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경기도 여주군 여주읍 연라리의 한 구제역 가축 매몰지. 테니스 코트 2개 크기의 이 매몰지엔 지난달 11일 살처분 된 돼지 5000여 마리가 묻혀있다. 거대한 가축들의 무덤은 마구잡이 식 매몰로 '생지옥'을 방불케 했다.
▲ 여주군 여주읍 연라리의 한 구제역 가축 매몰지에서 흘러나온 누런 빛깔의 침출수. ⓒ프레시안(최형락) |
매몰지 주변은 물론이고 성토된 흙 위 곳곳엔 누런 침출수가 흘러나와 '침출수의 강'을 이루고 있었다. 심지어 매몰지 위에 쳐놓은 비닐을 뚫고 침출수가 분출한 곳도 있었다. 부패한 가축의 사체에서 나온 침출수가 이를 처리하기 위한 유공관으로 배출된 것이 아니라, 매몰지 곳곳에서 솟아올라 도랑을 따라 흘러내리고 있는 것.
흐르다 굳어버린 침출수 위엔 야생 동물의 발자국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한 쪽 구석엔 침출수를 갉아먹은 것으로 추정되는 쥐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외부에 그대로 노출된 침출수에 너구리, 고라니 같은 야생 동물들이 접근할 경우, 침출수 안에 남아있던 구제역 바이러스가 다른 지역으로 옮겨 퍼지는 것은 시간 문제다.
▲ 누렇게 응고된 침출수 위로 너구리로 추정되는 야생동물의 발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 누런 침출수가 매몰지를 둘러싼 도랑을 따라 흐르다 응고됐다. ⓒ프레시안(최형락) |
▲ 매몰지 웅덩이에 모아진 '핏물' 침출수. 가축 사체가 발견된 매몰지 바로 인근의 모습이다. ⓒ프레시안(최형락) |
이뿐만이 아니다. 매몰지 한쪽엔 돼지의 사체 일부가 솟아 올라와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여주환경운동연합 이항진 집행위원장은 "지역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돼지를 매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돼지 사체 300마리가 매몰지 밖으로 튀어나와 다시 파묻는 일도 있었다"며 "남아 있는 사체는 이 과정에서 치우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 매몰지에서 발견된 돼지의 사체 일부. ⓒ프레시안(최형락) |
엄청난 양의 침출수가 흘러나온 이 매몰지는 남한강 지류인 소양천과 불과 1㎞ 인접해 있다. 봄이 와 날씨가 풀리고 큰 비라도 내리면, 병원성 세균 덩어리인 침출수가 소하천과 지하수로 흘러들어가는 것은 물론, 그 흐름이 남한강까지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가축 매몰지 침출수의 오염 물질 농도는 축산 분뇨의 5~6배를 초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1일과 지난달 17일에도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과 모가면 돼지 매몰지에서 돼지 사체가 솟아올라 시가 보강 작업을 벌이는 등 기온이 상승하면서 마구잡이 식 매몰로 인한 후유증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정부에서 매몰지 관리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워낙 많은 곳에 많은 소와 돼지가 묻혀 관리에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침출수와 사체가 뿜어져 나오는 매몰지가 보고되고 있어, 3월 본격적인 해빙기가 오면 더 큰 피해가 우려된다.
한편, 여주에서는 이번 구제역 사태로 158개 농가(돼지 79농가) 16만198마리(돼지 15만6300마리)의 가축이 모두 매몰 처분됐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