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감사는 대통령과 철학을 같이 하는 외부 인사가 임명돼야 제 역할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던 청와대가 전 청와대 비서관을 전기안전공사 감사에 내정했다.
청와대 인사관리비서관실과 전기안전공사 홍보실은 3일 "김남수 전 청와대 사회조정2비서관이 오는 7일 전기안전공사의 감사로 취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사 관계자는 "아직 공식 발령이 난 것은 아니지만 우리도 얼마 전에 이런저런 경로로 내정 사실을 알았다"며 "감사 선임에 특별한 절차가 있는 것은 아니고 정부로부터 '명령'이 내려오면 발령이 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지난 26일 청와대브리핑에 실린 '공기업 감사, 외부에서 와야 제 역할 가능'이라는 글에서 "낙하산 인사의 본질은 '개방'"이라며 "'정치인 출신 낙하산' 인사가 일을 더 잘 한다"고 주장했던 문해남 인사관리비서관은 "내 글에 담긴 내용이 이번 인사의 배경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정치인, 청와대 출신 인사의 공기업 '낙하산' 임명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당사자인 김남수 전 비서관의 독특한 이력으로 인해 이번 인사는 눈길을 끌고 있다.
김남수 전 비서관은 왜 청와대를 떠났을까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 노동특보를 맡았다가 청와대에 입성한 김 전 비서관은 사회조정1비서관실 행정관으로 출발해 사회조정3비서관, 사회조정2비서관으로 영전할 만큼 노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지만 '골프 규제령 속 골프 파동'으로 지난 3월 자진해서 사표를 쓰고 청와대를 떠났다.
이해찬 전 총리와 이기우 전 교육부 차관의 이른바 '황제골프' 파문 이후 국가청렴위원회는 지난 3월 23일 "비용 부담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공무원들은 자신의 비용으로도 직무관계자와 절대 골프를 치지 말라"는 고강도 골프규제령을 발동했다.
당시 청렴위는 직무관계자의 범위에 '공공기관과 계약을 체결하거나 체결 예정인 개인과 단체'까지로 포괄적으로 규정하며 "부득이한 사정으로 골프를 칠 경우 사전에 기관장에 보고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청렴위의 발표로부터 불과 사흘 뒤인 3월 26일 김남수 전 비서관은 대통령 주재 비서실 워크샵이 끝나자마자 현대모비스 홍보이사 등과 함께 골프를 쳤고 이 사실은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당시 청와대는 자체 조사를 통해 "직무관련자와 골프를 친 것도 아니고 공무원 행동강령 위반도 아니다"고 감쌌지만 비난여론은 확산되자 결국 김 전 비서관은 이틀만에 사표를 제출했다. 그러나 이와 함께 이강철 청와대 정무특보는 "골프 금지령은 한건주의"라며 청렴위를 맹비난 했다.
결국 청렴위는 김 전 비서관이 사표를 제출한 날 "공무원에 대하여 전반적인 골프 금지령을 내린 바 없으며 그러한 위치에 있지도 않다"며 "골프가 금지되는 직무관련자의 범위는 공무원의 소관업무와 관련해 현실적이고 직접적이고 사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민간인에 국한된다"고 규정을 대폭 완화했고 현재는 이마저 유야무야된 상황이다.
골프파동의 주인공으로 결과적으로 청렴위 골프규제를 완화시키는 데에 한 몫 한 김 전 비서관이 낙마 5개월도 지나지 않아 '직원 2900여 명 예산 1700억 원'(2004년 말 기준) 규모의 전기안전공사 감사로 컴백하게 된 것이다.
현재 이 공사 사장은 대통령 인수위 자문위원을 지냈던 송인회 전 우리당 정책위 부의장이 맡고 있고 감사도 민주당 당료 출신이다.
주례로 맺은 인연이 장수천까지
그런데 김 전 비서관의 감사 임명에는 단순히 청와대 출신인사라는 배경뿐 아니라 노 대통령과의 끈끈한 인연도 작용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한국야쿠르트 노조위원장 출신인 김 전 비서관과 노 대통령은 지난 88년 당시 국회의원이던 노 대통령이 김 비서관의 주례를 서주면서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1996년 노 대통령이 종로 지역구에 출마할 때부터 적극적으로 후원한 김 전 비서관은 대선 당시에는 노동특보를 맡으며 박태주 전 비서관 등과 함께 노동계의 지지를 이끌어 내는 데에 상당한 기여를 하기도 했다.
또한 김 전 비서관은 노 대통령의 생수사업체였던 장수천 채무와 이기명 전 후원회장, 역시 노 대통령의 후원자였던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간의 복잡한 관계에서 연결고리를 맡기도 했다.
이기명 씨가 장수천의 채무를 변제하기 위해 본인의 용인 땅을 매매하는 과정에서 김 전 비서관의 명의로 국민은행에서 10억 원을 대출했던 것.
이 와중에 문제의 용인 땅은 김 비서관 명의로 소유권이전 가등기가 되기도 했고 당시 대검 중수부는 "용인 땅 거래는 장수천 채무 변제를 위한 이기명과 강금원의 위장매매이며, 이 사실은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보고되었다"고 발표했다.
'회전문' 더하기 '내 사람 챙기기'의 결정판
이런 복잡한 이력의 소유자인 김남수 전 비서관이 청와대가 공기업 감사의 덕목으로 꼽은 " 나라의 일을, 정부의 일을 마치 자기 일처럼, 아니 더 나아가 자기 일보다 더 챙기려는 의지"의 소유자가 아니라고 단언할 근거는 없다.
또한 낙하산 감사라고 해서 무조건 문제가 있다는 주장도 옳지 않다. 전기안전공사의 현 박광순 감사 역시 여당 당료 출신이지만 만연된 '급행료' 관행을 혁파하는 등 기관투명성 향상에 큰 몫을 했다는 평가를 안팎에서 받고 있다.
하지만 각종 인사파문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복잡한 이력'의 소유자인 김 전 비서관을 사임 5개월도 되지 않아 꼭 그 자리에 앉혀야만 하는지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매우 많다. 한 여당 의원은 "적임자냐 아니냐를 떠나서 안 그래도 인사 때문에 말이 많은 현 상황에서 청와대가 왜 이런 무리수를 두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차라리 안타깝다"고 개탄했다.
'내 사람 챙기기'식 온정주의와 회전문 현상이 절묘하게 결합한 이번 인사가 결국 과거 정권 후반기에 횡행하곤 했던 '무더기 낙하산 인사'가 또 다시 반복될 것을 알리는 신호탄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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