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리뷰Factory.73] 우리, 철들지 말자! 연극 '에어로빅 보이즈'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리뷰Factory.73] 우리, 철들지 말자! 연극 '에어로빅 보이즈'

[공연리뷰&프리뷰] 2010 서울 차세대 연극연출가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지원 사업 '요람을 흔들다'

13년 밴드생활에 남은 거라고는 긴 머리카락이 전부인데 그것마저 없어질 판이다. 폼생폼사, 간지에 죽고 간지에 살지만 소녀시대가 좋은 건 어쩔 수 없는 이 아저씨삘 오빠들은 철이 덜 들었다. 울고 떼를 써도 소용이 없자 도살장 끌려가듯 미용실에 들어선 오빠들의 행태는 가관이다. 머리카락을 자르기 위해서는 잘리는 당사자보다 그들의 머리카락에 손을 대야하는 미용사의 간이 더 커야할 만큼 건장한 남자들은 상상 이상의 유아적 만행을 보여준다. 세 살하고도 한 사 개월 정도 더 됐을까 싶은 이들의 나이는 자그마치 서른 넷. 눈물 나는 나이다. 서른은 넘었는데, 어느새 원치도 않은 후배들로 가득하게 됐는데, 이룬 것은 없고 남는 것도 없으니 체면이 말이 아니다. 그래서 고등학생 초롱이가 초롱초롱하게 묻는다. 그렇게 살고 싶니? 언제 철들래?

▲ ⓒnewstage
무시무시한 이름만큼 웃기는 '지구멸망'은 데스메탈 공연만 하는 홍대 클럽의 이름이다. 그 안에는 더 무시무시한 이름만큼 더 웃기는 밴드 '지옥의 사생아들'이 있다. 머리도 흔들고 시뻘건 깃발도 흔들며 전기톱도 흔들지만 가득한 건 빈 객석뿐이다. 자금난에 시달리던 지구멸망이 폐업을 하게 되면서 동시에 은퇴하게 된 지옥의 사생아들은 보스이자 클럽사장을 도와 헬스클럽 홍보 일을 하게 된다. 저당 잡힌 이 헬스클럽은 무고한 사장의 딸 초롱이 운영하고 있다. 쫙 달라붙는 가죽옷에 문신 현란한 팔뚝을 내밀고 긴 머리 휘날리며 전단지를 나눠주지만 나라도 가기 싫어질 헬스클럽의 회원 수는 당연히 줄어든다. 현실에 내던져진 네 명의 아저씨 비슷한 오빠들은 불행해 보인다. 그 비참함의 끝은 이미 알고 있던 회복 불가능의 상태를 스스로 발설해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일상적이고도 상식적인 어른들의 삶으로 편입하기 위해 음식점 주차안내원, 보험회사 영업원 등으로 취업한 그들은 자포자기의 상태다.

연극은 자신이 무력하다는 걸 깨닫게 되는 지점, 더 이상 꿈으로 먹고 살 수 없는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는 그 지점에 있다. 꿈과 현실의 어중간한 위치에서 불편한 자세로 서 있는 삼십대의 때늦은 방황은 이미 익숙한 소재다. 끊임없이 반복되지만 계속해서 연민할 수 있는 이 소재의 힘은, 그것이 서른을 넘긴 시대의 대부분 사람들에게 동질감만으로도 위로를 줄 수 있다는 데 있다. 상처를 논하기에는 너무 자라버린 몸을 이끌고 일종의 허무함 속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모든 캐릭터들이 그렇듯, 섣부른 희망을 말하기에 우리의 주인공들 역시 너무나 무기력하다. 세상물정 모르며 몸에 비해 한참이나 모자란 내적 성숙도와 도저히 나타날 것 같지 않은 인생역전의 기회는 그들의 비현실적 일탈기간이 너무 길었음을 알린다. 이 끈덕진 고통은 매일 헬스장으로 출근해 해결되지 않는 공허함을 뛰는 것으로 달래는 순옥의 답답함과도 일맥상통한다. 언제나 올나이트인 인생에 번쩍거리는 해는 언제나 쨍하고 뜰까.

▲ ⓒnewstage
그렇다고 그들이 마시는 술의 끝 맛이 한없이 쓴 것만은 아니다. 연극에는 미화시키거나 아름답게 각색하지 않았지만, 버리는 척 했어도 완전히 버려지지 않는 꿈의 낭만이 존재한다. 사람 좋은 웃음으로 끝까지 철들지 않을 것 같던 보스가 담배를 피우며 울 때, 우리가 느끼는 것은 정신 차리고 세상 좀 바로 살겠거니, 라는 안도감이 아니라 더 큰 패배감이다. 그러니 마음의 청춘들이여, 우리 끝까지 철들지 말자.

한물 간 밴드들은 클라크가 슈퍼맨으로 변신하듯 기가 막힐 전환점을 얻지는 못하지만 그래서 더 외롭고 괴로운 진통 속에서 아직 죽지 않은 열정을 피워낸다. 에어로빅 체조대회에 출전하는 이 전사들은, 웃기지만 차마 웃을 수 없도록 진지하다. 데스메탈에서 에어로빅으로의 황당한 변화만큼 연극은 유쾌한 웃음을 선사한다. 그러나 네 명의 오빠들처럼 완전히 철들지 않은 웃음이다. 연극에는 패기와 꿈, 어쩌지 못하는 진실함이 있으나 성숙하지 못한 형태로 나타난다. 상황과 감정에 대한 노골적 대사와 태도는 여물지 못한 느낌이다. 아직도 뛰고 있는 삶의 맥박을 느끼게 해 줄 마지막 대회장면 또한 감질나다. 그럼에도 어설플 수 있는 연극의 요소들은 어설퍼야만 하는 인물들을 연기하는 배우에 힘입어 안전한 상태로 관객을 맞이한다. 진지한 성찰과 삶에 대한 애정도 따뜻하게 다가온다. 연극 '에어로빅 보이즈'는 2010 차세대 연출가 인큐베이팅 지원 사업 '요람을 흔들다' 선정작으로, 뒤를 이어 1월 9일부터 12일까지 연극 '고리끼의 어머니(임세륜 연출)', 14일부터 16일까지 '사라-0(이성구 연출)'이 공연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