 채택률은 0.4%로 조금 늘어난 수준이었다. 이에 대한 책임 소재를 놓고 새역모는 두 개의 세력으로 분열됐다. 후지오카 노부카츠는 교과서의 '내용'이 아니라 '정치적 참패'라며 지유샤(自由社)와 손을 잡았고, 새역모 전 회장 야키 히데츠구는 '일본교육재생기구'라는 조직을 만들어 후쇼샤의 자회사인 이쿠호샤(育鵬社)에서 교과서를 내고 있다. 결국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은 역사왜곡 교과서 2종이 2011년 검정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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