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현대건설 사장 재임 당시 작성한 각서의 내용이다. 그러나 현대건설이 1985년 완공한 연천댐은 1996년 7월 경기북부에 내린 집중호우로 댐 오른편이 붕괴됐다. 이후 수문 5곳을 증설하는 보강 공사를 진행했으나, 1999년 8월 재차 집중호우가 내리자 이번엔 댐 왼편의 둑 40m가 다시 무너졌다.
두 차례의 붕괴로, 댐 하류 지역에 심각한 물난리가 일어 주택 수백 가구가 침수되고 1130억 원 정도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부실 설계와 건설사의 무책임한 유지·관리가 낳은 '물난리'였다.
결국 한탄강 유역의 피해 주민들은 법원에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끝에 수해 발생 9년 만인 지난 2008년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다. 현직 대통령이 사장으로 있었던 대형건설사를 상대로 한 이른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 1999년 집중호우로 붕괴된 연천댐의 모습. ⓒ연합뉴스 |
"연천댐과 4대강 사업, '속도전'까지 닮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현대건설 사장 시절 건설한 연천댐의 붕괴가 부실시공 등 '속도전이 낳은 참사'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박창근 관동대 교수(토목공학과)는 대한하천학회 주최로 열린 '연천댐 붕괴 경위 및 수리학적 분석' 세미나에서 "연천댐은 설계 기간이 6개월, 공사 기간도 불과 2년이었다는 점에서 '4대강 속도전'과 흡사하다"며 "더구나 4대강 사업은 보의 안전성 여부 등을 예측하는 수리모형실험조차 날림으로 진행해, 향후 보의 수문 작동에 따른 안전성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연천댐 붕괴 원인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주민 소송 자문을 맡기도 한 대진대 장석환 교수(건설시스템공학)가 발제자로 참석했다. 장 교수는 "댐이나 제방 건설은 설계 홍수량 이하의 호우가 내릴 때는 비교적 안전하게 홍수를 예방할 수 있으나, 큰 규모의 홍수가 발생해 댐 붕괴로 이어지면 그 피해는 훨씬 크다"며 "특히 연천댐은 애초 소수력발전을 위한 이수 목적으로 건설돼 홍수 예방 등 치수에 취약했다"고 설명했다.
연천댐은 현대건설이 전력 수급을 위해 1983년 착공해 1985년 완공한 길이 234.5m, 높이 22.6m의 댐으로, 한탄강 상류인 연천군 전곡읍 신답리에 건설됐다. 댐에 위치한 소수력발전소는 시간당 최대 6000kW의 전력을 생산해 연간 12억 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지만, 잇따른 붕괴에다 '물난리의 주범'으로 주민들의 원성을 사 2000년 6월 완전히 철거됐다.
▲ 이명박 대통령이 현대건설 사장 재임 시절 작성한 각서. ⓒ김진애의원실 |
주민들은 "현대건설이 연천댐 1차 붕괴에도 불구하고 댐 유지·관리를 허술하게 해 침수 피해를 입었다"며 여러차례 소송을 냈지만, 그때마다 줄줄이 패소했다. 결국 항소심 끝에 서울고법이 주민들의 손을 들어줌에 따라 9년을 끌어온 재판에서 승소했다.
붕괴의 원인은 부실 설계 및 관리로 드러났다. 계획홍수량과 통수능력을 잘못 산정했던 것. 당시 소송에 참여한 전문가와 주민들은 "현대건설이 공기 단축과 공사비 절감을 위해 안전성 검증없이 댐을 건설한 것이 붕괴를 낳았다"고 주장했다.
재판부 역시 판결문에서 "현대건설은 1차 붕괴사고를 통해 연천댐의 통수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도 방호 조치 의무를 하지 않아 2차 붕괴가 발생했다"며 "댐 붕괴 이후 예전에 비해 2배에 가까운 홍수량이 단기간에 방출돼 거주지역의 수위가 급격히 상승, 주민들의 침수 피해가 가중됐다"고 주민들의 손을 들어줬다
특히 쟁점이 됐던 것은 댐 붕괴로 인한 수위 변동 정도였다. 현대건설 측은 대한토목학회의 원인조사 결과를 내세워 "붕괴로 인한 수위 상승이 2~4㎝에 불과해 주민들의 침수 피해와 댐 붕괴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댐이 붕괴돼 65㎝의 추가 수위 상승이 있었다"는 전문가 의견에 손을 들어줬다.
결국 재판부는 "한탄강의 계획 홍수량보다 훨씬 부족한 예상 홍수량으로 댐을 지었고 공기 단축과 공사비 절감을 위해 비상 수로를 만들지 않은 점 등 방호조치 의무에 소홀했다"며 "연천댐의 설치 및 관리상의 하자로 인해 침수 피해를 입은 주민들에게 현대건설이 22억39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연천댐 붕괴 겪고서도…4대강 수리모형실험은 여전히 '부실'
장석환 교수 역시 댐이 건설되지 않았을 경우, 댐이 붕괴되지 않았을 경우 등 5가지 시나리오를 기초로 한 시뮬레이션 결과 "연천댐 붕괴는 사상 최고의 국지성 호우가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애초 댐이 건설되지 않았거나 정상적으로 존치됐다면 주민들이 (호우에) 충분히 대비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장 교수는 이어 "하천관리 시 하천 본래의 물리적인 공간(room for the river)을 충분히 확보해주는 방안을 우선 검토해야 하고, 하천 구조물에는 철저한 사전 검토와 타당성을 가지고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연천댐은 소수력발전을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홍수 조절이나 하천 관리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며 "4대강에 들어서는 보의 경우 치수와 이수, 하천 유지관리까지 목적이 3가지나 되는데, 각 상황별 수문의 운영 방안이 아직까지도 나와있지 않다는 것은 문제"라고 꼬집었다.
박창근 교수 역시 "연천댐 붕괴를 교훈으로 삼는다면 지금 4대강에 짓는 16개의 보에 대한 안전성 검토가 시급한데, 수리모형실험이 부실하게 진행되는 등 문제가 많다"며 "4대강 사업에서 연천댐 붕괴 같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고 지적했다. 국토해양부는 4대강 사업으로 건설되는 16개의 보 중 15개의 보의 수리모형실험도 거치지 않은 채 공사를 시작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관련 기사 : '황당' 4대강 사업…보 공사는 '속도전', 설계는 아직도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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