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비밀 외교 전문(電文) 25만 건을 폭로해서 미국의 이미지를 떨어트리고 미국 외교 를 궁지에 몰아넣었다는 권력 쪽의 비판을 받고 있는 고발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오바마정부의 고사(枯死)작전으로 존폐의 위기를 맞고 있다.
민감한 외교문서를 세계 5대 신문-미국의 <뉴욕타임즈>, 프랑스의 <르몽드>, 영국의 <가디언>, 독일의 <슈피겔>(주간), 스페인의 <엘파이스>- 에 폭로한 장본인이며 위키리크스의 창설자인 줄리안 어센지(Julian Assange)는 어제의 영웅에서 하루아침에 "성범죄" 혐의로 인터폴의 체포대상에 올라 쫓기는 도망자 신세가 됐다.
어센지의 정부의 부정 고발 활동에 동조하는 네티즌들이 위키리크스에 후원금을 보내는 송금기관 페이팔(PayPal)은 위키리크스 활동을 불법으로 단정하고 그 송금 업무를 거절한다고 통고했다. 그렇지 않아도 자금이 궁색한 위키리크스의 돈줄이 끊어질 위험에 직면한 것이다. 거기다 위키리크스에 서버와 인터넷 주소(도메인) 서비스를 제공해 오던 아마존 닷컴과 에브리 디엔에스(every dns)도 자체 규정을 내세워 서비스를 중단했다.
그러자 위키리크스의 활동에 동조하는 네티즌들이 직접 위키리크스의 정보를 전파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고발 사이트를 지지하는 시민들은 개인 블로거의 계좌를 통해서 송금하는 방법을 동원해서 위키리크스를 살리겠다고 밝혔다. 위키리크스와 미국 정부와의 싸움이 대기업과 권력의 부정을 고발하는 시민운동과 권력 간의 싸움으로 양상이 바뀌고 있는 듯하다. 위키리크스는 이 힘겨운 싸움에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어센지와 세계 5대 신문의 책임있는 폭로 vs 권력의 남용
어센지는 미국 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테러리스트'로 보일지 모른다. 25만 건에 이르는 민감한 비밀 외교전문을 통째로 세계 5대 언론에 공개해서 비밀이 필요한 외교교섭을 어렵게 했다는 국무성의 주장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외교라는 명분으로 불법적인 행동을 자행하는 권력의 남용을 고발하는 것 또한 민주 사회에서 필요한 시민의 역할이다. 이러한 시민운동 상황을 국민에게 알려 권력의 남용을 방지하고 견제하는 것은 언론인의 사명이다.
국익과 국민의 알 권리가 충돌할 때 정부는 걸핏하면 국민이 선출한 권력임을 내세워 시민의 정당한 권리를 억압하려 한다. 그러나 국민의 주권은 선거와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국민은 정부의 '능동적 주권 행사'에 대해서 늘 정부의 행동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소극적 주권' 비토권을 행사할 권리를 갖고 있다. 권력의 부정을 밝히는 '고발 저널리즘'은 권력으로서는 귀찮은 존재이지만 그 고발이 한계를 넘지 않는 한 권장할 일이지 권력을 동원해서 이를 압살 또는 고사시키는 것은 민주국가 정부의 할 일이 아니다.
더구나 25만 건의 비밀 외교 전문은 위키리크스가 불법으로 빼낸 것이 아니다. 위키리크스는 브랜들리 매닝 일병이 빼내 건네준 자료를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5대 신문에 건네주었을 뿐이다. 미국법상 비밀문서 접속권이 없는 사람이 불법 접속하거나 다른 사람을 접속하게 하는 행동은 불법이지만 이들로부터 받은 자료를 사용하는 것은 법적으로 죄가 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25만 건의 전문을 건네받은 5개 매체는 자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 공개가 미국의 안보를 해치거나 문서에 기록된 발언자들이 위험에 처해지는 일이 없도록 기자와 전문가들을 동원해서 5대 매체 공동으로 문제점을 검토하고 언론 윤리 기준에 따라 보도할 수 있는 것과 보도해서는 안 될 자료를 결정했다. 이러한 논의 과정은 세계 언론사에 기록될 사건이다. 중요한 전문에 관해서는 미국 정부의 의견도 구했다.
실제로 문서의 폭로가 세계적인 반응을 일으킨 것과는 대조적으로 정말 미국이나 다른 나라의 안보에 타격을 주는 '폭탄' 정보는 하나도 보도된 게 없다. 문서의 공개로 생명의 위험을 겪은 사람도 없었다. 5대 신문은 세계를 대표하는 언론답게 책임 있는 언론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었다. 미국 외교에 미칠 엄청난 부정적 영향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가 5대 신문의 보도에 대해서 직접적인 비판을 않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미국 외교가 비밀전문의 공개로 피해를 보았다고 해서 정부가 위키리크스 고사작전을 펴는 것은 민주 정부로서 취할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 특히 어센지에 대한 인터폴의 체포 영장 발부와 영장에 기록된 범죄혐의는 또 다른 권력의 남용을 엿보게 한다. 검색 엔진 구글이 제공하는 정보에 의하면 어센지의 혐의는 '성범죄'이다. 그런데 혐의사실이 희한하다. 스웨덴 여성과의 성 행위는 어센지도 인정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합의 하에 한 행위임으로 범죄가 되지 않는다. 영장에 기록된 혐의도 강제로 성 행위를 했다는 것이 아니라 성행위 도중에 콘돔이 파열된데 대한 혐의이며 그것이 혐의의 전부라고 한다. 스웨덴 정부가 미국의 압력으로 어센지를 구속하기 위해서 억지로 만들어 낸 혐의라는 의혹을 받기에 충분하다. 베트남 전쟁 때부터 미국과의 관계에서 독립적인 자세를 견지해 온 스웨덴 정부가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서 태도가 달라지지 않았나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다.
어센지가 위키리크스의 민감한 자료를 공개하는 언론매체로 5대 신문을 선택한 것도 어센지가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아직도 고발 저널리스트로서의 순수성을 잃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 공교롭게도 모두가 진보적인 언론이다. 언론의 사명에 충실하고 권력이나 대기업과 거리를 두고 권언유착 경언(經言)유착을 불사하는 보수 언론, 기업 언론과는 다른 진정한 언론매체들이다. 그러기 때문에 어센지는 수 백 만의 독자를 끌 수 있는 스쿠프 자료를 이들 신문에 넘겨주면서 아무 대가를 요구하지 않았다. 베일에 가려진 미국 외교의 위선과 흑막을 고발해서 미국 외교가 좀 더 투명해지기를 바랐다는 하나의 증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미국 정부, '어센지 체포'가 아니라 '투명한 외교'가 탈출구다
위키리크스의 폭로로 드러난 미국 외교의 문제점은 상당히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반기문 사무총장을 비롯한 유엔 관리들의 신용카드 번호와 e-메일, 비밀번호, 기타 신상 저보를 알아내라는 클린턴 국무장관의 지시는 미국이 외교와 첩보를 혼동하고 외교를 첩보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게 했다. 세계 외교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미국 외교의 신뢰를 추락시키는 행동이었다. 외국 지도자나 외교관들이 제공한 민감한 정보가 허망하게 누설된 것은 미국이 의존해야 할 외국의 정보원이 앞으로는 미국 외교관을 믿고 깊이 있는 정보를 말하기를 꺼리게 만들 것이다. 미국 외교가 한 동안 어려움을 겪게 되리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이다. 따라서 미국 외교의 급선무가 비밀전문의 공개로 실추된 신뢰를 회복하는 데미지 콘트롤(피해 회복)이라고 외교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미국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현실을 감안할 때 아무리 미국이 싫어도 관계를 갖지 않을 수 없는 만큼 데미지 콘트롤 기간이 지나면 미국 외교는 차츰 정상화되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전망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분석이 끝난 전문을 언제 얼마큼 보도할 것인지는 5개 매체의 결정에 달렸기 때문에 데미지 콘트롤 기간이 언제 끝날지는 현재로서는 예측이 어렵다. 미국 정부의 위키리크스 고사작전이 네티즌들의 반발을 촉발해서 오히려 위키리크스 파문을 확대시킬 우려도 없지 않다. 그러므로 데미지 콘트롤은 누설된 정보의 이용을 차단하는 것보다 비밀문서의 누설을 막는데 역점을 두는 것이 더 우선적이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인터폴을 통해 어센지에게 체포 연장을 발부하고 위키리크스의 인터넷 사이트를 폐쇄하거나 후원금 통로를 차단하는 강압적 수단은 투명한 외교를 바라는 다수 시민의 반발을 일으키는 역효과를 가져올 위험이 있다. 사실 비밀문서 접근을 막는 것도 완전한 방어벽이 될 수는 없다. 비밀문서 접근 허가를 가진 사람이 9만 명에 이른다고 하지 않는가? 따라서 이상적인 방법은 정보가 공개되더라도 부끄러움이 없는 투명외교를 지향하는 것이고 비밀문서 접근권을 가지 사람들이 볼 때 보호하려는 비밀이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부당한 권력층의 이익을 위한 것이어서 그것을 폭로하는 것이 정의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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