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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은 선배 죽음, 설움과 화가 한꺼번에 터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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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은 선배 죽음, 설움과 화가 한꺼번에 터지는 것 같다"

엄지원 "큰 운으로 밥 걱정 없이 사는 내가 참으로 초라해"

무명 시나리오 작가였던 최고은 작가가 생활고와 지병에 시달리다 "남는 밥과 김치 있으면…"이라는 쪽지를 남기고 사망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문화계에서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동시에 열악한 영화 제작 현실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줄을 잇고 있다.

"최고은 작가의 죽음은 시나리오 작가들의 구조적 문제"

<말아톤>, <좋지 아니한가> 등을 제작한 정윤철 감독은 CBS <변상욱의 뉴스쇼>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진짜 정말 비극적인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했습니다. 정말… 굶주림에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 참 너무 가슴이 아프고 믿기지가 않네요"라며 애통해했다.

그는 "그렇게 만든 현실에 너무 화가 났고, 한국영화의 미래가 굉장히 어둡다는 생각을 했다. 최고은 작가의 죽음은 시나리오 작가들의 어떤 구조적인 문제"라며 "시나리오 한 편에 처음 데뷔하는 작가는 3000만 원정도 작가료를 받는데. 문제는 이게 영화가 다 완성되어야지만 완불이 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제작자들은 투자를 받아야 돈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인 것인데 그렇다면 투자가 이뤄졌을 때 더 보상을 해주거나 나중에 영화가 성공했을 때 인센티브로 보너스를 주던지 해야 하는데 그런 것은 전혀 없다"며 "'위험은 같이 부담하고 결과는 나누지 않겠다'는 제작사에 전적으로 유리한 관행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최고은 씨의 죽음은 명백한 타살"

전국영화산업노조도 성명을 내어 "고인의 죽음 뒤에는 창작자의 재능과 노력을 착취하고, 단지 이윤창출의 도구로만 쓰려하는 잔인한 대중문화산업의 논리가 도사리고 있다"며 "창작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산업 시스템과 함께 정책 당국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영화 스태프가 생존을 위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즈음인 2000년도 연평균 소득은 337만 원, 10년이 지난 2009년도 연평균 소득은 623만 원으로 조사됐다"며 "조금 나아지기는 했으나 월급으로 치면 52만 원이 채 되지 않는 액수로 여전히 최저생계비에도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들은 "최소한의 생계를 위해 반복되는 실업기간 동안 실업 부조금을 지급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자는 요구를 수없이 해왔다"며 "만약 실업부조제도가 현실화 돼 고인이 수혜를 받았더라면 작금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명백한 타살"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영화 스태프의 처우를 개선하고 이해를 대변해야 할 책무를 진 노동조합으로서 책임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며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영화 제작사의 횡포, 모든 서러움과 화가 터진다"

최고은 씨와 같은 대학 과 후배라는 한 누리꾼은 다음 아고라에 '그동안 정말 말하고 싶었다. 영화 제작사의 횡포"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최 씨의 사망 소식을 듣고) 정말 눈물만 나고 그동안 참으며 쌓아왔던 이 영화 바닥의 모든 서러움과 화가 한꺼번에 터지는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아마 자신의 첫 시나리오 계약 후 엄청난 꿈에 부풀어 오르셨을 것이다. 정말 열심히 쓰셨을 것"이라며 "그러나 경제적으로 돌아온 것은 계약금 중 일부인 몇백 만 원 정도가 고작이었을 것이다. 캐스팅과 투자가 확정되어 영화가 들어갈 때까지 받아야할 남은 돈은 주지 않는다. 일은 계속 하지만 돈은 받지 못한다. 생활이 힘들다. 몸이 아프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할까"라고 반문했다.

그는 지난해 영화가 크게 흥행한 한 영화제작사가 스태프의 계약 기간을 일방적으로 연장하고 수익 배분도 하지 않은 사례를 들면서 "최고은 선배의 죽음이 물론 개인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분명 선배가 속해있던 이런 사회구조의 문제가 더 컸다고 본다.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따지며 책임을 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아고라 등에는 최고은 씨의 죽음을 통해 낮은 원고료 등 전업 작가의 열악한 현실을 고발하고 문화계에서도 일한만큼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고인의 죽음이 남긴 메시지 잊지 않겠습니다"

트위터에서도 애도의 글이 줄을 잇고 있다. 배우 엄지원 씨는 8일 자신의 트위터에 "나는 그녀의 아픔을 어려움을 아마 백만분의 일도 이해하지 못하겠지요. 다만 그녀가 죽음의 순간까지 놓지 못했던 영화가 그녀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안타까운 마음을 나타냈다.

엄 씨는 "부족한 재능으로 재능보다 큰 운으로 밥 걱정 없이 사는 내가 참으로 초라해지는 밤"이라며 "고인의 죽음이 남긴 메시지 잊지 않겠습니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찾을게요. 미안함과 아픔을 전합니다. 편히 쉬세요"라고 추모했다.

고민정 KBS 아나운서는 시인인 자신의 남편 조기영 씨를 언급하며 안타까워했다. 고 아나운서는 "최고은 작가의 죽음. 마치 결혼 전 옥탑방에 살던, 지금은 내 동반자가 된 이 사람이 눈을 감은 것만 같아 자꾸 가슴이 아파온다"고 말했다.

그는 "연애시절 보게 된 그의 시에서 그는 몇백 원이 없어 수 시간을 걸어 집에 갔다고 했다. 그걸 보고 한참을 울었던, 잊고 있었던 그 기억이 자꾸만 떠오른다"며 "소개팅 자리에 무명작가가 온다고 하면 만나보려고도 하지 않는 것 말고, 내 팍팍한 삶을 보드랍게 해주는 이와의 만남을 사랑해주길, 지인이 작가의 길을 가겠다고 하면 일단 많이 응원해주고 좋아해주길"이라고 당부했다.

단편영화 '격정 소나타'의 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였던 최고은 씨는 설을 앞둔 1월 29일 경기도 안양의 월셋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갑상선기능항진증과 췌장염을 앓던 최 씨가 수일째 굶은 상태에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가 마지막으로 이웃 주민에게 남긴 쪽지에는 '그동안 너무 많은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피하지만, 며칠 째 아무 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 주세요'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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